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과 가족은 태생부터 다르다.
직원 채용 면접하면서 지원 동기를 물으면, 가족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다는 지원자가 가끔씩 있었다. 필자가 운영한 회사는 정부에서 인증한 가족친화기업이었다. 그런데 그 취지는 직원들의 자녀 보육을 지원해서 일과 가정의 조화로운 균형을 유지하자는 데 있었다. '가족'은 직원 간의 관계가 ( 당연히) 아니고 직원 가족을 의미했다.
우리는 유난히도 사회적 관계에 가족 호칭을 가져다 붙여야 편안해한다. 서먹한 관계의 거래처도 소주 각 일병 정도만 비우면 형 동생이 된다. 부모 뻘의 친척을 부르는 정겨운 호칭 아저씨, 아줌마는 하도 흔하게 쓰다 보니 이제 그 가치가 절하되어 조심해서 쓰지 않으면 역공당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미 모든 노인의 애칭이 되어 버렸다. 장인 장모도 그 앞에선 직계 가족인 어머니 아버지로 통폐합해서 불러야 살가운 사위가 된다. 고객을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게 싹싹해 보이고, 식당에서 이모, 언니, 삼촌을 부르면 셀프 밑반찬도 가져다준다.
상대와의 인연을 가족과 동격으로 과장함으로써 그만큼 대접하는 의미도 있고, 벽을 허물고 사적 영역으로 들어가 은밀한 거래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도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남이가' 단계로 발전하는 기초 수순이 된다. 거친 '황야'에서 서로 불필요한 경계를 줄이고 공동의 적에 대항하려는 연대의 본능도 작용한다. 하지만 그래 봐야, 말로 쉽게 형성된 가짜 가족관계다.
재벌기업도 회사 직원들을 가족으로 비유하기를 즐겨한다. 경영자는 가족의 어떤 가치를 회사에 도입하고 싶은 걸까. 끈끈한 유대? 관계가 남보다 못한 가족도 많다. 세조는 찬탈한 왕권을 지키기 위해 동생 안평대군과 조카 단종을 무고하게 죽였다. 가족과 직원은 그 태생부터가 다르고 관계가 작동하는 원리도 차이가 있다. 회사는 목적을 가지고 모인 집단인 반면 가족은 주어지고 타고난 공동체이다. 두 집단 모두 구성원에게 의무가 따른다. 회사는 계약에 의한 등가의 대가 - 주는 만큼 받는 -가 주어지는데 비해 가족관계에서 의무는 일방적이고 순차적인 혜택/희생이 대부분이다. 필자가 전에 근무했던 모 기업의 사훈에 '희생'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당시 서양 손님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우리는 그 서양 손님을 이해 못 했던 것이 생각난다. 한번 입사하면 평생직장이 되던 시대, 가족관계의 질서가 직장에까지 연장되던 때가 있긴 있었다.
회사 경영자의 입장에서 가정의 가부장적 상명하복 질서와 가족 간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사무실 안으로 끌고 들어오고 싶은 유혹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역방향으로 직원들에 대한 회사의 희생이 담보되지 않는 환경에서, 가족적 분위기는 주인아저씨의 욕심일 뿐이다. 여기서 '가족'은 어쩌면 남을 쉽게 부리기 위한 사악한 방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든다. 그보다는 회사와 종업원들 간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당한 가치 교환에 의해 근무 동기를 부여하는 게 빠를 것 같다.
재벌 기업엔 총수의 진짜 가족들이 다수 요직에 포진하고 있다. 정작 중역회의에 참석한 회장의 둘째 아들은 회장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생물학적 아버지 맞다.
여유주공지재지미 사교차린 기여부족 관야이 如有周公之才之美使驕且吝其餘不足觀也已
만일 주공의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 하더라도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볼 것이 없다.
논어 태백泰伯편 / 낭송논어 (김수경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