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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May 11. 2022

카카오 단톡방에서 벌어지는 일들





2010년 경 메신저 서비스를 출시한 이래 카카오톡은 빠른 속도로 이동 통신사의 문자 메시지 시장을 잠식했다. 목 좋은 가게엔 뭐를 갖다 놔도 잘 나가듯이 카카오는 교통량이 늘어난 플랫폼을 백분 활용해 금융, 교통 등 전방위로 사업을 확장하며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세계적인 채팅 앱으로 와챕 WhatsApp이 있지만 카카오 톡에 비해 단조로워서 네이버 하다 구글에 들어 간 듯 심심하다. 와챕이 단순 건조의 장점은 있지만 식당에 가면 밑반찬이 아기자기해야 행복해지는 한국 사람의 정서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한다.


카카오톡은 삼천만(가입자 기준으로는 사천만 이상)이 상용常用하는 이 시대 소통의 행동 양식이 되었다. 한국에서 살면서 카톡을 안 쓰고 버티려면 주위의 원성을 각오하든지 아니면 자연인으로 살아야 할 지경이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전화 연락처까지 카톡이 물고 들어와 반 자동으로 친구를 만드는 바람에 뭐하다 들킨 듯 흠칫 놀랄 때도 있다. 그렇게 얽히기 싫다고 카톡 안 쓰는 친구가 있기는 하다. 카카오톡이 우리나라 스마트폰의 보급을 앞당겼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카카오톡이라는 후발 타자가 이동 통신사들의 안일하고 오만한 약점을 파고들어 한 나라의 메신저 시장을 장악했다. 통신사 문자는 요금이 발생하는데 카톡은 무료라(고 생각되)는 점도 한몫했으리라. 따지고 보면 와이파이 안 되는 데서 카톡을 쓰면 데이터 통화료가 발생하니 아주 공짜라고는 할 수 없다.


무엇보다 문자 메시지가 못 미치는 몇 가지 쓰임새가 가입자를 몰아갔는데 그중에 단체 대화 기능이 결정적이다. 다수가 참여하는 사이버 공간에서 구성원 간 정보와 대화가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공유되는 단체 카톡 방이 인기를 끌며 동호회와 모임의 원활한 통신에도 기여했다.


업무형보다는 친목형이 주류를 이루는 단톡방은 친구나 모임 회원, 같은 조직의 동료들이 친교를 위해 만든다. 경조사나 공지사항을 올리다가 비공식 대화 수단으로 발전했다. 메신저라기보다 가벼운 채팅에 더 가깝다. 만드는데 돈이 안 드니 보통 수십 개씩 유지하는 데 방을 헷갈려 민망한 실수도 한다. 싸가지 없는 시누이 흉을 아차해서 시媤월드 카톡 방에 올렸다간 관계 회복에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발생한다.


친목형 단톡방은 여러 사람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화합하는 가상의 광장 역할을 한다. 오프라인 모임이나 일대일 대화에선 억제되었던 개성과 소신이 과감하게 표출되면서 광장의 문화가 꽃 피는 동시에 공동체의 갈등도 경험한다.




정치 관련 글을 단톡방에 올리거나 퍼 오면서 분란이 시작된다. 정치인에 대한 소견이나 정파가 갈등하는 사안이 걸리면 날카로운 댓글과 대댓글이 날아다니며 평화롭던 방에 전운이 감돈다. 대화가 격앙되면서 결국 당사자가 단톡방에서 나가기도 한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는 과격한 장면에 해당한다.


그렇지 않고 한두 명이 계속 시끄럽게 하면 난감하다. 아무리 난동을 부려도 카톡에선 강제로 내 보낼 방법이 없다. '채용'은 쉽지만 '해고'가 어렵다. 꼴 보기 싫다고 방에서 나가 버리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대로 놔뒀다가 단톡방 문 닫을 지경이면 남은 카드는 방을 하나 따로 들이는 거다. 문제의 화상(들)만 남겨놓고 새로 만든 방으로 단체 이사를 간다. 당사자는 갑자기 방이 조용해져서 이상해하다가 집단 따돌림 (=왕따) 당한 걸 알게 되고 충격받는다.


단톡방에서 자주 일어나는 소란인데 이를 예방한다고 '여기다 정치 얘기 같은 거 올리지 말자'고 호소해 봐야 별 효과가 없다. 친목 모임의 성격상 리더의 말발이 안 서고 어차피 정치 얘기라는 것의 경계도 애매하다. 정파 간에 주장이 갈리는 사안을 모두 정치로 몰아서 배제하면 결국 당뇨병, 치매 예방 상식밖에 할 얘기가 없다. 문제는 내용이 아니라, 나와 다른 생각을 다루는 기술이 어설픈 것이다. 생각을 생각으로 대응하지 않고 생각을 가진 사람을 공격하면 싸움이 된다. 내 맘에 안 드는 모자를 쓰고 있다는 이유로 남의 머리를 쥐어박는 꼴이다.




