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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Apr 15. 2021

먹는 브런치 몇 년,
쓰는 브런치 몇 달

브런치 소감

퇴직하고 하루 두 끼로 줄인 건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를 실천하려는 게 아니었다. 일 안 하는 자를 동정할망정 먹는 거 가지고 뭐라 하는 사회가 아니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같은 농담도 이제 어색하다. 국가 안전망에 걸려들지 않고는 굶주리기도 어려운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끼니 사이에 16 시간 이상을 띠워보라는 기사를 봤다. 허기진 상태가 심신을 건전하게 해준다는 대목에 공감이 갔다. 먹는 총량은 그대로라는 말에도 솔깃했다. 배고플 새 없이 먹어대는 통에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우리 몸이 나태해진다. 동물이 돼가지고 배가 좀 고파야지 사냥하고 싶은 의욕도 생기고 그럴 거 아닌가. 반론도 있다. 허기지면 '행그리hangry’ 상태가 되어서 혈당이 떨어지고 집중력도 떨어진다는...


오후 서너 시경에 저녁을 먹고 아침밥을 다음날 아홉시 지나서 먹는 시험을 했다. 세끼 간격이 촘촘해졌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끼어있는 '점심밥'을 찾아먹으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결국 거대 끼니의 횡포로 점심은 '영업'을 접게 된다. 하루 두 끼 먹는 두식이가 된 사연이다. 점심, 저녁이라는 사회적 활동에서도 해방이 되는 퇴직 이후라서 가능했다.


주위에 얘기하면 대개 두 가지의 질문이 따라온다. 첫째는 밤에 배고프지 않냐다. 배고픔에 익숙해질 수는 없지만 견디는 능력이 단련된다. 좋은 부副작용은 아침을 기다리게 된다는 것. 내일 아침엔 해도 뜨고 밥도 먹는다. 모든 사람이 희망차게 아침을 맞는 건 아니다.


또 다른 물음은 아침을 언제 먹느냐다. 아침은 세끼 먹을 때의 사치스러운 이름이다. 두 끼 시스템에선 첫 번째 두 번째 끼만 있다. 점심을 안 먹는 거와 다르다. 굳이 부르자면 첫번째가 브런치가 된다.


결과적으로 간헐적 단식이 되어버렸는데 여기서 그 효과를 논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하루 두 끼만 먹는다고 해서 체중이 삼십삼 퍼센트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몸이 다 알아서 교통정리해 주시는 통에 체중은 멀쩡하게 유지된다. 지금 생각하면 전에 어떻게 하루 세끼 먹었는지 상상이 잘 안 간다. 브런치를 먹은 지 사오 년 된다.


시차는 있지만 내가 퇴직 후 시작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쓰는 브런치다.






어쩌다가 쓰는 브런치를 시작함


미국에 있는 딸이 작가를 지망하고 있다. 아이가 대책이 없고 막연해 보여서 미국에서는 어떻게들 작가가 되나 검색해보았다. 'Medium미디엄' 이라는 블로그가 글 쓰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단다. '좋은 생각이 당신을 만나는 곳'이라는 플랫폼인데 유사한 한국의 서비스로 카카오의 브런치가 있다고도 했다. 내가 쓰는 브런치를 알게 된 계기다.


아이에게 '미디엄' 한번 해보라고 했더니 돌아온 답은 '나도 알고 있다'였다, 언제나처럼. 그럼 '브런치'는 어떠냐고 물었는데 아직 답이 없다. 그때가 작년 9월 초다.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같은 소셜 미디어에 손을 대지 않았다. 브런치는 알자마자 뛰어든 이유가 역설적으로 소셜(= 번잡스러운) 하지 않은 소셜 미디어이기 때문이었다.


브런치는 로고부터가 깔끔하고 고급지다. 연미복을 연상케하는 흑백의 조화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다른 블로그와 달리 브런치는 순백의 공간을 내주고, 쓰는데 전념하게 한다. 고급 만년필을 선물받고 무언가 쓰고 싶듯이 글이 작품이 된다는 공간에 무언가 올려놓고 싶은 객기가 발동했다.


