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by 알랭 드 보통
사랑은 약점에 관한 것. 연인이 위기에 빠져 낙담하거나 어찌할 줄 모르고 우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이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격원할 만큼 천하무적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하게 된다. 그들 역시 혼란스러워하고 망연자실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깨달음을 통해 우리는 지지자라는 새 역할을 부여받고,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덜 부끄러워하게 되고 아픈 경험을 공유하면서 그들과 더 가까워진다.
인간은 서로의 인간적인 모습을 공유하면서 가까워진다지만 나는 다른 사람보다 아픔을 공유하는데 서투른 사람 같다. 말을 할까 말까 고민되는 순간에서, 말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할 때 후회가 덜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속에만 쌓아두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습관은 그리 좋은 결과를 이끌지는 못했다. 때때로 감당할 수 없는 쓸쓸함, 외로움으로 가득 차는 날들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은 스스로 챙기는 것이라 믿어왔던 생각도 정말 힘들 때만큼은 무너지곤 한다.
그에겐 이론적 근거 대신에 감정이, 충분한 느낌들이 있다. 그는 그녀의 시원한 이마와 윗입술이 항상 아랫입술보다 튀어나와 있는 모습에 그녀와 절대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훈훈하게 잘 생긴 사람
센스 있게 옷을 잘 입는 사람
다정하게 잘 챙겨주는 사람
꽃 선물을 잘해주는 사람
이렇게 묘사되는 남자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좋아한다. 누구나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이상형이랄까. 하지만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정석의 틀을 벗어나서 오롯이 나의 감정과 마음만이 반응하는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그 사람의 특징만이 주는 바로 그 끌림
사랑의 시작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라면 마음속에 얼마간 담아둘 혼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미 경험을 통해 모든 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상황이든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 우선은 가만히 있어보는게 최선일 때가 있다. 특히 상황보다는 사람을 대할 때 더 그랬고, 나에게 상처만 주는 사람들에게는 응답하지 않는게 최선인걸 일찍이 깨달았다. 사람은 생각보다 너무 각자의 상황이 다르며 그 다름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냥 진심은 통한다는걸 믿는다.
이상하고 애석하게도 동료들에게는 보여주기 꺼려지는 과도한 친절함을 아이들에게는 쉽게 베푼다.
불면증은 그가 낮 시간에 그 모든 까다로운 생각들을 애써 회피했던 데 대한 마음의 복수다.
인생에서 가장 멀리해야하는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회피'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회피한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하다못해 시험공부 미루는 것도 일종의 회피일텐데 말이다. 나 또한 이게 나쁘다는걸 알면서 수도 없이 회피라는 선택을 해왔고 아마 앞으로의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는 결국 선택에 책임을 지는 문제다. 당장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피하지만, 그 끝에 돌아오는 복잡한 관계와 마음에 놀라지 말고 제대로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이 이제 행복하게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가르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노력한 부분이 있으면
너도 똑같이 노력한 부분이 있을거고
내가 힘들면
너도 분명 꾹 참느라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며
내가 너한테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면
너도 나한테 때때로 미안하지 않았을까?
사람 간의 동등한 관계는 이러한 공감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상대방과 나를 동등하다고 여기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중요한 부분이다.
낭만주의 결혼관은 '제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허다한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기에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여행, 음식, 자기 계발 등 사소한 습관이나 취향이 맞는 사람이 좋았고, 무엇보다 뭔가를 결정할 때 가치관이 맞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이렇게 생각하던 나에게 더 나은 사고방식을 일러준 구절이다.
예를 들어 나는 즉흥적인 여행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행을 가게 되면 미리 유명한 맛집이나 예쁜 카페를 검색해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큼직한 관광지 정도만 기억해두고 일단 나가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근데 나의 친구 혹은 연인이 시간 단위로 일정을 빠삭하게 알고 떠나는 걸 좋아한다면...?
완전 정반대의 여행 스타일이지만 나름의 조화로운 그림을 상상해볼 수 있게 됐다. 예전 같으면 '너랑 나는 여행 스타일이 완전 정반대야. 잘 안 맞겠네'라고 지레 겁먹고 단정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접근해보니, 나는 너에게 즉흥적인 여행만이 줄 수 있는 짜릿함, 자유로움, 때때로 편함 등의 감정을 경험으로써 선물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너로부터 꼼꼼하게 계획된 여행만이 줄 수 있는 알찬 느낌을 공유받을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사람에 대한 이상형 기준을 바꾸어보기로 했는데,
단순하게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다름’ 을 현명하게 즐길 수 있는 사람
으로 말이다.
모쪼록 결혼 전 한번 더 읽어보면 좋을만한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