카톡은 기록이 남는다. 떳떳지 못한 대화가 오고 간 카톡 화면이 언론 카메라에 찍히는 바람에 망신을 당하는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범인들의 범행 모의 과정이 기록된 대화방이 털려서 빼도 박도 못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수사관에게는 지문만큼이나 유용한 게 카톡 기록일 듯하다. 기록을 삭제하는 기능이 있고 서버가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텔레그램이라는 앱으로 갈아타는 이들도 있던데 참 애들 많이 쓴다.


카톡은 전화처럼 멀리 있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도와주는 장치라고도 볼 수 있다. 카톡의 사용자는 문자를 입력하지만 내용은 말이나 다름없는데 기록이 남는다. 말은 순간적이고 즉흥적이라 주워 담을 수 없어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다, 불조심보다 말조심이 먼저라고 할 정도로. 그래도 말은 글에 비교해 공적인 구속력이 덜했는데 이젠 말을 기록하는 기술이 다양해져서 문서와 같은 자격과 책임을 갖게 되었다. 카톡이 그렇다, 본의 아니게.




카카오톡에 기껏 써서 올렸는데 읽지 않고 나중에 딴 소리 한다고 투덜대는 이들이 있다. 내용이 길수록 더 그렇다.


우리가 생각을 말이나 글로 전달할 때 착각하는 게 있다. 말을 하면 다 듣고 글을 쓰면 다 읽을 거라는 오해다. 듣고 읽는 작업은 집중을 요하고 집중하면 에너지가 소모된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한정된 에너지를 우선 배정받으려면 나의 컨텐츠가 여러 기준에서 경쟁 우위에 있어야 한다.


아쉬운지, 급한지, 유익한지, (놓치면) 불이익이 있는지, 술술 잘 읽히는지, 결말이 궁금한지, 아니면 재미라도 있는지 따위 평가 기준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앞에 놓고 소리 질러도 쇠귀에 경 읽기다. 음식을 차려놓았다고 다 먹는 게 아니다. 필요한 영양분이 없거나 소화시키기 어려운 음식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기피한다. (이 글 모냥)임팩트 없이 주저리 횡설수설을 늘어놓으면서 내 글을 잘 안 읽는다고 불평하는 건 누워서 침 뱉기다.


자기 글이,


두서없이 산만하지 않은지, 협량한 주장은 아닌지, 지루하게 되풀이하는 잔소리는 아닌지 따위를 성찰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유인책을 영업적인 자세로 연구할 일이다.


돈 주고 산 책도 부실하면 두 페이지 반 읽고 집어던진다. 한다 하는 명저도 (독자가 끝까지 읽는) 완독完讀률이 한자리 수인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내가 전하려는 정보의 가치를 마케팅하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별것도 아닌 상품 갖고 배부른 장사하면 안 팔린다. 




얼떨결에 초대받아 단톡방에 들어갔지만 활동을 중지하는 회원이 있다.


본인이 늦기 전에 단톡방에 인사 꾸벅하고 나가면 되는데 이게 현실에서 잘 안된다. 나가는 동작이 눈에 띄어 매몰차 보일까 봐, 이별이 아쉬어서, 쭈뼛쭈뼛 미루다가 시기를 놓치고 주저앉게 된다. 뻘쭘하게 있다 나가자니 명분이 없어 정보는 받아 자시되 내놓는 게 없는 비 대칭적인 구도가 만들어진다. 기존 회원들도 나가라 소리는 못하지만 외부자가 끼어있는 게 거북하다. 서로 실속 없이 불편하다.


여행이나 세미나 등 임시 활동을 위해 만들어 놓은 단톡방의 용도가 이미 폐기되었는데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어쩌지 못하고 방치해서 걸리적거리는 단톡방이 여럿이다. 그놈의 정 때문에... 우리는 이별이 익숙하지 않다.


머물고 움직임에 적기가 있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것도 능력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아가고 물러남에 절도가 있어야 한다는 진퇴유절進退有節에 실패해서 망신하는 사람들 많다. 절節 은 식물의 마디를 뜻하는데 알맞은 정도를 상징한다.




식구들끼리도 단톡방을 만들어 서로 근황을 파악하는데 우리 집도 그렇다. 하지만 생일 축하나 (첨 보는) 강아지 사진 아니면, '기숙사에서 나와 아파트로 옮기려고 하는데 월세가 100불 (밖에 더 안) 비싸다'라는 영양가 하나 없는 소식들만 올라온다. 정작 아이들의 고민거리 같은 쓸만한 정보는 나를 우회해서 별도 운용하는 1:1 모母계 채널에서 유통된(다고 짐작한)다. 가치 있는 피드백은 없이 잔소리나 듣는 공간에다 비 호혜적으로 정보만 공개하는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하겠다는 거다.