브런치가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무얼 써야 작품이 되나?


올리면 작품이 되는 게 아니고, 작품이 되는 글을 올리라는 얘기다. 작품은 창작이다.


직장에서 공문만 썼다. 걸핏하면 동료들에게 공문은 연애편지도 아니고 문학작품도 아니라고 윽박질렀다. 투박해도 좋으니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요약하고 잘 보이게 배치하라고 주문했다. 비즈니스에서 그 편이 안전하고 신속하기는 하다.


회사 일 말고 글을 써본 적이 있던가. 퇴직하고 바로 지리산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았다. 주위 친구들이 관심을 가지고 물어봤다.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잠은 어디서 자는지 따위. 친구들이 궁금할 만한 얘기를 몇 차례 나누어 단톡방에 올렸더니 나중에 갈 때 도움이 되겠다고 좋아했다. 글이 누구를 도울 수도 있구나. 둘레길 재단의 계간지에도 실렸다. 브런치 심사에 같은 글을 냈다.


전달하고 설득하려고 공문을 쓰는 반면 작품은 좌우간 감동을 주어야 한다. 재미를 주든 교훈을 주든 울림이 없는 작품은 생명이 없다. 나는 도대체 무얼 가지고 모르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나 하는 진입장벽에 부딪혔다. 그래 남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써보자.


글은 생각으로부터 시작한다.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에는 경험과 기억 그리고 지식의 과거가 있고 느낌과 이해, 판단의 현재가 있다. 계획과 상상의 미래도 있다. 쌓인 지식이 좀 얕고 내세울 만한 체험이 없더라도 느낌과 판단은 누구나 있다. 문제는 그 생각을 실타래 풀듯이 글로 옮기는 기술이다. 부실한 쓸 거리는 없다. 쓰는 기술이 부실할 뿐이다.


나의 과거에서 단일 항목으로 제일 비중이 큰 회사 다닌 얘기로 시작하기로 했다.

어떻게 쓰지? 마크 트웨인은 어떻게 말할까 하고 괴로울 땐 진실을 말하라고 했다. 재주가 없으면 진정성으로 덤벼보자!


범람하는 기업 경영 노하우 대신에 '이러면 망한다' 식의 경영 실패사례로도 남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나를 포함한 한국 경영자들의 부정적 관행을 솔직하게 써보자. 준비한 일이 아니어서 메모도 없이 오래 살아남은 사리 같은 기억을 불러 모아 썼다.


이어서 우리 사회의 부정 부패와 우리말의 오남용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던 '개탄'을 올리면서 논조가 거칠어졌다. 경영사례와 달리 주관이 과도하게 개입되었다. 누가 봐도 꼰대가 썼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로 끝나는 훈계조로 일관했다. 조언과 잔소리 바가지는 한 끗 차이다. 여기저기 침 튀긴 글을 지금 보면 부끄럽다. 초보는 언제나 힘을 준다.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피아노 배울 때 선생님에게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아버님 힘 빼세요'였다.



브런치 사람들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 또는 활동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브런치 글들은 치우치지 않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우리를 가르는 정치, 종교 갈등은 밀어두고 같은 것을 찾아 공간에서 대화한다.


육아, 음식, 여행, 반려견, 취업 같은 생활형 소재가 인기 있는데 시집 식구, 상사와의 갈등과 그로부터 야기되는 불화, 퇴사 얘기도 눈에 띈다. 전문직들의 이야기에는 사람들이 많이 신기해한다. 미디엄에 비해 주제의 대역이 좁고 편향돼 보이는 건 시대적 고민의 무게중심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나의 착시 때문일 수 있다.


브런치는 플랫폼이다. 여러 사람이 타고 내리는 장소다. 쓰는 것만큼 다른 이의 글을 읽는 것도 브런치 활동의 일부다. 내가 술을 마셔야 상대의 잔을 채울 줄 안다.


