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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Oct 02. 2021

주먹 악수


일회용 종이컵을 들고 마시면서 가장자리를 엄지와 집게로 쥐는 사람들을 본다. 컵이 얇고 내용물이 뜨거워서 그러겠지만 옛날에 물이나 숭늉을 대접으로 마시던 습관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 당사자는 그런 경험이 없더라도 어려서 봤거나 조상의 습관이 DNA를 타고 전달되었는지 모른다.


이것처럼 전통과 서양 문화 사이에 엉거주춤 양다리 걸치고 있는 게 인사 예절이다. 수직 질서 중심의 우리 예절이, 평등과 친근감을 강조하는 서양식 인사와 섞여서 때로 어색한 장면을 연출한다.


구면이든 초면이든 만났을 때 상대의 손을 잡는 악수는 대표적인 서양식 인사다. 상대의 눈을 보고 손을 흔드는 본래의 악수가 우리에게 와서 현지화되었다. 전통과 서구 방식이 혼합되어서, 손을 잡으면서 동시에 고개와 허리를 숙인다. 왼손을 오른팔 밑에 갖다 대기도 한다, 술잔 따르듯이. 중복되고 낭비적이지만 아랫사람이 악수를 핑계로 상하 예절을 제낄 만큼 담대하지 못하다.


우리 민족은 부부간에도 남 앞에서 포옹하거나 손잡는 행위를 자제했다. 부모 자식이나 친구 사이에서나 손을 잡고 사랑과 우정을 표현했다. 남의 피부를 만지는 인사는 아직도 우리에게 부자연스럽고 전통 예절을 온전히 대체하지도 못하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 악수를 자제하자고 한다. 좀 건조하지만 위생적인 우리 식 예절로 돌아가는 좋은 계기다. 그런데도 주먹을 맞대는 어색한 방식을 대안이라고 내놓고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특히 그렇다. 반가움을 주체 못해서 상대방의 살갗을 이렇게라도 스치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다는 듯이 한 사람씩 돌아가며 주먹을 부딪는다. 우스꽝스럽고 부자연스럽다. 고개는 고개대로 숙인다. 이때 권력과 서열이 고개 숙이는 각도를 결정하는 변수가 되는데 그 순간적인 계산이 상당히 정확하다.





뉴스에 보면 정치인들끼리 유난히 피부 접촉이 잦다. 전당대회나 선거 유세 같은 거 할 때 보면 일률적으로 만세 부르듯이 서로 손을 잡고 흔드는데 보는 사람까지 어깨가 아플 정도다. 다른 분야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이한 몸짓인데 당명은 수시로 바꾸어도 이건 그대로다.


같은 대학 같은 과 나온 동창에다 같은 직장 동료면서도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사람들이다. 권력 앞에서 언제 돌아설지 모르는 사이에 남들 앞에서는 끈끈한 척한다.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아이를 추켜올리고, 시장에서 어묵을 씹어대는 대선 후보들을 TV에서 얼마나 봐야 이 겨울이 지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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