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감 Sep 16. 2021

'법무부 차관의 우산'은 의전도, 갑질도 아니다.

바탕을 왜곡하는 꾸밈

진천=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2021.8.27.


얼마 전에 기자 브리핑을 하는 법무부 차관 뒤에서 누가 우산을 받쳐 들고 있었다 해서 여론의 입방아에 올랐다.


수행 비서로 보이는 넥타이 차림의 젊은이가 비를 철철 맞으며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하도 안쓰러워서 '갑질 공화국', '황제 의전', '우산 몸종' 따위의 자극적인 표현들이 따라붙었다. 법무부는 기자들이 우산 든 직원을 카메라에 안 나오게 해달라고 해서 그랬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우리 사회에서 바로잡아야 할 문제의 단면을 보여준 해프닝임에 분명한데,

문제는 핵심을 제대로 알아야 풀린다.


새로 지은 집에 비가 새면 원인을 찾아내야 막을 수 있다. 방수 우레탄의 품질이 불량인지, 날림으로 시공했는지 아니면 밖에서 비가 샌 게 아니고 안에 습기가 차서 그런지 살펴봐야 한다. 비가 새는 것만 문제로 인식하면 허구한 날 세숫대야에다 빗물 받아내는 수밖에 없다. 지엽적인 현상 자체를 문제로 인지하는 수가 많다. 현상의 원인을 찾아서 문제의 핵심을 확정하면 문제의 반은 푼 거나 다름없다.


지금 입에 오르는 갑질이나 의전 따위는 문제의 원천이라기보다 종속된 결과나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문제의 측면을 본질로 착시하고 왁자지껄 혀를 차 봐야 소모적이다.


이 사건이 물의가 된 직후 유력 인사들이 카메라 앞에서 우산을 꼭 움켜잡고 소박한 지도자 이미지를 연출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법무부가 과잉 의전이라고 힐난받은 데 대한 즉각적인 학습 효과다. 


의전은 공식 행사에서 주요 인사에게 적용하는 격식과 예절이다. 비 오는 날 원고를 읽는 차관의 우산을 대신 들어준 걸 의전이라고 꼬집는 건 부정적인 편견이다. 보도된 사진에 보면 카메라 기자도 옆에서 누가 우산을 받쳐주고 있다. 


갑질은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게 제멋대로 구는 짓'이라고 사전에 나와있다. 차관이 수행비서 (차관에게 수행 비서가 딸려있는지도 모르지만)에게 우산 들고 무릎 꿇고 있으라고 직접 지시했을 리가 없다. 그 정도는 밑에 사람들끼리 알아서 기었을 터이고... 그렇다고 그 젊은 비서가 비참해하거나 모욕감을 느꼈을 것 같지도 않다. 요즘 시끄러운 군대 가혹 행위와도 결이 다르다. 오히려 본의 아닌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모시고' 있는 까마득한 상관이 난처한 입장에 빠져 면구스럽고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으리라.


문제의 현상이나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는 의전, 갑질 따위를 가지고 이 사건에 접근하면 조롱질만 난무하고, 수그러지면 유사 문제가 재발한다.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망신당한 당사자는 필시 언론을 원망하거나 재수가 없었다고 한탄할 것이다. '이유 불문하고 사과'는 할망정 억울하게 당했다고 여기는 일을 진정으로 반성하는 사람은 없다. 반성하지 않으면 개선도 없다.



문제의 핵심은 지나친 꾸밈에 있다.




현지 활동을 도왔던 아프간 사람들을 특별 기여자 자격으로 데려온 건 한국이 국제사회의 중견국으로서 잘한 일이다. 국방부와 외교부가 서로 치밀하게 협조하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삼백여 명의 생명을 구해왔다. 정부가 칭찬받을 만하다.


