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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Feb 23. 2023

조금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소심한 채식의 날들


 채식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채식 레시피를 검색하고, 채식 지향적 삶에 대해 생각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하고 싶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나 스스로를 칭찬해 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쉽지 않은 일. 나 스스로 나에게 주는 숙제와도 같은 일. 채식은 줄곧 나에게 그런 무게감을 주는 일이고 여전히 나는 채식주의자가 되지는 못했고 어쩌면 앞으로도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되지는 못할지 모르겠다.


 채식을 고민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건강하지 못한 나의 위장 탓이었다. 잦은 소화 불량에 쉽게 체하고 폭식을 견디지 못해 먹은 것을 게워내는 일도 종종 있는데, 그럴 때 도움이 되는 건 채소만 넣고 끓인 맑은 된장국이나 역시 채소를 듬뿍 넣어 만든 토마토 수프다. 위장에 탈이 나서 묽은 채소의 국물로 속을 다스릴 때, 채소에게 한껏 고맙다. 그리곤 결심한다. 앞으로는 내 위장을 위해 더 자주 채소를 먹어야겠다고....... 하지만 일시적 고통에서 오는 결심이란 것이 늘 그렇듯 고통이 사라지면 결심의 무게는 한없이 가벼워져 어느새 희미한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리고 만다. 자극적이고 무겁고 조금은 무자비한 맛의 세계는 얼마나 유혹적인지.......  


 육식을 경고하는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지나친 육식이 인류에게 가져오는 폐해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다.  인류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닌, 단지 미식(美食)을 위해 지나치게 먹고, 너무 많은 동물을 죽이고 있다. 굶주림과 과식의 불균형으로 기아와 비만은 비슷한 무게로 세계적 이슈가 되고 있고, 육식은 심지어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까지 망가뜨린다고 한다. 맛있는 것을 먹고 즐기는 일은 평범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가끔 나는 우리가 이렇게까지 자주 , 많이 동물을 먹어도 되는 걸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너무도 끔찍한 환경에서 사육되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잔혹함을 떠올리게 한다. "동물 복지"라거나 "동물권"같은 것에 대해 따로 공부를 한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그리고 동물을 먹는 일에 절대 반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 하나만이라도 조금 덜 먹는 것이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이 지구에 작은 보탬이 된다면, 나는 그것을 실천하고 싶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선택은 채식지향적 삶이고. 나는 그것이 착한 선택이길 바란다.


                    1. 현미꼬마김밥 2. 야채고명잔치국수 3.. 채식포케. 4. 비건베이글과 과콰몰리



 선택이든 결심이든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을 지켜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나 채식을 실천하는 일은 부지런함을 동반하는 일이다. 배달음식이나 외식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온전한 채식음식은 드레싱 없는 야채샐러드뿐이다. 물론 맘먹고 찾으려 들면, 얼마든지  좋은 채식식당을 찾을 수 있지만 생각보다 가격이 비싼 데다, 맛도 보장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역시 채소만으로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가 어려운가? ). 다행인 것은 한국인의 밥상은 채식을 실천하기 너무 좋다는 것이다. 된장국에 나물반찬을 곁들인 한상. 견과류를 가득 넣은 쌈장에 쌈채소를 곁들여 먹는 쌈밥. 야채만 가득 넣어 만든 비빔밥이나 맛있게 익은 열무김치에 소면을 삶아 얼음을 동동 띄운 열무김치국수. 어디 이뿐이랴, 한국 고유의 음식들에는 고기 한 점 없어도 맛나게 먹을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귀찮다. 번거롭다. 한국음식은 왜 이리 손이 많이 가는 것인지...... 말이 쉬워 "나물 몇 가지"이지 나물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고 맛있는 나물을 만드는 일은 더 어렵다. 김치를 맛있게 담그는 일은 웬만한 요리솜씨로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차라리 질 좋은 소고기나 삼겹살을 구워 먹는 일이 쉽고 간단한 데다 맛도 영양도 보장된다. 이도 저도 귀찮은 날엔 라면이 딱이고, 일주일의 피로가 몰려오는 금요일엔 배달치킨에 맥주가 딱이다. 채식을 하겠다는 소박한 결심 따위, 먼지처럼 가벼운 그것은 한순간의 콧바람으로 멀리 날려버릴 수 있다. 매일의 일상을 사는 일만으로도 지치고 힘든데 일부러 품을 들여 채소를 다듬고 찌고 볶고 하는 일까지 감수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오랫동안 채식을 고민하면서도 쉽게 실천하지 못한 이유이고 아직도 소심한 채식지향 식단에 머무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1. 호박죽 2. 야채구이카레 3. 아사이볼과 비건빵 4. 템페구이덮밥



 그래도 조금은 좋은 사람( 나에게도 지구에게도 그리고 내 사랑하는 강아지에게도)이 되고 싶은 이기심에 하루 한 끼 채식은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하루 한 끼 채식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더 많이 채식을 하게 되고, 요리에 재능이 없는 나에게도 나만의 채식 메뉴가 생겼다. 오늘은 귀찮으니까 그냥 라면 먹을까?라는 유혹을 이기기 위해 매일 사진을 찍어 SNS에  사진을 올린다. 여전히 나는 가끔 고기가 들어간 메뉴들을 맛있게 먹고, 스시 메뉴가 가득한 오마카세와 치맥을 사랑하지만 '하루 한 끼 채식'덕에 정말 아주 가끔만 먹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시작된  하루 한 끼 채식이 마침내 나의 완전한 루틴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 더 부지런하고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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