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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Jan 17. 2022

소주 한잔 할래?

외로워서 그럴 거야 

사진 출처 세계일보



그런 말이 있다. 누가 '가볍게 맥주나 한 잔' 하잘 때 내키지 않으면 거절해도 되지만, '나랑 소주 한 잔' 할래 하거든 웬만하면 토 달지 말아라. 외로워서 보내는 긴급 구조 요청 신호를 놓칠 수 있다.


맥주 콜은 말 그대로 시원한 맥주가 생각나서 도모하는 번개일 가능성이 많다. '가볍게' 시작함으로써 이면에 감춰졌을 복선에 대한 상대방의 의심을 차단한다. 게다가 하찮은 선택임을 시사하는 편리한 조사 '(맥주)'가 쐐기를 박는다. 


이럴 때 안주는 주인공인 맥주의 위상을 훼손하지 않는 마른안주가 제격이다. 180도에 수렴하는 각도로 비스듬히 기대앉은 자세에서 안주 던져먹기 신공을 계속 연마한다. 가벼운 알코올 도수의 맥주에, 가벼운 안주와 더불어, 가벼운 얘기나 하자는 제안이니 담으로 미루자고 해도 초대자가 상처받을 일은 없겠다.


그런데,


소주는 다른 술에 비해 향이나 맛은 시시하다. 오죽하면 첫 잔의 서먹함을 어떻게 해보려고 맥주에 말아먹을까. '소주 한잔 할래'는 소주 맛을 함께 음미하자는 청이 아니다. 엄선해서 접선한 상대방 보고 내 고통 좀 알아 달라는 몸부림이요, 해결은 못해도 좋으니 역성이나 들어달라는 투정이다. 맥주에 썼던 '나' 조사가 빠짐으로써 단호한 의지가 보이지만, '할래'라는 명령형 의문문의 종결에서 화자話者의 떨리는 망설임이 묻어난다.


몇 잔 오간 후 미각이 무뎌질 무렵 소주의 임무가 시작된다. 맥주처럼 위를 팽창시키지도, 고량주처럼 위벽을 할퀴지도 않으면서 원인을 제공한 외로움을 희석하는데 복무한다. 


원통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의 꼿꼿한 허리는 한숨과 함께 점점 상대방 쪽으로 기운다. 테이블 위에 쏟아놓은 고통을 주시하던 시선은 힘이 드는지 슬며시 옆 테이블로 향한다. 소주를 끼얹은 위로의 말은 공허하지만 반복해서 듣고 있으면 고통의 부피가 좀 작아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고독해서 외로울 수는 있지만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


고독은 세상과 단절되어 혼자 있는 상태이다.

산속에 들어가면 고독하지만 외롭지 않을 수 있다.

군중 속에 있으면 고독하진 않지만 외로울 수 있다.


외로움은 고독하거나 심심한 상태가 아니고 관계의 결핍이나 상실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단절되어서 외롭고, 소외되어서 외롭고, 서운해서 외롭고, 노여워도 외로워진다.


젊은이는 코로나 시대라서 외롭고,

늙은이는 시대가 너무 빨리 지나가서 외롭다


외로움은 원인도 많고 결과물도 다양하다.


외로운 사람이라고 하면 어두운 구석에 홀로 찌그러져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하는데 꼭 그렇진 않다. 

주위 사람의 일상적인 행동을 보고도 '외로워서 그럴 거야'라고 하면 대충 들어맞는다.


잘 난척하는 사람, 자기 비하하는 사람,

남을 깔보는 사람, 남에게 아부하는 사람,

말이 많은 사람, 혼잣말하는 사람,

남을 차별하는 사람, 남 탓하는 사람은

필시 외로워서 그럴 거다.


샤워하면서 욕을 하고 ,

만만한 이한테는 시비 걸고,

남이 울면 따라 울고,

모임마다 쫓아다니다가도 약속 깨지면 좋아하는 사람은 

외로움증을 의심해 볼 만하다.

그중에서도 자살하는 방식을 즐겨찾기에 모아놓은 사람은 중증이다.




초연결 사회에서 우리는 외로움을 벌고 있다.


임시방편으로 마련한 비대면이 이제 사회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함께 있으면서 따로인 사회적 배고픔이 외로움을 보탠다.


코로나는 시국이 아니라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길게 봐야 한다.


‘힘들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혼자라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라는 느낌이 고질적으로 반복되면 증상이고, 증상은 병을 앓을 때 나타나는 상태다. 외로움으로 인한 상처가 정말 몸을 아프게 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병은 치료하지 않으면 악화된다. 


외로움증 환자는 주위에 많은데도 눈치와 통밥의 투시경으로 관찰하지 않으면 잘 안 보인다.

'소주 한잔 할래' 하기 전에 내가 얼른 선수 치자.


그런데 소주를 '쏘주'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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