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첫 번째 무용 수업 시간이다. 처음 뵙게 된 무용 선생님은 키가 큰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자세 때문인지 나무같이 크고 곧은 느낌이다. 무용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자기소개를 신체 표현으로 하자고 하신다. 정확히는 이름 소개라고 할 수 있다. 선생님께서 기역, 니은, 디귿 등 한글 자음과 모음을 신체로 표현하는 방법을 직접 보여주신다. 이후로 학생들이 한 명씩 차례로 일어나서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꾸물꾸물 움직이며 표현한다. 지읒을 표현할 땐 두 팔과 두 다리를 벌려서 뻗고, 이응을 표현할 땐 바닥에 누워 팔과 다리를 모아서 최대한 동그랗게 만든다. 모음자 오를 표현하는 학생은 수준 높은 다리찢기를 보여준다. 모음자 워를 표현해야 하는 학생은 몹시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전문적인 외부 무용 강사님께서 무용 수업을 해주시고, 담임인 나는 옆에서 도움이 필요하거나 수업 태도 관리가 필요한 학생들 옆에서 한마디씩 던진다. 관찰자로서 학생들을 바라보니 어쩐지 더 예뻐보인다.
어느덧 지민이의 자기소개 차례다. 지민이는 이십 년 전의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모습과 매우 닮아 항상 눈길이 가는 학생이다. 다른 학생들은 팔과 다리를 쭉쭉 뻗아가며 자신의 존재감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안간 힘을 쓰지만, 지민이는 안그래도 작은 손가락으로 작은 모음과 자음을 그리며 자신의 이름을 누가 알아보면 큰일이라도 날 듯이 소극적으로 표현한다. 지민이는 대부분 표정이 수줍고 어깨가 다른 학생들보다 각도가 10도 이상 쳐져있다. 이런 모습에서 나는 초등학생 시절의 나 자신을 겹쳐 떠올린다.
학창 시절 부모님과 함께 산책할 때 매일 듣던 말은 “자세 바르게, 어깨 펴!”였다. 가장 자신에게 관심이 많을 사춘기인데 정작 자신의 자세에 대해서는 너무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이 옆에서 잔소리할 때만 잠깐 허리를 펴고 곧은 자세를 할 뿐 5분 뒤에는 다시 축 쳐진 어깨와 S자의 허리의 자세로 돌아갔던 것 같다. 지금 와서 그 이유를 분석해보면 자신감이 없고 소극적이던 나의 성격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몸에는 인생이 담겨있다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의 태도나 마음이 몸에 새겨져 타인에게도 보일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타인의 눈치를 보고 타인에 비해 내가 잘난 것이 없다고 느꼈던 10대의 나는 자연스럽게 어깨를 피지 못했다. 그 사실을 겨우 알게 된 것도 내가 의식하고 있지 않을 때 찍힌 나의 사진을 보고 나서이다. 예쁜 척 하고 있지 않을 때 찍힌 스스로의 사진을 보면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몇 가지 잘 알 수 있게 된다. 나는 사진에 찍힌 나의 자세를 보고 탄식을 금치 못했다. 물론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달라서, 나의 구부정한 자세는 단기간에 쉽게 고쳐지지 못했다. 진심으로 나 자신을 아끼고 스스로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생기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어깨를 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건강을 생각하는 꽤 많은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건강염려증과 함께 척추 건강을 걱정하며 강박적으로 어깨와 허리를 피게 되었지만.
내가 겪은 어려움은 내가 가르치는 아끼는 학생들이 똑같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특히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지민이는 충분히 예쁘고 똑똑한 어린이인데 본인만 모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수학 시간에 문제를 다 못 푼 게 있으면 쉬는 시간에도 놀지 않고 묵묵히 앉아서 문제를 풀고, 친구가 긴 머리를 손으로 부여잡고 급식에 나온 면을 후루룩 먹고 있을 땐 “머리끈 빌려줄까”하고 친구에게 먼저 물어볼 줄 아는 학생이다. 그러나 정말 귀여운 미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심 시간 급식실에서 마스크 벗고 한 입 먹고 다시 마스크 쓰고를 반복하는 그녀를 보면 마음이 저릿하다. 본인이 얼마나 멋지고 예쁜 사람인지 깨닫고 어깨를 피고 척추를 곧게 세운 자세를 보여줄 지민이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