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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May 16. 2022

코로나와  죽음의 5단계 이론

퀴블러 로스 곡선 : 부정-분노-타협-침체-수용

© geralt, 출처 Pixabay


기침이 나오길래 혹시나 해서 자가 키트로 진단해보니 음성이었다. 다음 날 새로 자가 진단을 한 이유는 긍정적 결과를 한 번 더 즐기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하는 자가 진단의 정확도를 보상해서 쐐기를 박고 싶어서였다. 두 번째 검사에서 의외로 두 줄의 양성 반응이 나왔을 땐 자가 진단의 신뢰성을 의심했다. 어떻게 하루 밤 사이에 결과가 왔다 갔다 하나.


봄비 내리는 삼월 말 오후에 보건소의 선별 진료소 앞에서 줄을 섰다. 공적으로, 과학적으로 믿을 만한 PCR 검사 한 방이면 변덕스러운 자가진단으로 혼란스러워진 상황이 정리되리라 기대했다.




격리 1일째 / 부정

대개 합격 통지는 예정보다 빨리 보내준다. 검체의 유전자를 증폭시켜 코로나 유무를 확인하는 PCR 검사에선 양성이 합격이다.


검사 다음 날 오전에 양성 통지를 받은 첫 소감은 '그럴 리가 없어'였다. '나는 안 걸린다'는 근거 없는 믿음은 PCR 검사 결과까지 오진으로 의심하게 만들었다. 2002 월드컵 4강전에서 한국이 결승에 올라가고 말 거라는 철석같은 믿음은 요행심이었다. 희망적 낙관과는 다르다.


PCR 검사의 특이도는 100%라고 한다. 걸리지 않은 멀쩡한 사람을 100% 음성으로 가려낸다는 말이다.


격리 2일째 / 분노

기침이 계속되고 보건소로부터 날아오는 문자 폭탄에 피폭당하면서 검사 결과를 받아들였다. 확진을 기정 사실화하니 이번엔 부아가 치밀었다.


백신을 한 해에 세 번씩이나 꼬박꼬박 맞고도 걸리다니... 이거 PCR 검사 줄 서다가 옮은 거 아냐? 백신을 한 번 안 맞고도 멀쩡한 친구 놈과 비교하면서 자괴감이 들었다.


격리 3일째 / 타협

내가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다들 돌아가며 겪는 시련을 비켜갈까. 이 참에 나는 완전 면역체가 되고, 식구나 안 걸렸으면 좋겠다. 호텔로 내쫓은 아내에게 PCR 검사 빨리 받으라고 닦달했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이 소식을 알려 위로를 유도하고 격리 기간 중에 걸려있는 약속을 당당하게 취소했다.


격리 4일째 / 침체

동거인 지침에 따라 검사를 받은 아내도 양성이 나오자 집으로 복귀해서 환자끼리 재결합했다.

시차를 두고 동거인이 함께 격리되면 격리 기간은 어떻게 조정되는 건지 시시콜콜 따질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걸릴 사람 다 걸렸으니 집안에 설정해 놓은 방역선도 의미가 없다. 이판사판이다.


격리 5일째 / 2차 분노

격리 중인 환자에게 기관에서 전화를 걸어 상담을 해 준다던데 조용하다. 전화를 돌리면 '지금은 받을 수 없다'는 자동 응답만 듣는다. 아니 이 사람들이 고 위험군을 뭘로 보고. 예전에 입국자 격리시킬 때 배달해주었다는 컵라면 같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환자를 나가지도 못하게 해 놓고 나 몰라라 하면 집에서 고독사 하라는 소린가.


격리 6일째 / 수용

주위에 코로나 선배들 왈, 심하지 않으면 다행으로 알고 근신하고 있으란다, 중증 환자 돌보기도 벅찬 의료 자원 낭비하지 말고. 맞는 말이다. 한 말씀만 하시든지 마시든지 제가 곧 나으리다.


격리 7일째 / 2차 부정

아침 8:30에 보건소에 전화를 걸었더니 이번엔 사람이 받는다.


격리 끝나가는데 완치 여부 검사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요?


'아니요, 검사받지 마시고!' 하는데 끄트머리 ''에 강한 악센트가 꽂힌다. 치매 걸린 막무가내 시어머니 야단치는듯한 높은 음자리의 짜증이 전화선을 타고 넘어온다.


검사받아봐야 필시 바이러스 잔량이 검출되니 받으나 마나란다.


감염 후 7일 지나면 전염력이 소멸되니까 보너스로 한 삼일 정도만 더 조심한 후에 돌아다니라는 게 당국의 지침이다.


환자 상태와 무관하게 날짜만 지나면 감염력이 없어진다는 자신감에 신뢰가 안 간다.


확진과 동시에 음압 병실로 실어가던 2년 전과 비교가 된다. 그때의 바이러스보다 지금의 바이러스가 그만큼 순해졌는지, 집단 면역력이 그만큼 강력해졌는지, 아니면 자포자기?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 해제까지의 일주일 기간에 경험한 심경의 기복을 돌이켜보니 재미있게도 퀴블러 로스 Kubler-Ross 가 발표했던 '죽음의 5단계' 상당 부분 겹친다. 미국 시카고 대학 병원 정신과의 퀴블러 로스 교수는 말기 환자들을 면담, 그들이 죽음에 직면해서 공통적으로 거치는 다섯 단계의 정서적 반응을 관찰했다.


개인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대부분이 부정 denial - 분노 anger - 타협 bargaining - 침체 depression - 수용 acceptance의 과정을 거치더라는 거다.


우리 인류가 코로나 창궐이래 2 년 동안 헷갈린 과정도 엇비슷하다.


[초기] 부정 :  이제 여름만 되면 물러갈 거야.


[원망] 분노 :  중국...!!


[과학적 대응] 타협 :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고 집단 면역 이루어지면 게임 끝나.


[변종] 침체 :  이러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류가 멸망하는 거 아냐.


[코로나 일상] 수용 : 코로나도 이제 독감처럼 달고 사는 거지 뭐.




질병이 인류의 역사를 바꾼다는데 코로나가 한 시대를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다.


코로나는 창궐 이래 독자적인 아젠더를 가지고 진행해왔고, 저들이 작정한 거 도도하게 다 마치고 나서야 물러간다는 두려운 가설을 세워본다.


가설이 맞다면, 인류가 강구하고 실행해 온 대책은 약발(=인과 관계)이 별로 없었고, 가끔 작동하는 듯 보인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렇다면 코로나만 결말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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