주위에 아이디를 공개하지 않아 구독자 중에 아는 이는 몇 명 없다. 아내는 내 글을 읽지 않는다. 집에 있는 날은 종일 책을 보던데, 남의 글을 읽기 바빠 남편 글을 읽지 않는다. 브런치 작가들이 시간이 남아서 변변찮은 내 글을 읽고 좋다고 하고 댓글까지 달아주는 건 아니다.


어느 날 글의 조회 수가 주유소 요금 올라가듯 가파르게 올라갔다. 기분이 덩달아 상승했다. 내 글이 목 좋은 장소에 노출된 것이다. 당국에서 실시하는 이 '행사'의 기준을 정확히는 모르는데 그 조회 수의 정체가 글이 아닌 제목을 클릭한 회수가 아닌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출간한 작가들도 많은데 태권도장에서 검은 띠 유단자를 보는 듯이 존경스럽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같이 뛰는 오픈 선수권 대회 같다. 이 공간에서 사용하는 '작가'나 '발행' 같은 '업계' 전문 용어가 내게는 때로 생소하고 면구스럽지만 책임감도 생긴다.


치열하게 쓰고 올리는 브런치 작가들이 꽤 많다고 짐작한다. 자신이 설정한 마감시간을 지키기 위해 새벽에 또는 한밤중에 붓방아 찧는 소리가 아름답다. 어디서 글감이 화수분처럼 솟아나는지 주옥같은 글을 줄기차게 올린다. 그이들은 창작의 진통에서 엑스터시를 느끼는 게 분명하다.


술술 쉽게 읽히는 글을 술술 쉽게 쓸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 들은 참 정성스럽게도 다듬어서 올린다. 글의 퀄리티와 타협하지 않는다. 수준이 다를 수 있어도 불량품은 드물다. 지난 연말에 가족끼리 모여서 자신의 브런치 글을 시상했다는 작가의 글을 읽고 감동했다. 갈고닦은 글의 최고 팬은 자신이다.


글을 올리면 동료 브런치 작가들이 따뜻하게 환영하고 공감해 준다. 긍정의 에너지를 체험한다. 느슨한 공동체가 자연부락처럼 형성된다. 여행이나 인생이나 좋은 동반자가 있으면 기쁨은 배가되고 어려울 때 큰 힘이 된다. 개인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글로 만난 사람들이 글이 가치인 공간에서 글을 교환하고 위로한다. 그들의 우정은 소주보다 진하다. 



브런치를 하며 알게 된 것들


사는 곳, 나이, 직업, 성별, 취향, 사상이 제각기인 사람들의 삶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고 교육적이다.


작년에 어디서 하는 몇 주일짜리 줌 강의를 들었는데 트롯 가수 김호중을 모른다는 이유로 외계에서 온 생명체 취급을 받았다.


브런치는 내가 외면했거나 또는 배척당해서 반목하고 있는 시대의 유행을 안전한 방식으로 엎데이트해준다.



예전 동료에게 부탁해서 슬램덩크 만화를 통째로 얻어왔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와 코코를 찜해 놓았고, 기염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도 일단 독서 목록에 올렸다작은 왕자는 다시 읽었다. 제주도의 작은 책방에 대한 글을 읽고 직접 가보고 나도 글을 하나 거들었다.


조선시대 사회가 생각보다 세련되게 운영되었다는 사史실을 자부하게 되었다. 김부각이 먹고 싶어졌으며 시장에 따라갔다가 꼬북칩이라는 스낵을 슬며시 집었다.


나비가 무서워서 그렸더니 나아졌다는 대목이 그렇게 재미있었고, 감상鑑賞  감상感想은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낮의 길이가 길 때 꽃이 피는 봄꽃을 청년 시절로, 미더덕 터뜨리는 걸 화내는 걸로 비유하는 작가에 감탄을 했고, 아침에 해를 보고 재채기를 하는 체질이 있다는 것도 처음 들었다.


