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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Sep 08. 2020

직원을 편애하는 경영자

한번 더하면 잘할 것 같은 경영

과거 아들 선호 시대에 딸들은 오빠한테 먹는 것을 양보(당)했고, 남동생 뒷바라지하느라 진학을 포기했다. 부모가 설정한 기준에 의한 강제 집행이었다. 가부장 제도에서, 가계를 이어받아 재산을 상속받는 대가로 제사를 부담할 아들은 자식들 중에서 우대받았다. 요즘도 학교 성적이 인상적이지 않은 동생은, 줄곧 장학금 타서 학교 다니다 대기업에 골인한 형과 늘 비교당한다. 자라면서 부모의 편애로 차별받은 섭섭함은 잠복기간이 꽤 길다. 그로 인해 인생이 꼬인 경우엔 더욱 그렇다. 편애의 피해자가 커서 부모에게 따지거나 신세 타령의 소재로 삼기도 한다. 중년이후에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편애의 충격은 크고 오래가는가 보다.



직장에서도 편애가 존재하는데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주범이다. 여기선 부모 대신에 상사가 일부 직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가까이한다. (속된 말로 '물고 빤다.') 경험이 많은 부하 직원의 건의를 우선 수용한다든지 업적이 뛰어난 직원에게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상사가 객관적이지 않거나 부정확한 정보에 의한 편견, 또는 사적인 인연으로 특정한 부하에게 치우칠 때 직장 편애가 된다. 많은 직장인이 성별, 학벌, 나이, 외모 따위에 의한 편견으로 차별받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출신 지역이나 학교, 취미, 심지어 부인끼리의 친분 같은 하찮은 인연이 여기에 한 몫한다.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비서나 객지에서 받은 개인 편의 따위의 인간적 의리는 말 할것도 없다. 오해로 시작하는 사례도 있다. 어느 경영자가 설 연휴에 해외출장을 갔는데 급히 자료가 필요했단다. 휴대전화가 없을 때다. 혹시나 해서 한국 사무실로 전화를 돌렸더니 어떤 직원이 받는 게 아닌가.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고 설날 출근했다는... 그 일이 있은 후 그 직원은 경영자의 총애를 받으며 잘 나갔다고 한다.  사실 그 직원은 설날 한적한 사무실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러  나왔다가 행운의 전화를 받았다는 후문이 돌아다녔다. 



상사의 '비뚤어진 사랑'을 받으며 측근이 되면, 자기 업무와 관련이 없는 회의나 출장에 신나게 불려다니며 고급정보에도 접근한다. 중요 사안마다 끼어들어 상사의 판단을 흐리게 하며 일을 그르친다. 나중엔 조직의 실세 행세를 하며 인사에까지 손을 뻗는다. 급기야 상사는 측근을 특진시키거나 요직에 기용해서 편애를 재확인해준다. 역량이나 공로에 역행하는 편파적 낙하산인사를  '인재 발탁'이라는 명분으로 눈가림한다. 당연히 그걸 보는 다른 직원들의 속은 뒤집어진다. 그렇다고 직언을 하면 유능한 직원을 시기하여 모함하는 행위로 몰려 역풍을 맞는다. 편애가 심한 경영자는 팀웍을 해치고 구성원들을 좌절시킨다. 경영자의 부당한 차별은 조직 전체에 전염되어, 직원들간에도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집단 따돌림 같은 문제를 복사해낸다. 차별이나 따돌림이 주는 사회적 고통이 사람의 뇌에 주는 충격은 몸에 화상을 입는 정도의 아픔 만큼이나 크다고 한다. 그렇다면 차별은 폭력이고 범죄다.  



경영자의 역할은 기업 성과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 문화는 경영자의 조직 운영 철학의 결과물이다.  ‘부지기군 시기소사不知其君 視其所使’란 말이 있다. 그 군주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거든 그가 쓰는 사람을 보라는 뜻이다. 사기史記의 전숙 열전에 나오는 고사다. 그 상사에 그 부하, 유유상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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