상호 균형 있는 정보 교환이 단톡방 포함 모든 온 오프 공동체의 질을 좌우한다. 그러나 여느 커뮤니티처럼 왈왈이 몇이서 정보 생산을 독점하고 나머지는 피동태로 끌려가는 쏠림형 단톡방이 꽤 있다.


방장이 공지사항을 올리고 회원들이 반응하는 시간의 스펙트럼이 넓다. 회신 지연의 사유가 없는 경우에도, 1시간짜리부터 1주일짜리까지. '내용은 다 꿰차고 있으면서 끝내 침묵형'도 있다.


1시간 형形은 1시간 이상 형을 용서하지 못한다. 더구나 질문을 던지고 기다리는 측이 1시간 형일 경우엔 댓글이 늦는 사람에게 '저 인간이 나를 무시하나' 하며 답답해하며 대굴대굴 구른다. 그렇다고 1일 형이나 1주일 형이 1시간 형을 좋게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방정맞게시리... 할 일이 없나...' 


한 번은 우연히 어떤 1일 형이 자기보다 아주 조금 늦게 반응하는, 말하자면 1.01 일 형에게 충고하는 소리를 듣고 기가 막힌 적이 있다. '댓글을 제때 안 달아주면 주관하는 사람이 힘들어... 스마트폰의 알림 기능을 어쩌고 저쩌고... '


공지나 메시지를 올렸는데 끝까지 침묵하는 이들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이기적 존재로 여긴다. '굿이나 보고' 나서 적어도 '단답'의 성의도 표시하지 않고 떡만 먹으려는 얄미움에 대해 반감이 생기는 거다.


단톡방에 올린 제안에 대해서 가부간 선택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고, 좀 망설일 수도 있다. 또는 초장에 공연히 깜빡이 켜고 여론을 호도하기 싫은 겸손함에서 입장 표명을 미룰 수도 있다.


서양 사람이 동양 사람과 대화하다가 예스 yes냐 노 no냐 하며 다그칠 때가 있다. 뭐를 물었는데 똑 부러지게 대답을 안하고 우물거릴 때 그런다. 망설임이라는 업션을 상상하지 못하는 경박한 족속이다. 심지어 식당에서 주문받으면서 그러는 버릇없는 종업원도 있는데, 나는 팁을 1센트 놓고 나오면서 응징한다.


선택에 양자兩者만 있는 게 아니다.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망설이는 것도, 우물쭈물도 선택이고 대답이다. 긍정 반半, 부정 반일 수도 있고. 살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중간 비스름한 거취가 해답인 경우가 있다.


만물이 각각 고유의 주파수로 진동하듯이, 개인이 메시지에 반응(=진동) 하는 시간 또한 각각 다르다. 누구나 자신의 호흡 일순과 자신의 보폭이 가장 편안하다. 사안에 따라 우선 순위 정도가 변수로 가감되어 최종 반응 시간을 결정한다. 우리 사회에서 동일 사안에 대해 각자가 느끼는 완급의 온도차로 인해 생기는 갈등도 무시 못 한다. 거기다 대고 너무 빠르네 느리네 하며 시비 건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잔소리 몇 마디로 사물의 주파수가 변경되지 않는다. 강물에 대고 재촉한다고 더 빨리 흐르지 않는다.




카톡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보는 건 책이 아니라 스마트폰이고 그중에서도 카톡이다(라고 하면 좀 과장이긴 하지만).


커피숍에서, 식당 가서 수저도 들기 전에 음식 찍어 올리느라, 지하철에서, 국회 본 회의장에서, 장례식장에서, 교실에서, 비행기 타고 안전벨트도 매기 전에, 길 걸어가며... 지문이 닳도록 두드려댄다, 이러다가 전쟁 중에도...'적에게 포위되었다, 오버... 현 위치 고수하고 귀소 좌표 네비 찍어 카톡에 올려라, 오버.' 하지 않을까.


그래도 다행인 건 장소에 관계없이 카톡을 내려다보는 입꼬리가 대개 올라가 있다는 거다. 죽지 못해 카톡을 읽는 사람은 드물다. 전 국민이 틈만 나면 생산하고 교환하는 카카오톡의 경제적 가치 이전에 국민의 정신 건강에 작용하는 순 기능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노인들의 카톡 프로필엔 등산복 입고 정상석과 어깨동무하고 있거나, 관광지에서 배우자와 함께 찍은 또는 손주 사진이 많이 올라온다. 친구들과 어울려 산에 오르고, 식구와 여행 가고, 손자 손녀 돌보며 소일하는 상태를 잘 말해준다. 그 상태가 조금 더 다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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