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접대비에 대한 생각

by 영감

기업의 접대비는 고객을 대접하는 비용이다. 거래처를 만나 음식 따위를 제공하는 접대는 일상적인 판촉 활동이다.

우리나라의 세법은 기업의 접대비를 일정 한도까지는 손금損金으로 쳐주고 세금을 매길 때 법인 소득에서 접대 비용을 공제해 준다.


예를 들어 연 100억을 파는 중소기업은 3천6백만 원까지 접대비를 인정해 주고 있다. 한 달 매출이 10억이 안 되는 업체에서 고객 접대에 매일 10만 원씩을 쓴다면 적은 금액이 아니다. 팔아서 얼마 남는다고... 이 돈으로도 모자란다면 접대가 일상적인 범위를 벗어난 걸 의심할 수 있다. 특정 거래처 사람을 룸살롱 같은 유흥 주점이나 골프장에 초대하는 건 접대라기보다 뇌물에 가깝다. 뇌물은 상대의 소속이 공적 기관이든 사 기업체든 공정한 거래 질서를 해치는 사회악이다.


불경기가 닥치고 채산이 나빠지면 경영자는 직원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호소한다. 월급을 깎자는 게 아니고 회사에서 쓰는 경비를 좀 줄여서 경영 위기를 극복하자는 부탁이다. 이때 우선적으로 건드리는 예산이 기부금, 광고비, 그리고 접대비 등이다. 그런데 불황 때 역설적으로 접대비 한도를 늘려 달라는 주장이 동시에 고개를 든다. 정치권에서 거들고 나오는데 기업의 원활한 거래 증진과 골목 상권 살리기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뇌물성 접대를 해야만 '원활'해지는 거래라면 정부에서 나서서 법을 개악하면서까지 장려할 일이 없다. 부패를 사회가 돌아가는데 필요한 윤활유 정도로 여기는 정서가 개탄스럽다. 접대비를 올리니까 매출이 늘었다는 사례도 알고 보면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시한 오류가 많다. 즉 영업이 늘어나면서 고객 접촉이 많아져 접대 수요가 늘어난 경우다. 설사 영업에 도움이 되었다 해도 불건전한 사업모델이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


유흥주점과 골프장은 골목 상권과도 관련이 없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흥청망청 비싼 술집에서 어울려야지 경제가 잘 돌아간다면 병든 사회다. 기업의 사무실 임대료나 광고비 같은 비용은 세무 당국에서 한도 없이 손금으로 인정한다. 접대비 한도를 별도 관리하는 이유는 불건전한 거래 관행과 소비성 지출을 억제하고 그로 인한 조세 회피를 방지하자는 취지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접대비를 우리보다 더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접대비를 entertainment expense라고 부르는데 사실적인 표현이다. 비용을 인정하는 과정도 까다롭다. 접대의 업무 관련성을 기업 쪽에서 입증해야 한다. 접대 자리에서 가끔 단체 사진을 찍는데 기념이 아니라 입증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래야지 비로소 비용의 50%( 코로나 기간 중 임시로 100% 인정)를 손금으로 인정받는다. 거래처뿐 아니라 접대 자리에 참석한 자사의 직원까지 접대의 대상으로 삼는 개념으로서 당사자들이 먹고 마신 건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논리다. 영국에서는 아예 접대비를 비용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다. 기업의 그릇된 관행에 영합하면서 접대비 지출을 조장하는 반 공익적인 법안들을 여야가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심지어는 접대비를 '대외활동비'나 '거래 증진비'같은 모호한 명칭으로 바꾸자는 야바위성 제안도 서슴지 않는다. 과도한 접대비는 가격에 반영되고 결국 소비자가 부담하게 된다. 기업의 골프, 유흥주점 비용을 소비자가 나눠 내는 꼴이 된다.


접대비 한도를 높여주자는 움직임은 김영란법으로 알려져 있는 청탁금지법과도 상충된다. 2016 년에 언론인, 교사를 포함한 공직자에게 대접하는 식사나 선물 가격의 상한선을 법으로 정해 놓았다. 올해 초 보도에 의하면 기업의 평균 접대비는 김영란법이 제정된 2016 이후 근 30% 나 줄었다고 한다.


정치권에는 틈만 있으면 김영란법을 무너뜨리고 싶어 하는 부류가 있다. 지난 설 명절 때 농축수산물의 김영란법 상한액을 1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올려주었더니 농식품 매출이 부쩍 늘었다고 기뻐들 했다. '국가재난 상황'을 맞아 '국가적인 차원'에서 비싼 뇌물 주고받으라고 부추긴 셈이다. 뇌물과 비리를 조장해서 농축산 경기를 살리자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 과연 국가 청렴도 OECD 27위 나라답다.


접대비 한도 완화는 결국 기업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당장은 거래처나 공직자에게 편의를 제공해서 부정한 이득을 얻을지 모르나 그럴수록 기업의 정상적인 영업력은 퇴보한다. 약물에 의존하는 운동선수와 같다. 차라리 기업은 당국의 일률적인 접대비 한도 감축을 로비해야 한다. 접대의 횟수와 강도를 줄이는 좋은 구실이 되고 판매 관리비용도 절감된다. 비용 말고도 직원들이 술과 골프에 끌려다니는 시간을 절약해서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




조선시대 중국에서 파견한 사신을 접대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자 세금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접대 문화의 뿌리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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