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긋나긋 조용하게 그리고 치명적인
치앙마이에 도착한 처음 며칠은 고양이의 시간이었다고 해야겠다. 나긋나긋 조용하고 마냥 게으르면서도 민첩하게 이동하는 고양이들처럼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언제부턴가 아침잠이라는 게 사라져 버려서 이불을 칭칭 감고 뒹굴대는 늦잠의 달콤함은 내 몫이 아니게 되고 말았지만, 대신 분주하게 시작하는 아침의 생기가 가득한 거리를 산책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서두를 것 없는 여행지에서 아침이었지만, 채 일곱 시도 되기 전에 말똥 해진 정신으로 깨어나면 선택은 하나뿐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양치를 한 후, 운동화를 챙겨 신고 모자를 눌러쓰고 아침의 거리로 나가는 것. 치앙마이에서 아침을 맞은 첫 날도 그랬다. 숙소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나섰지만, 정갈하고 조용한 거리는 어딜 가더라도 기분 좋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발길 닿는 대로 걸어 처음 도착한 곳은 새벽시장이었는데, 탁발을 나가는 스님들의 뒷모습을 보니 '불교의 나라에 왔구나! '라는 실감이 들었다. 분주한 아침을 여는 시장 안에는 불교예식에 필요한 듯 보이는 꽃장식들과 맛있어 보이는 태국식 반찬들 그리고 뭔지 알 수 없는 태국식 먹거리들이 가득했다. 어느 나라나 시장에 들어서면 느낄 수 있는 재래시장 고유의 활기와 생기가 그곳 치앙마이 아침 시장에도 가득했다. 분주함이 꽉 차 있는데 이상하게도 고요한 시장 풍경은 치앙마이 어디서나 쉽게 마주치는 고양이를 닮아 있었다.
관광지의 시끌벅적함의 온도가 다른 곳.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지만, 어쩐지 조금은 고요하고 잔잔한 느낌. 시간도 그렇게 잔잔하게 흘러가는 기분이 드는 곳. 고양이의 발걸음처럼 사뿐사뿐 가볍고 조용한 도시. 나도 그 느낌을 따라 나긋나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지는 곳. 치앙마이는 그런 곳이었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골목의 풍경은 여전히 조용했다. 치앙마이 주민들은 출근도 하고 등교도 할 시간이었지만 그마저도 조용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오래전 일본에 갔을 때 느꼈던 사근사근한 아침풍경과 닮아 있으면서도 좀 더 소박하고 투박한 그 느낌이 좋았다. 치앙마이에서 맞는 첫 아침의 시장구경은 앞으로 내내 내가 그 도시를 기억하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그 도시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득 담은 다정하고 소곤소곤한 그 풍경을 시작으로 기억의 미로를 걷게 될 ( 아직은 미로가 아니어서 이 글을 쓸 수 있다!) 나중이 왠지 지금부터 설렌다.
치앙마이는 고양이의 도시이다. 치앙마이에 가면 어디서나 쉽게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다. 고양이가 차지한 곳에 우리들이 잠깐 들러가는 거라고 해야 하는 게 맞을지도...... 거리나 책방, 카페에서 그리고 거리의 노점상에서도 느긋하게 앉아 있는 고양이들과 쉽게 마주친다. 사람들을 전혀 피하지 않는 고양이들. '내 공간에 와서 뭐 하는 거니?'라고 묻기라도 하듯 자세조차 바꾸지 않은 채 조용히 사람들을 바라본다. 사진기를 들이 대면, 고개를 돌리기도 귀찮다는 듯 나른하게 렌즈를 바라보는 고양이들이 가득하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면 조심조심 살펴야 한다. 소리 없이 조용하게 느긋한 포즈로 앉아 있는 고양이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고양이를 위해 살짝 비켜가는 발길이 필요하기도 하고 , 고양이의 시간을 맘껏 공유할 수 있기도 한 곳 치앙마이. 그래서인지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은 고양이의 시간처럼 흘러간다. 느긋하고 조용하게 그리고 때론 날렵하게 이동하는 고양이의 동선을 따라가는 시간들. 조금은 번잡하고 활기 넘치는 강아지의 시간을 여행하는 날들이 더 많았지만 고양이의 시간을 따라가는 여행도 꽤 좋았다. 물론 며칠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혼자 여행의 기회가 온다면 치앙마이에 다시 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잔히 고여있는 느린 시간 속에서 아주 천천히 마시는 커피와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책을 옆에 두고 작고 낡은 의자가 가득한 커피집에 앉아있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 치앙마이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행자의 시간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