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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H May 29. 2023

교회가고 싶어요

두번째 기적

토요일 이른 저녁 대략 오후 5, 6시쯤 기숙사에 들어왔다. 기숙사에는 나 혼자였다. 아직 학교 계정으로 로그인이 안 되어 학교 와이파이를 사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저녁밥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서 아마 굶었던 듯 했다. 바글바글하던 센터를 떠나 갑자기 조용한 곳에 혼자 이렇게.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으로 가득했다. 내일 교회가야되는데. 교회가면 밥 줄텐데.

인터넷이 안될 줄 모르고 그냥 센터에서 일주일 동안 아무 생각이 없이 놀다 온 건데.

토요일 저녁. 캠퍼스에는 사람이 없었다. 인터넷 좀 빌려 쓰자고 할 사람도 없었다.


학교에는 채플이 있겠지? 이러고 밖에 나가서 채플 건물을 찾아서 한 번 보고 왔다. 뭐 대충 내일 아침에 9시, 10시쯤 가면 되겠지. 잤다.


일어나서 준비하고 채플에 갔다. 채플이 텅 비어 있었다.

아직 학기가 시작하지 않아서인 듯했다.

학기 시작 전날 일요일 아침. 캠퍼스는 평화롭고 어디 문 연 매점도 없었고, 아무도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여기서 살짝 충격이었다.


차가 없는 내겐 이 캠퍼스는 마을과는 동떨어진 숲속 같았다. 인터넷을 못 해서 어디 연락도 안 되고 어떡하나 싶었다. 어떡하지...교회 가고 싶은데... 그냥 포기하고 채플에서 다시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호수를 건너야 했다. 저 호수 건너편에, 학교 셔틀버스가 있네?


달렸다.

혹시나 출발할까 싶어서 달렸다.


기사님이 있었다. 인자한 할아버지였다. 우리 학교는 시니어분들이 셔틀 운행을 해주셨다.

문이 열렸다.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굿모닝이라고 했다. 잘 보여야 했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내 소개부터 시작했다.

뭐 대충. 이름 이야기하고, 로스쿨 이제 다닐 거라고 하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고, 기숙사 어제 들어왔다고 하고, 본론을 이야기했다.


"캠퍼스랑 가장 가까운 아무 교회에나 내려주세요."

이미 10시가 가까워와서 예배 시간에 늦을 게 뻔했다. 앞으로도 교회 다니려면 걸어 다닐 거니까 가까운 게 장땡이었다.


셔틀버스에는 기사님과 나만 있었다. 학기 시작 전 일요일이었다.


기사님은 셔틀버스를 출발하면서 어떤 교회가 좋을까 하며 캠퍼스 가까운 교회 이름들과 교단들을 생각나는 대로 말씀해 주셨다.

슬슬 캠퍼스의 숲을 지나 집들이 보이고 교회가 하나 둘씩 지나쳐 가기 시작했다. 기사님은 계속 지나치는 교회를 보며 이 교회의 이름과 교단과 몇 년도에 지어진 교회인지 설명해 주셨다.


속으로

'어 어 '

'내려야되는데?'



한 두세 개 지나치고 나서 그냥 내려달라고 했다. 알겠으니까 내려달라고.

지금 가야한다고.


기사님은 내 말이 안 들리는 척했다. 분명 들렸을 텐데 씹으셨다. 씹고 계속 교회 설명을 하시면서 순간,


"아, 캠퍼스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가 거기 있었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혼잣말하시면서 유턴하기 시작했다.


'ㄷㄷ 학교 셔틀버스가 유턴?'

다급하게 외쳤다.

"어디 가세요? 이렇게 가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가도 돼요?"


여유롭게 핸들을 바로 돌리면서 말씀하셨다. 유턴은 이미 끝났다.

"괜찮아. 어차피 학기 시작 전이라 셔틀버스 타려는 학생들도 없어."


혹시나 기다리는 학생이 있으면...? 이런 물음은 그냥 속으로 삼켰다.


학교 셔틀버스는 내 전용 리무진이 되었다. 올 때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셔틀버스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맞나? 그냥 아무 교회에 빨리 내려줬으면 했다. 나는 예배에 늦었다. 확실하게 늦었다.  


기사님은 이제 신나게 그 교회에 관해 설명을 해주시고 있다. 뭐, 오래된 교회고, 어떤 교단이고, 어떤 사람들이 있는 교회고, 등등.


아까 지나친 교회들을 다시 지나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속으로만 그냥 내려달라고 계속 외쳤다.


마을이 끝나고 익숙한 숲이 보인다. 근데 캠퍼스를 그대로 지나친다?알고 보니 셔틀버스가 가는 반대방향으로 나가면 캠퍼스 바로 앞에 교회가 하나 있었던 것이다. 속 깊은 기사님이 거기까지 가주시려고 버스를 돌리셨던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거기는 잘사는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니, 너한테도 좋을 거라고.


캠퍼스가 금방 끝나고 도로가 보였다. 어? 그리고 바로 새하얀 교회가 보였다.

내가 상상하던 그런 모양의 교회여서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바로 저 교회야, 가깝지?"

최대한 교회 앞에까지 데려다주시겠다면서 다시 유턴도 하시고 이렇게 저렇게 운전해 주셔서 교회 바로 앞에까지 내려다 주셨다. 감사했다. 기사님께 감사 인사를 박고 셔틀버스는 떠나고 나는 뒤로 돌았다.


