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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Jun 22. 2023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제된 기억을 되살려 주는. 

독서록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박완서 작


오래전에 읽은 소설인데 이번에 '처음처럼' 읽었다. 늙은이의 단점이자 장점이다. 생각나는 건 '싱아'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막연하게 머루나 으름같은 야생 과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싱아는 풀 이름이라고 한다. 이처럼 잘못 알고 있는 게 얼마나 많을지.


박완서 작가는 늦게 40세에 등단했지만 수많은 자전적 작품을 남겼다. 뛰어난 이야기꾼 박완서의 글은 진솔하고 겸손하다. 자신의 부족함을 가리지 않는 게 겸손이라면 진솔과 겸손은 동의어다. 진정성 있는 말과 글은 보석 같은 인간 본성을 내보이지만 아무나 못한다, 용기와 재능이 필요하다.


소설은 일제시대 말부터 시작한다. 개성 근처에 살던 작가가 엄마를 따라 서울 현저동 산동네에 이사 와서 겪는 문화 충격, 국민학교 시절, 창씨개명 등의 개인사가 해방, 6.25 동란으로 이어지는 혼란한 시대와 나란히 간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가족사에서 장융의 '대륙의 딸들'이, 당시 풍속과 언어의 소중한 기록에서 최명희의 혼불이 생각난다.



경향신문


온통 새까만 그들의 몸에서 놋쇠로 된 징은 유일하게 빛나는 물건이었다.

66 페이지


내 어릴 때까지 있다가 소리 없이 사라진 '굴뚝 장이'가 작가의 세밀화 같은 관찰력으로 다시 살아났다. 내게는 어머니 세대가 되는 박완서 작가가 어렸을 적 경험한 풍속風俗 중에는 내가 자랄 때까지 이어지다 없어진 것들도 더러 있다. 지금 젊은 세대에겐 번역 소설 만치나 생소하겠지만.


산 동네 살면서 식수를 공동 수도에서 받아 물지게로 져나르는 광경은 내 기억에도 남아있다. 장정이 없는 집은 웃돈을 주고 길어다 주는 물을 사 먹기도 했다. 생수를 택배로 배달시키는 요즘 세태와 닮은 듯하지만 아주 많이 다르다, 절실했기 때문이다.


요새는 애들끼리 싸우다가 손톱으로 할퀴어서 야단맞는 일이 별로 없다. 예전엔 얼굴에 흉터를 남기는 손톱 공격을 어른들은 '중벌'로 다스렸다. 당시엔 후시딘 연고가 없어서 그랬을까.


동화책이 흔하지 않았던 국민학교 때, 학교에서 새 학기가 되면 나눠주던 교과서 중 국어책, 수신 책을 뒤져서 읽었다는 대목에 많은 공감이 간다. 다만 내 세대엔 수신이 도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학기말 방학식 날 선생님이 나눠주던 '통지표'를 엄마는 왜 '통신부'라고 불렀는지 이 소설을 읽고 알게 되었다. 과목별로 성적을 수우미양가로 평가하고 수업 태도를 따로 기록한 통지표를 일제 때는 통신부라고 부른 것 같다. 국민학교 때 선생님들이 통지표에 적어 보낸 나의 수업 태도는 일생을 두고 실증되고 있다. 뼈 때리게 정확한 선생님들의 관찰력에 탄복한다. 당시 한 반에 애들이 거의 100명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이 살아 숨 쉬고 너울대는 들판에서 강아지처럼 뛰어놀 것이다. 내일이면 고개를 넘고 들을 지나서 개울을 건널 것이다. 풀과 들꽃과 두엄 냄새가 어울린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실 것이다.

98 페이지


우리 집은 내가 백일도 되기 전에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 왔지만, 소싯적 많은 기억의 배경은 방학 때 잠깐 씩 내려가서 지낸 시골이다. 우리 동네 아이들과 딱지치기하던 기억은 가물한데, 여름에 논두렁에서 메뚜기 잡을 때 나던 마른 풀 냄새, 수숫대 씹고 아카시아꽃 훑어서 '당을 보충'하던 맛은 생생하다.


작가가 서울로 이사 온 후 박적골을 그리워 한 이유에는 떠나온 고향뿐 아니라 자연에 대한 갈증도 있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박적골이 아닌 딴 데 계신다면 그렇게 그리울 것 같지 않다'라는 서술에서 자연과 사람은 한 묶음임을 알 수 있다. 어린아이들을 비행기에 태우고 외국 여행 가는 것보다 우리 강산과 들로 데리고 나가는 게 더 남는 장사다.


내 나라야 어느 지경에 가 있든지 간에 땅 파먹는 것보다는 붓대 놀려 먹고사는 걸 더 낫게 치고 이왕 붓대를 놀리려면 관청에서 놀리는 걸 보면 양반 의식 중에서 선비정신은 빼버리고 아전 근성같이 고약한 것만 남은 게 우리 집안의 소위 근지가 아니었나 싶다. 

115 페이지


일제시대에 들어와서 제도적인 신분 질서는 흔들렸지만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양반들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조선시대의 특권층으로서 나라를 내어준 책임감보다는 특권이 아쉬어서 일제에 협조하던 양반 계층을 작가는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나는 소설에 나오는 '붓대'와 비슷한 말인 '펜대' 소리를 어른들로부터 들으며 자랐다. '펜대'를 굴리면서 몸을 덜 움직이는 자리에 올라 과거 지배계층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망상이 지금까지도 속된 직업관으로 남아 있다.


엄마는 우리가 가난하니까 사는 건 문밖에 살아도 할 수 없지만 학교는 문안에 있는 좋은 학교에 가야 한다고 했다. 

54 페이지


작가가 국민학교 구두시험을 준비하면서 주소를 두 개 외웠다는 대목에 웃음이 나온다. 청문회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위장전입의 역사가 깊다.


박완서 아버지의 사인死因인 맹장염은 그 시절 의학 수준으로도 수술만 잘 받으면 치료할 수 있는 병이었다. 시아버지가 침과 한약만을 고집한 끝에 남편이 죽자 한이 맺힌 박완서 어머니는 서울로 이주해서 박완서를 '신여성'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국민학교조차 입학시험을 치렀다 하니 일제 말 교육열을 가늠할 수 있다. 양반집 며느리 체면에 자식 교육을 위해 기생 바느질까지 감수한 박완서 어머니의 희생은 지금도 크게 낯설지 않다. 일제 때 해체된 봉건적 신분관계가 학력에 의한 직업적 위계구조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교육의 동기가 촉발되었고 오늘날까지 '계승발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 소설이 너무 자전적이라서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는데 사람 사는 얘기가 소설의 소재가 되는 데 남의 얘기 내 얘기 가릴 게 있겠는가.


작 중에 나오는 '그악스러워', '내리닫이(원피스) , ' 엉군' 등은 싱아처럼 사라지고 있는 주옥같은 우리말이다. 사용자들의 수준이 천박해서 놓치는 보물 같은 언어가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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