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들, 그들만의 폐쇄된 리그
사무실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
집에서도, 술집에서도, 극장에서도, 비행기에서도 가리지 않고 피워댔다.
사무실 내근을 많이 하는 여직원들은 퇴근해서 집에 가면 몸에서 연기가 피어나는 것 같다고 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과 동년대처럼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불과 20-30 년 전 얘기이고 실내에서 담배는 사라졌다.
미래에는 오늘의 무엇이 그렇게 생경하게 비치고 변해 있을지 궁금하다.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꽂고 고개 숙여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광경일까,
아니면 전염병을 예방한다고 살아있는 멀쩡한 돼지 수만 마리를 파묻은 살처분일까?
변하지 않는 원칙은, 변화하며 순환하는 우주의 섭리다.
변화하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사무실에서 담배는 사라졌지만,
힘 있는 자들의 부조리는 세월을 관통해서 더 큰 지름의 원을 그리며 순환하고 있다.
불공정한 힘의 행사와 분배 ( =지들끼리 해 먹음 )의 중심인 권력자들만의 폐쇄된 리그는 세월이 갈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중국에서 길을 가다 싸우는 소리가 들려 돌아다보면, 경찰이 시민한테 삿대질을 하며 큰소리로 야단을 치고 있다. 당하는 시민의 표정도 아버지한테 핀잔 듣는 아이처럼 무덤덤하다. 강한 기시감이 들어서 생각해 보면 아주 오래지 않은 과거 우리의 모습이다. 1970년대 한남동 운전면허 시험장의 감독관은 경찰이었는데 영업용 면허 응시자들에게는 무조건 반말 지껄이였다. 나이를 꽤 먹은 중년 한 사람은, 실기시험에 슬리퍼를 신고 왔다는 이유로 감독 경찰관으로부터 반말로 욕을 ( 욕은 존댓말로 할 수가 없음) 먹으면서도 싱겁게 웃고 있었다.
----------------------------
시내에서 자주 교통경찰이 단속하던 때 동료한테 들은 얘기다. 그 사람은 서울 시내에서 무면허로 차를 몰고 다니다 교통경찰의 단속에 걸리면 다짜고짜 경찰한테 반말로 '고생 많다' 하면서 운을 띤다. 경찰이 우물쭈물하는 틈에 2 탄으로 '옷 벗으니까 외로워' 하며 한숨을 쉬면 대개 그 순간 상황을 파악한 경찰의 태도가 누그러진다. 한두 마디 잽을 더 날리면 경찰은 살펴 가시라고 하면서 깍듯하게 거수경례를 붙인다고 한다. 그 사람은 경찰 경력은커녕 군대도 안 갔다 왔는데 이 수법이 실패한 적이 없다고 자랑했다. 다만, 단속 경찰관과 대화 시 눈을 깜짝이면 안 된다고 했다.
오래전에 수사 기관에서 협조해달라고 해서 출두했던 사람의 얘기. 젊은 수사관이 얘기 중에 갑자기 어디 아프냐고 물어봐서 아니라고 했더니 대뜸 똑바로 앉으라고 하더란다. 그 고압적인 위세에 자기도 모르게 책상 위에 올려놨던 팔꿈치를 얼른 원위치시키고 신입사원 면접 자세로 돌아갔다. 그다음부터 무서워서 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답하지 않을 수 없더라는 것. 50대 기업인은 범죄 혐의자가 관련된 업계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거였다. 수사관의 전략은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당사자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
행세깨나 하는 자들이 수사기관에 소환되는 날짜는 '일정 조율'이라는 고상한 과정을 거쳐서 정한다. 상견례 날짜 정하듯이 정중하고 융통성 있게 조정한다. 수사기관은 아무리 파렴치한 비리를 저질렀어도 힘이 있는 자에겐 타협적이다. 겨우 날짜가 정해지면 범죄자의 입맛대로 뒷문으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원님 행차하듯이 등장하는 데 좌우에 거느린 변호사들이 나팔을 불어준다.
힘 있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수' 들이 저지른 범죄를 국가가 다스리는 방식은 민초들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갑자기 사생활 보호와 무죄추정 원칙을 주워섬기며 온갖 편의를 제공한다. 선수들끼리의 스포츠맨십을 보는듯하다. 권력자의 권權자에는 자신의 인권도 묵직하게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범죄에 연루된 권력자들은 많은 변호사를 고용한다. 똑똑하고 말주변(=말발) 좋은 사람들이 한다 하는 변호사들을 쓰는 이유는 무얼까? 깨끗하다면 변호인 한 사람으로도 충분하게 무죄를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거기다 비싼 변호사 수임료는 도대체 어디서 나는 지도 항상 궁금하다. 권력이 곧 재력은 아닌데, 변호사들이 자발적으로 무료 변론을 자청한 것일까? 그런 '엿장수 맘대로' 수임료는 가격 덤핑 아니면 뇌물에 속할 수 있다. 또는 원님 덕에 나팔부는 마케팅일 수도 있다. 아무튼 반칙이며 피해자는 국민이다.
대부분의 권력형 범죄자는 '일면식 없음, 한 푼도 안 받음, 기억 안 남, 모임에서 한번' 등의 그들 업계 전문용어들을 동원하여 일단 혐의를 부정하고 본다. 마치 독립운동하다 잡힌 양심범처럼 얼굴을 빳빳이 들고 정치적인 모함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나오면 수족처럼 부리는 충복에게 죄를 돌리고 꼬리를 자르는 게 마지막 카드 중의 하나다. 충복은 주군을 향한 충성심을 투자하는 소중한 기회로 삼고 기꺼이 죄를 뒤집어써준다. 조폭 영화가 생각난다.
국가가 국민을 복종시키고 지배할 수 있도록 공인받은 힘이 권력이고, 권력에는 폭력이 포함되어있다. 국민은 각자의 폭력을 국가에 맡겨 놓았다. 국가가 위임받은 폭력을 안에서는 경찰이 행사하고 밖으로는 군대가 유지한다. 경찰 폭력이 나를 강도로부터 막아주고 군대 폭력이 나쁜 나라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얘기다. 공정公正하게 사용해 줄 것을 믿고 국가에 맡긴 폭력이 만일 힘 있는 가해자의 편에 서서 피해자를 겁박한다면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 권력의 편향된 행사가 반복되면서
국민은 좌절하고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체념해 버린다. 동시에,
권력자가 향유하는 부당한 특혜에 끌려 권력 엘리트를 지망하는 청년들은 선배들이 지나간 길에 더 큰 발자국을 남기면서 따라간다. 악순환이 계속된다.
한편, 프렌치와 레이븐이 주장한 권력 원천 이론에서 국민이 국가 통제에 따르는 동기의 질이 떨어진다.
[보상적 : 따르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기기 때문에 ]이나 [ 정당성 :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 권리가 있기 때문에]에서 ⇒[강제적: 따르지 않으면 나쁜 일이 생기기 때문에]으로 전락한다.
권력 원천 이론 - 나무 위키 (namu.wiki) 참고
공자는 논어 자한 편에서 권력을 행사는 도리 (권도權道 : 사물의 경중을 헤아림 )가 얼마나 어려운 경지인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子曰 可與共學이라도 未可與適道며 可與適道라도 未可與立이며 可與立이라도 未可與權이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더불어 함께 배울 수는 있어도 함께 도(道)에 나아갈 수는 없으며, 함께 도(道)에 나아갈 수는 있어도 함께 설 수는 없으며, 함께 설 수는 있어도 함께 권도(權道)를 행할 수는 없다.”』
현토완역 논어 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