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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키 Dec 31. 2024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문장의 무게

난 변방에서 옹졸하게 회사 욕이나 하고 싶다고요

연대 : ①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책임을 짐.

여러 차례 광장에 모인 나들을 본다. 처음 모였던 나들은 몹시 외로웠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그 밖에 있기도, 그 안에 있기도, 그 언저리 주변부 어딘가에 어정쩡하게 서 있기도 한다. 나는 소리를 지르기도, 노래를 부르기도, 누군가의 발언을 주의 깊게 듣기도 한다. 나는 걸어서 들어가기도, 걸어서 그 자리를 나오기도,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깔개 핫팩과 신문지를 겹쳐 펼치기도 한다. 나눠주는 피켓을 받기도, 꽁꽁 언 왼손으로 핫팩을 마구 흔들기도, 오른손에는 응원봉을 들고 흔들기도 한다.


나는 때로 집에 누워있기도 한다. 뉴스를 틀어놓고 소파에 늘어져있기도,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속보를 새로고침할 때도 있다. 오늘은 내가 없는 그 광장에 어느 정도의 인파가 모였는지, 최악의 상상 속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몇 번이고 화면을 새로고침한다.   


나는 내가 바라보는 일들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른다. 바람은 있으나 확신은 없다. 다만 마음 깊이 불안할 때마다 가만히 있기보다는 광장에 나가는 행동을 선택할 뿐이다. 내가 선택한 행동에 어떤 결과가 따라올지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말보다 행동을 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하기에, 금요일 저녁 쑤신 몸과 구린 체력을 애써 무시하며 광장에 나갈 짐을 싼다. 



연대 : ②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

나보다 어린 20대 여성들이 앞 다투어 무대에 올라가 발언하는 내용을 듣는다. 저마다의 속상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모여 "투쟁!"으로 끝맺음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혼자 울컥하기도 한다. 어쩜 저리 똑부러지는지, 언제부터 저렇게 속마음을 말하고 싶었을지, 저 목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짝꿍에게 "넘어오지 마~?!"를 시작으로 엄청나게 선을 그어대며 자라난다. 성별로도, 나이로도, 세대로도, 학벌로도, 사는 곳으로도, 그 밖에 수많은 이유와 근거를 들어가며 서로서로 선을 긋고 벽을 세운다. 저들은 우리와 다르다고 말하면서 그 '우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선을 긋고 또 그어대는 모습을 본다. 


그런데 요즘 신기한 일이 자꾸만 일어난다. 인터넷 뉴스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국회 앞 장갑차를 몸으로 막아낸다. '빠순이' 취급이 익숙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 농민을 지켜낸다. 그 자리에 미처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종종거리는 마음이 모여 무료 커피와 무료 국밥으로 돌아온다. 집회의 플레이리스트는 점점 힙해져만 가고, 나는 토요일 지하철에 앉아 유튜브에 '탄핵 플레이리스트', '민중가요'를 검색하며 가사를 달달 외워본다. 원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절대 지치지 말자고 말하며, 예상치 못한 큰 사고가 일어나도 굳건히 서로를 지키며 위로하고 도닥인다.


24년 12월 나는 우리가 다시 '우리'가 되는 과정을 조용히 지켜본다.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지금 잠시 우리 사이를 가르려는 세력을 다시 한 번 쳐다봐준 후, 서로 잡은 손을 조금 더 세게 쥐어본다. 사실 우리는 모두 손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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