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의 시간

by 아모

지금이야 방학 숙제는 초등학교에서 어느새 스르륵 사라져가는 존재지만,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은 방학 숙제라면 치를 떤 경험이 있다. 방학 숙제 중에서도 최고봉은 일기이지 않을까. 밀린 일기를 쓰느라 과거의 날씨를 고민한 사람부터 거짓말로 모든 일기를 지어 쓴 사람까지 일기 숙제와 관련된 끔찍한 전설이 많다. 그러나 나는 그 대부분의 초등학생이 아니라 일기 쓰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좋아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에게 털어놓듯이 글로 쓰면서 마음이 풀리는 경험과 전에 써놓은 일기를 읽으며 혼자 킥킥대고 이런 일이 있었지하며 회상하는 경험은 자연스럽게 일기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글인 듯 낙서인 듯 보이는 1학년의 일기에 담임선생님이 정성스럽게 달아주신 댓글이 최초로 일기가 좋아진 이유가 아니었을까.

이런 나의 경험을 떠올려, 학교에서 숙제는 왠만하면 내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가진 3학년 29명의 학생들의 담임인 나지만 일기만은 항상 예외이다. 내가 경험했던 것처럼 아이들도 글을 쓰면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중에 커서 3학년 때의 자신을 추억하며 소소한 미소를 짓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아무리 몸에 좋다 하더라도 쓴 것은 뱉게 되는 게 사람이다. 일기 쓰기는 좋은 점이 참 많지만 마치 쓴 맛처럼 아주 큰 걸림돌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는 어렵다는,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이다. 이 쓴 맛을 감추기 위해 나는 여러 방법을 고민했고 그 중 효과를 본 방법이 바로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기대하며 보게 되는 담임선생님의 댓글이다.

우선 사실이든 아니든 아이들의 첫 번째 일기에 “우와! 너 정말 글을 잘 쓰는구나!”라는 댓글은 필수다. 자신이 사실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은 글을 계속 쓰게 하는 확실한 동력이다. 그리고 매번은 못하지만 최대한 3줄 이상 댓글을 길게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나도 이만큼 쓰는데 너는 더 써야하지 않을까’하는 마음과 함께. 이렇게 아이들이 하교한 후의 조용한 교실에서 아이들의 일기를 하나하나 읽으며 댓글을 쓰는 건 목요일마다의 나의 루틴이다. 지금까지 일기에 댓글 쓰기를 마치 아이들을 위해 하는 숭고한 행위처럼 썼지만 지금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이 시간이 학교에서의 나의 ‘키움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아이들의 글은 순수하고 솔직하다.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말이나 행동이라는 일기 주제를 내주었을 때 한 아이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이런 말이 이해가 안됩니다. 너 공부 안하면 잠 못잔다! 왜냐하면 내일하면 되기 때문이에요.’ 이 일기는 며칠간 나의 웃음버튼이 되어주었다.

둘째, 일기를 매개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재미가 크다. 영화를 재밌게 보았다는 일기에 ‘어떤 제목의 영화야?’라고 물어보면 친절하게 다시 댓글로 알려준다. 나는 몇 점 행복한 사람인가요?와 같이 질문 형식의 일기 주제가 나가는 날에는 일기 끝에 ‘선생님은 몇 점 행복한 사람인가요?’처럼 다시 나에게 질문을 하는 아이들이 그렇게 귀엽다.

마지막으로, 매주 금요일 아이들의 그 표정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받게 된다. 금요일은 내가 일기 검사를 마치고 일기장을 다시 돌려주는 날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일기장을 돌려 받자마자 가방에 넣는 게 아니라 옆에 친구들이 볼세라 일기장을 45도의 각도로 살짝 펴 내가 쓴 댓글을 바로 찾아 읽는다. 웃을 듯 말 듯 은은한 미소 또는 활짝 웃는 그 입. 어떤 아이는 참지 못하고 교사의 책상 자리로 달려나와 댓글에 쓴 나의 질문에 바로 대답을 한다.

이번 주는 아이들이 또 어떤 일기를 썼을까. 험난하고 힘든 교사 생활에서 나를 웃음짓게 하고 내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는 일기 검사 시간.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새 일기에 댓글쓰기는 나에게 숨구멍같은 키움의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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