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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H May 28. 2023

기적의 시작

기억의 단편을 모아

미국으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의 마지막 주일이었다.


일단 배경 설명부터 하자면, 8월 중순이 학기 시작일이었다.


뒤돌아보자면, 그때 나는 세상을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왜 부모님이 거기에 장단을 맞춰주셨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하나님이 어떻게든 뭐든 잘 마련해주시겠지라는 누가 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 기본 베이스로 갖춰져 있었다.


진짜 단순히 8월 중순에 당장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면 jet lag 때문에 방해받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일주일 전에 미국에 가야 한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기숙사는 예외 없이 학기 시작 전 주말부터 입소가 가능했기에 한 7일 정도 묵을 곳을 찾아야 했다. 어디서 묵을 생각이냐는 부모님 질문에 그냥 공항 주변이나 학교 주변 모텔에 있다가 가지 뭐 이런 식으로 대답했던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하면 진짜 웃긴 건 부모님이 그냥 알겠다고 하셨던 것이다. 심지어 모텔도 미리 알아보지도 않았다. 그냥 비행기 내려서 가까운 데 가면 되지 않을까라는, 그리고 미국 돈 한 200달러면 충분하지 않을까라고. 하룻밤에 20-30달러 정도 하지 않을까라고. 그냥 나는 이름도 못 들어봤던 동네니까 그 동네는 시골이겠거니 생각했고 시골 모텔은 쌀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런 내 말은 들은 부모님은 알겠다고 하셨다. ㅋㅋㅋ 검색은 해보지 않았다... 그냥 나는 아무 생각도 없었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다.


궁금해서 옛날 메신저앱과 이메일 기록을 한번 보고 왔다. 내 기억이 맞았다. 진짜 떠나기 3, 4일 전 마지막 주일이었다.


오후에 청년부 예배를 드리고, 팀모임을 갔다. 팀장님이 팀사람들에게 내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이야기를 해줬고 마지막 인사말을 나누라고 해줬다. 그 팀사람들이 쭉 둘러앉은 공간에서 간단히 이야기했던 짤막한 기억은 있다. 사실 대단한 학교도 아니고, 유명한 지역도 아니고, 그래서 굳이 내가 가는 동네를 이야기해야 하나 그냥 하지말까라는 고민을 계속했었다. 근데 말하다 보니까 뭐 간단하게 미국에 리치몬드라는 지역에 있는 로스쿨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했었다. 팀모임 끝나고 이제 사람들하고 인사하면서 나가려고 하는데, 좀 조용한 이미지였던 새하얀 언니가 나에게 다가왔다. 시간이 너무 지나 자세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너가 가는 데가 리치몬드야?"

"네, 왜요?"

"나 거기 몇 년 전에 살았는데"

"네?"


진짜 놀랐다. 뭐라고? 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뭐지? 응?

언니도 내 입에서 리치몬드가 나와서 놀랐단다.

내 선입견으로는 우리 교회 청년부에는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많지 않았었다.

언니의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물어봤던 것 같다.


"언니, 어디서 얼마나 살았어요? 저 며칠뒤면 비행기 타는데 아직 숙소 못 정했어요. 어디 숙소 묵을 데 없을까요?"


선교 관련 센터였다. 비행기 날짜를 들은 언니가 한 소리 했던 것 같다. 언니는 아마 사정을 설명하면 숙소도 가능할 수도 있을 거라고 이야기 해줬다. 그리고 그쪽에 내 사정 설명해 주고, 내일 선교 센터 사람들 이메일 주소나 페이스북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쪽분들과의 연결도 상당히 급박하게 이루어졌다.


음..... 나는 정말 흥분했었다.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막 신난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막 하려니까 하나님이 날 걱정해서 연결시켜주신 것이라고 아주 그냥 확신에 차서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녔다. 나한텐 이게 기적의 시작이었다.


당연히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가는 길의 첫 발걸음을 이렇게 열어주셔서 아주 신나기만 했다. 내 미래도 계속 이렇게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될 것이라고 당연하게 기대하면서 두려움도 없고 계획도 없고 그냥 일이 닥치면 닥치는 대로 막 여기저기 부딪히며 살게 된 시작이었다. (사실 그전에 로스쿨 준비도 그냥 막 했는데 주변에서 선배들과 교수님이 불쌍했는지 너도나도 나서서 도와주시긴 했다.)


사실 해외 가는데 공항에서 픽업해주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 줄 몰랐다. 나는 숙소만 요청했는데 공항 시간에 맞춰오셔서 픽업까지 해주셨다. 심지어 거기에는 한국인 스텝분들도 계셨다. 이게 무슨일이야. 나중에 들어보니 숙소도 어떻게 어떻게 하다보니 우연히 자리가 생기게 되어 나에게 숙소 제공이 가능하다고 답변을 주셨었다고도 하셨다. 아주 넘치게 배려를 받았다. 세상에, 첫날 도착해서 처음 먹은 밥이 소고기 볶음과 밥이었다. 원래 거기 계신 분들이 미국인인데도 그 음식을 좋아해서 자주 해드신다고 ㅋㅋㅋㅋㅋㅋ 미국가서 처음 먹은 식사가 한국밥이었다.


묵는 7일 동안 아주아주 맘편히 즐겼다. 숙소도 주시고 밥도 세끼 다 주시고 저녁에는 센터 사람들과 야외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도 나누고 센터에서 같이 영화도 보고 무슨 캠프 놀러간 줄.


걱정하는 엄마아빠에게 내가 센터사람들과 함께 환하게 웃는 사진을 전송했다. 소고기 밥도 사진 찍어 보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첫날에 미리 숙소비를 계산해야 하는데 내가 현금은 당장 이거밖에 없다고 다 내놓았다. 사실 여기서 계좌도 열고 한국에서 돈받으면 몇일뒤면 드릴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이걸 보시더니 기가 막히셨는지 뭐라고 몇마디 하시고는 ... 반절만 가져가셨다. 나중에 한국에 오기전에 여기 들러서 그 반절만큼 헌금으로 드리고 왔다. 사실 더 드리고 싶었는데 여유가 없어서 그랬지. 뭐 어찌됐든. 여기서도 우리 학교에서 교수님들과 친구들이랑 놀던 것 처럼 아주아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고, 학기 시작 전 주말에는 픽업을 오셨던 스텝분이 태워다 주시기까지 했다. 진짜 고생 하나도 안했다. 그 때는 마냥 즐거웠지.


이제 뒤돌아보면, 앞으로 닥칠 시련들과 헤쳐나갈 현실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신 하나님께서 처음 일주일동안만이라도 휴식을 주셨던 게 아닌가 싶다. 그게 맞는 것 같다.    



어제 언니한테 문자를 남겼다. 사실 그동안은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렇게 나를 기억하고 있을 언니에게 연락할정도로 내처지가 자랑스럽지 못했는데 이제 아니니까. 언니가 나를 기억하더라고.. 다담주에 보러가겠다고 했다. 기대된다. 앞으로 연락할 사람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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