초록 잔디 위에 하얀 이쁜 건물이었다. 뭐, 나쁘지 않았다. 걸어갈 수 있을 만한 제일 가까운 교회로 하나님이 기사님을 통해 인도해 주신 것이라고 믿었다. 이 교회 앞에 내리게 된 과정은 요상했지만, 뭐 이 또한 준비해 주신 거겠지라고 생각하고, 교회 문을 열었다.


바로 본당이었다. 본당 문을 열었다.

처음 본 그 광경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평생 잊을 수 없다.

미국 와서 처음 본 제일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세로로 넓은 예배당 안에 양옆으로 큰 창문들에서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수백 개의 하얀 뒷모습을 보고 충격을 먹었다. 교회에 젊은 사람이 없네? 동양인이 없네? 아, 여기는 내가 다닐 곳이 못 되겠구나 바로 결론을 내리고 맨 뒷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각 줄마다 찬송가와 성경책이 꽂혀져 있어서 그걸 꺼내고 눈치코치로 보면서 따라했다.


설교가 끝나고 마지막 찬양을 했다.  

근데, 찬양이 내가 알던 찬양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땐가 중간고사 끝나고 점심때 집에서 혼자 짜장면 시켜먹었는데 그때 극동방송을 틀어놨었다. 찬송가를 편곡했던 곡이 흘러나왔다. 생전 사연 남기는 건 해보지도 않았었는데 처음 들은 그 찬송가 멜로디가 좋아서 씨디를 받고 싶어서 시험 끝나고 짜장면 먹다가 찬송을 듣게 됐다는  내용으로 사연을 남겼고 씨디도 받았었던 곡이다. 지금 씨디는 어디있는지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찬송가 많이 불러서 진짜 아는 찬송가 많았는데, 그건 그때 처음 들었던 곡이었다.


'내 맘에 주여 소망 되소서. Be Thou My Vision'

영어로는 처음 불러서 떠듬 떠듬 소리 내어 불렀다. 그 찬양을 부르면서 찬양대가 예배당 밖으로 나간다.

찬양대가 저 멀리서 오면서, 한 명씩 내 옆을 지나치면서, 나를 흘끔흘끔 보는 시선이 너무나 잘 느껴졌다.

당연하지.

백인만 수백 명 쫙 깔린 이곳에, 시커먼 머리한 동양 여자애가 혼자 기어들어 와서 자신들이 부르는 찬양을 같이 부르고 있으니.

사실 그 시선을 느끼면서 나도 뭔가 동족이라는 표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당신들과 같은 크리스천이고 나도 찬송 많이 아는 사람이라는 어필을 하고 싶어서 목소리를 조금 더 크게 냈다.  


예배가 끝났다.

나도 주목받는 걸 즐기는 사람이긴 한데도 나를 보는 눈들이 좀 지나치게 많았다.

어색 어색하게 나도 사람들 틈에 껴 밖으로 나가다 목사님한테 왼쪽 팔뚝을 붙잡혔다.

너 누구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로 자기소개를 갈겼다. 아까 한번 해봐서 좀 더 빠른 속도로 가능했다. (갈기다: 5. 말을 되는대로 마구 지껄이다.) 이름 이야기하고, 한국에서 왔고, 여기 로스쿨 다닐거라ㄱ


여기 로스쿨을 다닌다고 하는 순간 목사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셨다.


"여기 오기 잘했다. 여기 너네학교 졸업생들 많고 변호사도 있고 판사도 있고 검사도 있단다."


그래, 역시 하나님이 데려다주신 게 맞았다고 생각했다. 여기 다니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어떻게 오게 되었니?"


그래, 이 황당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되었다.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에 내려달라고 했더니 셔틀버스 기사님이 내려주셨어요."



그리고 목사님한테 교회에서 밥은 주냐고 물어봤다ㅋㅋㅋㅋㅋㅋㅋ배가 고팠다.

 준다고 저쪽으로 가라고 해주셔서 사람들 따라 옆에 건물로 가서 인사 대충하고 바로 쿠키 과자 등등 미국 밥을 허겁지겁 먹었다.



나중에 찬양대 지휘자님이 그랬다.

너 처음 왔을 때 나가면서 너 봤는데 우리 찬송가를 같이 불러서 되게 신기했고 놀랬다고.

나중에 나도 그 찬양대 일원이 되어서 같이 찬양 불렀다.   

아 진짜, 하나님 너무 웃겼다.


Be Thou my vision, O Lord of my heart;

Naught be all else to me, save that Thou art;

Thou my best thought, by day or by night,

Waking or sleeping, Thy presence my light.

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주 없이 모든 일 헛되어라

밤에나 낮에나 주님 생각

잘때나 깰때 함께 하소서


Be Thou my wisdom, and Thou my true word;

I ever with Thee and Thou with me, Lord;

Thou my great Father, and I Thy true son,

Thou in me dwelling, and I with Thee one.

지혜의 주여 말씀으로서

언제나 내 안에 계십소서

주는 내 아버지 나는 아들

주 안에 내가 늘 함께 하네


Riches I heed not, or man's empty praise,

Thou mine inheritance, now and always;

Thou and Thou only, first in my heart,

High King of heaven, my treasure Thou art.

세상의 영광 나 안보여도

언제나 주님은 나의 기업

주님만 내 맘에 계시오니

영원한 주님 참 귀하셔라


High King of heaven, my victory won,
May I reach heaven's joys, O bright heaven's Sun!
Heart of my own heart, whatever befall,
Still be my vision, O Ruler of all.

영원한 주님 내 승리의 주

하늘의 기쁨을 주옵소서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만유의 주여 소망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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