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이 잔소리는 완벽에 가깝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시작조차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머릿속으로는 온갖 걱정과 불안을 끌어안고 플랜 B, C, D를 세우면서도 밖으로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게 나다. 무언가가 잘못되면 결국 세계가 멸망하는 정도의 걱정까지 가고 나서야, 밀려오는 마감일의 압박에 마지못해 일을 시작하는 사람. 그게 나다.
게으른 완벽주의자. 나는 항상 뒤에 붙은 '완벽주의자'에 초점을 두고 저 말을 이해해왔다. 나는 완벽주의자니까. 나는 완벽하게 일을 해 내고 싶은 사람이니까. 나는 뭘 하든지 완벽하고 싶으니까. 나는 일뿐만 아니라 취미조차도 완벽히 잘 해내고 싶으니까.
그런데 요 몇 년 사이 자꾸 '게으른'에 눈이 간다. 나는 게으른가? 일을 진짜 잘 미루긴 한다. 하지만 발등에 불 떨어지면 잘 해내곤 했는데. 물론 그렇게 시작한 일 중에 정말 내 기준에 차게 완벽한 마무리는 없었다. 솔직히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일이 더 많다. 하지만 언젠간 시작하지 않을까? 내가 준비가 완벽하게 된다면. 그러면 언젠간 정말 완벽해지지 않을까?
'완벽주의'를 네이버에 검색하면 최상단에 완벽주의를 설명하는 의미가 아닌 "강박성 인격 장애 - 정신 건강 장애"라는 검색 결과가 뜬다. 더 볼 것도 없다. 완벽주의라는 말을 깊게 들여다보면 그 알맹이는 결국 정신 건강 장애(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음)다. 완벽이란 것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내가 다다를 수 있기는 할까? 내가 원하는 완벽이 대체 뭘까? 내가 공자가 되면, 맹자가 되면, 간디가 되면, 예수가 되면 나 자신을 완벽하다며 인정할 수 있을까?
답은 알겠지만 NO다. 이런 작은 나도 인정할 수 없는데 그런 큰 일을 해내는 사람이 된다고 해서 내가 나를 인정할까? 그 결과까지 가는 수많은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을 질책한다. 완벽주의가 말도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완벽한 결과물을 위해 일단 시작을 미루는 나, 완벽한 일을 하기 위해 실수를 하는 나, 완벽에 다가가기 위해 애를 써보지만 안 된 나 - 이런 나를 누구도 아닌 내가 질책하고 힐난하기 마련이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 어쨌든 결과를 만들어내라고 스스로에게 지랄하는 상황. 이게 정신 건강 장애가 아니면 뭘까. 완벽주의라는 말은 원래 없다. 완벽 - 결함이 없는 완전한 상태로, '흠이 없는 구슬'에서 온 말인데... 진짜 웃기고 앉아있는 말 아닐까? 결함이 없이 완전한 사람은 절대 없고, 결함이 없이 완전한 일도 취미도 그 무엇도 절대 없다. 그 아무것도 결함 없는 것은 없기에 사실 이 세상에 완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이거 진짜 모두가 인정해 줘야 한다.
오늘의 글감을 제공해준 협업에 굉장히 탁월한 예술가 곽곽과, 이래저래 고민 많은 완벽주의자 막걸리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가 나를 포함한 우리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물론 단톡방에서 다 했지만 그래도 조금 옮겨보자면) 아래와 같다.
하루의 작은 성공을 무시하지 말기. 뭘 성공했는지 모르겠다면 작고 작은 성공을 모아 기록하고 자주 들여다보기. 일단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지발싸개같더라도 시작하기. 작심삼일이어도 하루만 더 지속해보기. 실패해도 실패라고 결론 짓지 말고 그냥 좀 놔둬보기. 남들 시선 신경 제발 끄기. 남들 인정 받으려고 박박 속 긁지 말기. 무엇보다 내가 나를 잘 알고 인정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보살피고 우쭈쭈하고 어쩌고저쩌고 하여튼 긍정적인 것들만 골라서 나에게 해주기.
완벽병을 고치는 방법은 진부하지만 결국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게 아닐까. 얘들아 이거 나랑 약속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