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해진 어느 날
일요일 오전, 노트북을 켰다. 전날까지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느라 저장한, 이미지와 동영상들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바탕화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약 팔십 장을 분류한 파일들이 모두 정착할, 새 폴더를 만들었다.
삭제할지 고민하다가 바로 어제까지 시간과 정성을 들인 작업물이라, 차마 지우지 못해 다른 장소로 밀어 넣은 것이다. 당장 내 눈에서 사라졌지만, 다시 볼지 안 볼지 모를 노란색 봉투 안에서 나의 흔적이 묻은 그것들은, 저희끼리 존재하겠지.
더 둘러보니 익숙한 책 제목을 달고 있는 문서들도 몇 개 흩어져 있었다. 책 속의 인상 깊은 문장들을 필사한 것으로, 나의 단상들도 함께 적어 놓은 것이다. 급히 적느라 명사와 형용사, 앞뒤가 뚝 잘린 어구를 보니, 잊기 전에 메모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였다.
차오르는 느낌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수줍게 이어간, 어눌한 나의 창작시도 몇 편 발견했다. 빈약한 내 언어의 세계를 절감하던 시간이었지만, 당시의 감정만큼은 되살아난다. 소중한 마음을 안고 알맞은 폴더로 이동시켰다.
시선을 옮기며 하나하나 정리를 하다가 모니터에서 귀퉁이에서 멈췄다. 오래전 취업을 할 무렵, 문서 작업을 처음 배우며 최초로 만든 나만의 파일이었다.
“아직도 있었다니….”
이 두 개가 눈길이 닿지 않는 한쪽 구석에서 방치되어 있었다.
그 안에 어떤 것들을 보관했는지 새삼 궁금했다.
마치 남의 것을 건드리는 것처럼 어색한 손짓으로 커서를 딸깍 눌렀다. 학습코칭의 초창기 시절이 드러났다. 전업주부의 티를 여전히 달고 사회 활동을 다시 시도했던 초보 강사 시절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지금은 쓸데가 없어진 퇴물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귀중한 보조자료였다.
자식들이 사용하는 컴퓨터 화면 모퉁이에 처음 ‘내 것’으로 마련하며 뿌듯해하던 기억이 났다. 파일명이 '엄마'라니… 전문가로 성장한 지금, 그 이름이 좀 우습지만 내가 어떻게 시간을 유용하게 흘려보내며 살아왔는지 비교가 되어 스스로 대견했다. 파일 만드는 법을 알려주며 만들어 주던 아이들 기준에서, 이보다 더 적절한 이름은 없었을 것이다. 오늘, 필요 없는 이것들을 미련 없이 삭제했다.
일과 방식에도 변화와 진전이 있다. 이제는 직무에 따른 호칭이나 내 실명으로 다들 ‘나’를 구분한다. 그 시절의 미래가 바로 지금이듯,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면 묵은 정리가 필요하다. 계획에 없던 파일 정리를 하고 나니, 집 안 정리를 마쳤을 때처럼 마음이 상쾌하고 새로운 에너지가 생긴다.
때로는 예기치 않게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이끌릴 때가 있다. 갑자기 마음을 먹게 되는 그런 순간말이다. 그 순간은 한 점 같지만, 운명의 손짓이 파장을 그리며 다가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애초에 시작했던 이미지 파일 정리가 노트북 전체 파일의 정돈으로 이어지니, 나의 내적 공간의 불순물마저 쓸려나간 듯 마음은 단정하다.
언젠가 현재 아끼며 저장한 것들도 삭제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성가신 존재가 아닌, 순리대로 흘러가는 내 삶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준 든든했던 가치였음을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