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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Feb 20. 2021

외롭지만 혼자 있고 싶은 우리들


군대 가서 신병 ( = 쫄병 ) 때 외딴곳에 한 달 정도 혼자 파견 나가 있었다. 우리 부대에서 전방 000 고지 (=산꼭대기)에 미군용으로 신축 막사를 지어 놓았다. 입주하기 전에 미군들이 한 번씩 와서 점검을 하고 가면 그 내용을 부대에 전달하는 임무였다. 부대에서 내가 영어를 좀 할 거라고 생각한 듯하다. 때는 초 여름.


잠은 막사 근처에 있는 작은 동굴 안에 들어가서 매트리스를 깔고 잤다. 나무 잔가지를 때서 밥을 해 먹었는데 메뉴는 두 가지. 한 번은 밥에 된장과 미원을 넣고 비비고, 그다음 번엔 고추장으로 비비고. 그렇게만 먹고도 흡족했다. 논어 술이 편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더라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을 반 정도는 실천했다.


먹고 자는 게 원시인 같은 생활이었지만, 그곳이 군 생활 삼 년 중 짧지만 행복했던 두 군데 근무지 중 하나다. 공통점은 혼자 있는 것. 그렇다고 내가 자폐증이나 대인 기피증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사병이 군대 가서 혼자 생활하는 기회는 드문 행운이다. 군대의 대隊는 무리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함께 지내면서 적의 침투에 대비해야 하는 군대엔 엄격한 규율이 있다. 병들의 군대 생활이 어려운 건 작전, 훈련보다도 이런 규율 속에서 24시간 통제받으면서 자유를 제한받기 때문이다.


노른자위 보직을 쫄병인 내가 독식하게 놔둘 리가 없었다. 꿈같았던 나의 고지 근무는 한 달 만에 부대의 고참병과 교대하면서 끝났다. 혼자 지내는 게 뭐길래 그렇게 행복했을까. 그 게 바로 틀에서 벗어나서 얻는 자유의 가치다.



집단에 의한 속박은 민간 조직도 군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직장인이 받는 스트레스는 고유 업무 외에 조직 생활로부터 오는 것이 꽤 있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소위 근태라고 부르는 출퇴근부터 수직, 수평 조직에 얽힌 갖가지 규정, 불문율이 직원들을 좌절시킨다. 코로나 예방을 위한 재택근무가 이러한 실속 없는 비능률을 어느 정도 제거해 줄지 결과가 궁금하다.


조직이 아니라도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사회의 틀에 묶여있다. 유럽 언론에서, 한국인들이 코로나 방역 지침을 철저하게 지키는 배경을 유교적 문화로 설명한 적이 있다. 칭찬이 아니다. 한국 사람들이 전통 유교사상이 강조하는 조화와 질서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고 정부의 통제에 순응한다는 해석이었다. 지금 유교정신이 얼마나 작용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얼기설기 엮인 관계주의 속에 개인과 전체의 균형 잡힌 구도를 편안해하는 고맥락高脈絡사회에서 사는 건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하며 내가 사는 곳을 떠나서 새로운 고장으로 이동한다. 그 즐거움엔 낯선 곳을 향하는 설렘과 함께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는 홀가분함도 있다. 나를 찾기 위해 여행을 간다고 한다. 어쩌면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회에 가서 내 원형을 발라내 보겠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사는 사회가 편리하고 익숙한 건 역설적으로 내가 이 사회의 그물에 걸려있다는 얘기도 된다. 가끔은 불편을 무릅쓰고 그 틀에서 일탈해서 나그네가 된다. 낯선 곳에 가서 낯선 이가 되어 낯선 짓을 해본다.


외국 여행을 하다 주위에서 불쑥 한국말이 들려오면 반갑기도 하지만 멋쩍을 때도 있다. 익명으로 숨어 들어온 공간에서 뭘 하다 들킨 듯이 어색해진다. 기껏 떠나온 땅이 나를 쫓아온 듯하다. 우리끼리는 표정만 봐도 다 안다. 우리 자신이 서로 틀이다.




'우리 몸은 석기시대 ( 데트레프 간텐 외 저 )'라는 진화 의학 책에 보면 우리 몸은 변화된 생활환경에 맞추어 빠르게 진화하지 못했고 이만 년 전 석기시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자동차 속도가 빨라져도 사람이 걷는 속도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사회가 발달해도 사람이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는 집단의 수도 별로 변함이 없다. 석기시대에도 사회적 협동이 이루어졌지만 그 숫자는 대형동물을 사냥하기에 필요한 10명 내지 20명 정도였을 거라고들 한다.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아는 사람도 많아졌다. 너무 많아졌다.

따라가지 못하는 '석기시대' 사람의 몸과 맘은 고단하다.


사회라는 집단을 운영하는 틀도 복잡해졌다. 이거로 먹고 사람들도 있다.

사람은 그 틀이 생물학적으로 갑갑하다. 자주 충돌한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보다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안정적인 사회적 동물이다, 맞다.

그러면서도 자주 혼자이고 싶어 지는 모순이 발생한다.


언제나 떠나고 싶다.

아니면 남들 보고 나를 제발 떠나 달라고 ( 내버려 두라고 ) 사정한다 ( Please Leave me Alone!). 


외롭지만 혼자이고 싶은 휘청거리는 우리들이

오늘 아침 측은하다.




Photo by Josiah Farrow from Pexels


군대에서 행복했던 다른 근무는 배수관용 대형 토관土管(=노깡)을 찍어내는 작업이었다.

콘크리트를 원형 형틀에 비벼놓고 나서 여섯 시간 정도는 말려야(양생) 굳는다. 그동안 형틀 안에 들어가서 기다린다. 역시 혼자다. 이 행운도 오래 가진 않았다. 


대문 사진: Pixabay로부터 입수된 PatternPictures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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