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겪어보는 임금 체불에 대하여
알아차렸다. 이 회사는 내게 따뜻한 말로 손을 내밀어주었지만 내 월급을 제 날에 맞춰주기 어렵구나. 그렇다면 회사의 장단점을 따질 가치가 남아 있을까?
전월 급여는 급여일이 하루 꼬박 지나고 나서야 겨우 지급되었다. 직원들도 물론 그랬겠지만, 나 또한 매 시간 매 분 은행 앱을 새로고침하면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오후 4시가 30분 가까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입금 알람이 사무실에 띠링띠링 울려퍼지고, 다들 다행이라는 듯 그 날 마지막의 한숨을 포오 쉬었다.
이번 2월 급여일은 주말도 끼어있지 않았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월급이 익월 5일에 지급되는 시스템. 1월 설 연휴를 길게 잘 보내고 온 직원들을 모아놓고 회사 상무이사가 무겁게 입을 뗐다. 오늘이 월요일이고 급여일이 수요일이지요. 이틀 뒤 드리는 이번 달 급여는 50%만 지급됩니다. 회사 돈이 밖에 묶여있어서 그것만 풀리면 해결됩니다. 앞으로 4개월은 50%만 지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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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회의실은 마음 속 소리들로 너무나 시끄러웠다. 그럼 당장 모레 50%만 지급된다는 소리인가요? 우린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저희 집은 당장 설 연휴에 양가 선물도 드리고 용돈도 드렸어요. 우리 아이 학원비를 제가 내야 하는데요. 회사에서 대출 받아서라도 직원들 월급은 줘야죠. 대표 차든 집이든 팔아서라도 저희 월급은 줘야죠.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회의를 가장한 통보는 종료되었다.
화요일, 월 급여가 300만원 미만인 직원들에게는 최소 200만 원의 급여를 보장해주겠다고 사내 메신저를 통해 공지가 내려왔다. 모두가 네. 를 쳤다. 나는 네. 를 하지 않았다. 홧김에 당일 반차를 냈다. 주변인들에게 묻고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물었다. 모두가 빠른 퇴사를 외쳤다. 미지급금이 늘어갈수록 너만 스트레스야. 그냥 포기해. 눈 앞이 캄캄했다. 당장 대출 원리금이랑 카드값은 어떻게 갚아. 들어온지 3개월 밖에 안 되어 비상금도 없다. 이게 내 현실.
수요일, 보장해주겠다던 200만원이 입금되지 않는다. 은행 알람만 기다리던 나는 결국 오후 3시 20분에 상무이사실로 찾아갔다. 퇴사시켜주세요. 근속 기간이 짧아서 대출 금리 너무 비싸고, 대출 이자 낼 돈도 솔직히 없는데다, 무직자 대출이 더 금리가 싸요. 상무이사는 월급이 100% 입금되면 퇴사를 하지 않을 거냐고 물었다. 나는 네. 를 했다. 하지만 매일 불안해할 거라고 덧붙였다. 상무이사는 회사와 논의를 해 보겠다고 한 후 나를 내보냈다. 오후 5시 40분 경영지원팀을 찾아가 죄송하지도 않은데 죄송하지만, 오늘 약속한 200만 원이 입금되는 게 맞는지 물었다. 경영지원팀장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확답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리고 대리님, 우리 서로 잘못도 없는데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말죠. 나는 네. 를 했다. 끝내 오후 6시에 "금일 급여 지급이 불가하며 명일 입금될 예정"이라고 사내 메신저를 통해 공지가 내려왔다. 모두가 네 알겠습니다. 를 쳤다. 나는 네. 를 하지 않았다.
목요일인 오늘, 지금 시간은 오후 4시 51분. 급여일은 이미 지났고 아직도 200만원, 아니 애시당초 얘기했던 급여의 50%조차 입금되지 않고 있다. 2시 경 경영지원팀장이 내게 사직서를 작성해달라며 종이를 내밀었다. 이번 주에 바로 퇴사 처리 요청하셨죠? 오늘 정리 가능하시면 오늘까지로 작성하시겠어요? 회사 사정이 너무 어려워서 오늘은 꼭 입금 약속 드렸는데 아직도 못 드리고 있네요. 욕을 할 수 없어서 나는 네. 를 했다. 묵묵히 사직서를 쓰자 미안하다는 말이 날아왔다. 어제는 서로 잘못 없으니 사과하지 말자면서요, 가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나도 죄송하다고 대답했다. 퇴직 사유에는 뭐라고 쓸까요. 혹시 모르니까 '임금 체불'이라고 쓰세요. 실업급여 기준은 안 되긴 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저희가 아직까지 체불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하루만 지나도 체불 아닌가요, 또한 목 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꾹꾹 누르며 나는 겨우 네. 를 했다.
나는 달콤한 면접관의 말에 속아넘어간 순진한 직원일까?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지만 결과물은 또 다시 4개월 만의 퇴사. 아무리 경영 악화니, 임금 체불이니 외쳐보아도 나는 그렇고 그런 블랙 기업을 순진하게 다녔던 사람이 되었다. 내쫓기는 기분으로 뭣도 없는 인수인계 파일을 짧게 정리하고 브런치를 쓴다. 이 자리에서 쓰는 마지막 브런치스토리. 앞으로는 내 집 거실에서 키보드를 두들기게 될 것이다.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너는 목표가 뭐니. 하고 싶은 게 있어야 그 쪽으로 달리지. 내가 말했다. 아빠,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바빠. 나는 살아남는 게 목표야. 지금은 하고 싶은 걸 고를 때가 아니라 아무거나 돈 되는 걸 찾아야 할 때야. 아버지는 한숨을 포오 쉬었다. 나도 대답처럼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급여가 들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