스페인어 어원 시리즈를 구독하며 우리나라 아이들이 한자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올리는 작가의 글에서 글감을 슬쩍 업어오기도 한다.



지속 가능한 브런치 글쓰기


주기적으로 쓰는 '출력'이 소재의 '입력'을 초과하니 밑천이 쪼들린다. 입력이 있어야 출력이 있다. 책도 좋은 입력 수단이다. 브런치를 하고 나서 책 읽는 게 수월해졌다. 나물을 캐며 산을 오르면 힘이 안 든다는 말이 맞다. 나물이 브런치 글이고 산이 독서다.


전에 어딘가에 올린 후기까지 닥닥 긁어서 투입한다. 당장 땟거리가 없어 집안의 가재도구를 내다 판 선조들을 이해한다. 하다 안되면 장롱 깊이 숨겨 놓은 패물함도 연다. 식구도 모르는 이야기가 브런치에 올라가는 과정이다. 창작의 고통이라니...


그래도 참고 쭈구리고 앉아 있으면 영감이 떠오르기는 한다. 소위 엉덩이 전략인데 산만해지는 마음을 다잡아야 일이 된다. 생각의 샘은 고갈되지 않고 퍼내면 다시 고인다. 퍼내는 기술과 노력이 관건이다.


생각이 산만해서 그런지 글의 주제가 중구난방이다. 경영, 우리말, 우리 땅, 남의 땅, 독후감... 공통분모는 있다. 남을 돕는 글이다.


얼마 전에 '우리말의 극단적 선택' 제목으로 두 번째 브런치 북을 엮었다. 우리말을 지금처럼 막 쓰다가는 오백 년 못 가서 도태된다고 확신한다. 어떻게든지 여러 사람이 걱정을 공유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한다. 출간 프로젝트에 응모한 이유다. 책방의 베스트셀러 매대에서 잘 나간다는 책을 훑어보고 용기와 좌절을 동시에 느낀 적이 있다. 


용기: 이렇게 정신없이 짜깁기식으로 조립해서 써도 팔리는구나… 좌절: 지은이의 지명도가 참 중요하구나...


그림을 그리러 야외에 나가듯이 사색이라는 수단을 통해 사회 현상을 꼼꼼히 관찰하게 된다. 로버트 피어시그의 책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은 여행을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이야기다. 생각이 막혔을 때 걸으면 풀리는 때가 있다. 여행을 하면서 내 안에 가라앉아 있는 침전을 휘저으면 무어가 나올지 궁금하다.


글을 설렁설렁 쓰지도 않고 그럴 실력도 없다. 표현력이 부족해도 한 사람의 고유한 생각을 꼭꼭 눌러 쓰고 고치고 다시 쓰면 통하지 않을까. 나의 글을 사랑한다. 나의 글은 읽을 만하다! 라고 주문을 외운다.





집안 여기저기에 악기, 운동기구가 굴러다닌다.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지구력 부족으로 때려친 잔해들이다.


두 가지 브런치는 각각 몇 년, 몇 달을 잘 버텨왔다. 퇴직 후에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하기 잘했다는 게 공통점이다.


먹는 브런치는 무얼 안 하는 습관이지만, 쓰는 브런치는 무언가 만들어 내는 취미다. 아니 취미라고 하기엔 아직 버겁다. 브런치 하면 떠오르는 느긋한 휴일의 아침만큼 편안하지는 않다. 취미를 넘어 습관이 되면 성공이다.


브런치의 seonchoi 작가 https://brunch.co.kr/@julian0614 는 글에서, 정도전은 자신이 겪은 모든 화를 덮어버릴 만한 꿈이 있었기에 9년의 세월을 버텨낼 수 있다고 했다. 나의 화를 덮어버릴 꿈이 아직 남아 있을까?



어법에 맞게, 글 중 객체에 존칭 존대 어미 '분' '님' '시' 따위를 생략했습니다. 오해하실까 봐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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