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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키 Dec 12. 2024

일이 손에 안 잡힌 지 9일 째

나는 어쩌다 종북좌파 취급을 받게 되었나(?)

널널한 회사에서 비상계엄 관련 뉴스 속보를 훔쳐보며

손이 빠른 나는 이 회사에서 남는 시간이 많다. 하루 8시간을 업무에 사용하고 있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남는 시간이다. 원래는 블로그도 써 보고 브런치도 쓰면서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용 쓰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은 뉴스 기사만 보는데도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2시간 정도 업무에 집중하다가 '쉴까?'하는 마음으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서 속보를 클릭한다. 엥? 읭? 으엥? 진짜야? 이런 말을 했어? 하는 의문과 함께 1시간 정도가 순삭된다.


지난 주말 이후엔 - 출근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아예 업무시간 전 뉴스 속보를 훑어보고 시간 맞춰 업무를 시작한다. 원래 15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빠르게 업무를 파악하고 처리했었는데 지금은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다. 전혀 없다.



나는 언제부터 저들이 말하는 '종북좌파'였을까

머리가 크기 시작하던 10대 후반, 나는 전교조 선생님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전남의 대안학교에 다녔다. 그 곳에서는 '노조', '좌파', '운동권'이라는 단어를 쉽게 접할 수 있었으며 수업 시간 이후에도 사회탐구 과목의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현재의 사회문화와 이전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갔는지(근현대사 공부에 가까운)를 가르쳐주는 비정기적 방과후교실이 있었다. 당시 학교에서 공부를 꽤나 열심히 하던 나는 방과후교실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며 뇌에 붉은 띠를 두른 진보가 되었다. 그리고 내 곁엔 이명박 당선 방송을 지켜보며 쌍욕을 하던 고등학교 선배들과 후배들, 친구들이 있었다.


그 학교에 나를 집어넣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부모님도 있었다. 아버지는 끈적한 밑바닥에서 네 발로 기어 올라오려고 노력하던 연줄 없는 노동 작가였다. 아무 곳에서 아무 일이나 하던 아버지는 대학생이던 어머니를 우연히 만나 나를 낳았고, 낮에는 노가다판에서 못질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쓰면서 나를 키워냈다. 아버지는 아주 어린 나를 앉혀놓고, 김대중 대통령 당선 실황을 함께 보며 어머니와 나를 얼싸안았다. 그 작고 흐린 흑백TV를 아직도 기억한다. 초등학생이던 나를 광주 518묘지로 데리고 가서, 사진들이 무섭더라도 똑똑히 보라며 눈물 흘리던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고속도로 한 켠에 차를 세우고 펑펑 울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나는 투표권을 가지게 되고 나서부터 할 수 있는 모든 투표를 다 했지만 내 첫 투표에서는 박근혜가 당선됐다. 엥? 우리 나라에 나이 드신 강경 보수파들이 이렇게 많았나? 그런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 당시 우리 과 선배들 중 일부는 박근혜와 박정희의 사진을 SNS에 올리며 적극 지지를 선언했다.


그 때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은 사실 좁고 머릿수가 부족한 소수의 세상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하고 서로가 믿고 있는 '진실'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들에게 내가 믿고 있는 세상을 보여주었으나 그들은 보려 하지 않았고,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런 나를 좌파라고 불렀고 빨갱이라고 칭했다.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세상에 실망했다. 그들이 말하는 좌파, 빨갱이 티가 날까봐 입은 닫고 뒤로 숨게 되었다.



바쁘다빠현대사회(X) 위험하다위험해현대사회(O)

실망스러운 세상이어도 먹고는 살아야 한다. 돈 없어 이민도 못 가고 어쨌든 여기에 발 붙이고 살아야 하니까. 근근이 알바를 하고 취업을 하게 되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박근혜 탄핵 기원 집회에 여러 번 나갔다. 그 때 당시 광고대행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는데 부당한 일을 많이 겪으면서 내 안의 붉은 피가 나대기 시작했다. 결국 박근혜는 파면되었고 장미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다. 이제 불행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다.


엥 근데 그 다음 대선 투표에서 윤석열이 당선됐다. 대체 이게 머선 일이고... 우리 나라 국민이 같이 하는 팀플인데 프리라이더가 많았는지 결과는 폭망이었다(고 내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윤석열이 집권한지 2년 정도 지나고 평일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비상 계엄이 선포됐다. 북한 오물 풍선 하나에도 새벽 내내 울리던 안전 재난문자마저 한 통도 오지 않고, 밤에 침대에 누워 SNS를 눈팅하다가 알게 되었다.


21세기 정보화시대에 계엄이 뭐야 지금. 내가 고등학교 때나 배우던 거 아니야. 우리나라 이제 망하는 거야? 나 회사 안 가도 돼? 나는 남편에게 힘 없이 물었다. 남편은 뉴스를 보러 거실로 나갔고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팀플만 망한 게 아니라 그냥 나라가 망해가네.


새벽의 해프닝이랍시고 떠드는 뉴스를 보았다. 그 날 이후 새벽에도 여러 번 깨서 뉴스 속보를 보곤 한다. 계엄했나? 계엄 떴나? 회사에서도 일이 끝나면 인스타그램이나 눈팅을 좀 하고 다시 다른 업무를 하고는 했는데 지금은 뉴스 속보만 찾아보게 된다. 2차 계엄의 위험이 있다며 책임자를 불러 질책하는 모습과, 주말 간 다른 팀(?)에서는 투표에 참여조차 하지 않는 모습을 본다. 그 모습 속에서 나는 나와 내 주변과 모든 일상의 위험함과 불안함을 느낀다. 열심히 일하며 지키고 있던 나의 일상이,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파삭 깨지고야 마는 모습을 상상한다.



후퇴하는 것 같이 보여도 조금씩 진보한다

우리 집 거실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면, 날씨가 정말정말정~~말 좋은 경우 여의도의 빨간 빌딩(이름 모름)이 보일 때가 있다. 나는 거실에서 여의도 쪽을 가만히 바라본다. 너무나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여의도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저번 주말 내가 발 붙이고 있던 곳. 이번 주말에도 발을 디디고야 말 여의도.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돼도 서민은 다 똑같아. 우리 일상엔 별 다를 거 없어."라고 내게 말하는 속 넓은 사람들을 싫어한다. "나는 정치같은 건 잘 몰라. 관심도 없어."라고 내게 말하는 쿨한 사람들을 속으로 미워한다. 나는 태생이 속이 좁아서인지, 좁고 알량한 마음으로 그들을 원망한다. 당장 복지 예산이 줄어들고 지역화폐 예산이 다 깎였는걸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소리치지 못한다. 그저 좁은 속으로 욕을 조금 할 뿐.


나는 어쩌다가 혹독한 겨울 추위 속 핫팩과 응원봉을 들고 여의도로 몇 번이고 가게 되었나. 손에 잡히지 않는 일을 꾸역꾸역 해 나가며 이 시국에 대해 고민한다. 아버지가 내게 항상 주문처럼 말하는 말을 기억한다. "지금은 한 걸음 후퇴하는 것 같아도 멀리서 보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야."


진보란 '바람직한 목표를 향한 운동,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발전이나 전진'을 뜻한다. 진보는 종북좌파세력이나 빨갱이라는 단어로 치부되는 단어가 아니라, 바람직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을 의미한다. 당파와 좌우를 막론하고, 우리는 모두 조금씩 진보한다. 오늘도 여의도 쪽을 바라보며, 모두가 진보하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하는 다음 팀플은 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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