아프간인들의 입국과 보호는 법무부 소관이라고 한다. 법무부 차관이 비가 오는데도 밖에서 이와 관련된 브리핑을 강행하다 사달이 났다. 정부의 고관이 굳이 진천까지 가서 기자들을 불러 모을 만큼 긴급한 사안이었을까? '아프간인들이 와서 한국에서 편안한 첫날밤을 보냈고, 가구 수, 나이와 성별의 분포가 어떻게 되고, 진천 주민들에게도 감사한다.'라는 법무부 차관의 발표 내용이 궁금해서 알 권리를 주장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내용이 없어 '그림'이 상대적으로 중요하던 차에 주인공 주변에 우산 든 젊은 직원이 거슬렸다. 깔끔한 그림을 갈구하는 공동의 이익이 맞아떨어진 법무부와 기자들은 우산만 남기고 사람을 삭제하는 어리석은 기지를 발휘했다. 발표 행사가 따분하던 차에 기자와 시청자들은 순간적으로 재미있는 숨은 그림을 찾아냈다. 주인공은 졸지에 차관에서 비서로 바뀌었다. 


비 맞으면서 읽을 원고를 대신에 기자들에게 카톡으로 뿌려주고 말았으면 될 일을 조급하게 좌판 깔고 퍼포먼스를 하다가 화를 자초한 모양새다.


국방부와 외교부에 집중된 조명에 초조해진 법무부가 생색내기 를 연출하다 '방송사고'를 낸가 아닌가 싶다. 국제적 관심사가 된 아프간 난민을 받아주는 일은 법무부로서도 홍보의 호재였을 텐데 엉뚱한 데서 김이 새고 말았다. 기관장이나 부처의 강성 이미지를 희석시킬 수 있는 찬스를 날려 보냈다.


내용이 바탕이라면 보여주기는 꾸밈이다. 바탕과 꾸밈은 상호 보완하는 작용을 하지만 꾸밈이 바탕을 능가하면 본말本末이 전도되고 천박한 겉치레가 된다.


글로벌 기업의 CEO가 국제 행사에서 신제품을 소개하다 제품이 먹통이 돼서 머쓱해하는 걸 보며 드는 생각은 '쟤네들은 연습도 안 하나'이다. 우리나라 조직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실수다. 그 정도 행사 면 보여주기의 극치인 바 수없이 예행연습을 하고 또 하기 때문이다. 한번 보여주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투자한다.


타인의 눈이 의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우리 고 맥락 사회에서는 내용보다 보이는 겉모습에 신경을 쓴다. 과정보다 가시적 성과에만 주목하는 결과주의가 초기 성장엔 도움이 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을 저해한다.


정치, 언론, 교육계를 비롯하여 온 나라가 꾸미기 연출에 매몰되어 있다.


바탕素과 꾸밈繪는 근본과 말단末端에 해당한다. 논어의 옹야 편에서는 바탕이 과하면 촌스럽고 지나치게 꾸미면 사치스럽다고 했는데, 지금 우리는 꾸밈이 주도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차근차근 순서대로 기본을 다지도록 세상이 놔두지를 않는다. 우리는 착하게 줄 서서 순서를 기다리다 앞에서 줄이 끊겨 좌절했던 기억을 트라우마로 공유하고 있다. 이로 인한 집단적인 소외감이, 어떻게든 남보다 먼저 성과를 내고 보자는 조급한 방어기제를 자극한다.

보디빌더가 정직하게 땀을 흘려 몸을 단련하는 대신 스테로이드 약물을 주사해서 속성으로 근육을 만들어 낸다. 사람을 판단하는 데 인성보다 외모가 앞서는 건 이 시대의 상식이 되었다.

사람의 인성이 소素라면 외모는 회繪가 아닐까? 초등학생들이 화장을 하는 걸 보고 말은커녕 혀만 한 번 클릭해도 꼰대 등급이 올라갈 정도다.

급증하는 외모 관리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나라 의대생들은 성형외과 전공으로 몰린다. 한편 흉부외과 의사가 부족해서, 대응이 빨랐더라면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살 수 있었을 중증 외상환자가 다수라고 들었다. 그래서 심폐소생술이 국민 기본기가 되었을까?

미용이 생명에 우선하는 이러한 본말本末의 전도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목격된다. 결혼식장에 가서 축의금만 디밀고 피로연장으로 직행하고, 학교 가서는 잠자고 공부는 학원 가서 한단다.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을 코로나 가 멈춰 세웠다'브런치 2020.10. 필자 글 일부 편집 인용

작가의 이전글 꼰대가 미래의 꼰대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