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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May 15. 2023

독서록 : [꿈 소멸 프로젝트]

꿈도 맘대로 못 꾸는 세상


독서록

꿈 소멸 프로젝트 / 황수아 작 / 희곡 / 문학수첩 2023 상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


높은 나무에 오르다 떨어지면 다친다는 내용적 속성을 통해 허황된 꿈은 꾸지도 말라고 나무라는 속담이다.


능력이 안 되는 목표는 빨리 접을수록 현명하다는 교훈이지만 능력도 없으면서 야망은 무슨.... 하는 면박으로도 들린다. '원대한 이상'과 '뜬구름 잡는 요행'을 식별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의 꿈을 좌절시키고 있다.



황수아 작가의 최근작 '꿈 소멸 프로젝트'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무모한 공상으로 몰리는 현대 사회를 풍자한 희곡이다. 영화감독, 가수 등을 지망하는 극 중 '꿈 중독자' 세 명이 '재활 센터'에 수용되어서 꿈을 포기하는 세뇌 교육을 받다가 탈출한다는 줄거리다.


얼토당토않은 꿈을 꾸는 게 문제지 그 엠지세덴가 하는 애들 말야. 망상에 취해 하루하루를 소비하고 살잖아. 그게 얼마나 국가적 손해냐. 그건 명품 쇼핑보다 더한 특대형 과소비라고.

꿈 소멸 프로젝트 /황수아 / 문학수첩 2023 상


젊은이들의 꿈을 가로막는 사회의 구실은 경제성이다. 삶의 가치에서 물질적 요소가 점점 과장되고 있는 요즘 '효율' (=가성비)은 모든 선택에서 우선적인 판단 조건이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미래를 위해 투입하는 자원과 노력, 그리고 능력을 알고리즘에 넣어서 나오는 결과값이 '생산성'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순간 '미래'는 로또 당첨과 같은 급의 망상으로 전락한다. 여기에 어설프게 저항하는 '꿈'은 '재활센터'에 수용당하고, 순응하는 젊음은 우울한 애 늙은이가 돼버린다.


사회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픈 욕심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윽박지르며 '해야 할 일'로 갈아타게 만든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야심찬 목표가 이끌어 내는 열정, 잠재 능력 같은 거는 고려되지 않는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목표를 낮추는 비겁함이 처세의 전략이 된다.


논어 옹야 편에서 공자는 역부족力不足이라고 엄살피우는 제자 염구冉求에게 한소리 한다. '힘이 부족한 사람은 열심히 하다가 안될 때 중간에서 그친다. 지금 너는 아예 미리 단념하고 있어.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畫'


이대로 가면 당신은 스스로가 꿈 중독이라는 걸 약 10년쯤 뒤에 인정하게 되겠죠. 당신 친구들이 중소기업 임원이 되거나 대기업 부장직을 달고 있을 그 시점에 말이죠. 당신의 학벌 기준 당신의 연령 기준 2023 년 현재 당신이 가져야 할 평균 연봉 세전 ....

꿈 소멸 프로젝트 / 황수아 / 문학수첩 2023 상


사회의 경박한 잣대를 벗어나는 상상의 날개는 꺾이고, 현실에 순치馴致된 진로를 안전벨트 매고 매끄럽게 주행하는 젊은이들이 전도 유망하다고 축복받는다.


예나 지금이나 성공의 품질을 측정하는 기준은 부귀富貴(돈과 명예)다. 요새는 부와 귀가 서로 호환하는 시너지 효과 덕에 양쪽의 가치가 동반 상승했다. 돈이 권력을 구매하고, 권력은 돈으로 환전되고... 둘 중 하나만 잡으면 된다. 반면, 부富하지도 귀貴하지도 않은 빈천貧賤함은 실패한 인생으로 규정된다.


양극으로 수렴하는 평가 기준에서 부귀와 무관한 포부는 손가락질당하고 가정에서는 불효자 소리를 감수해야 한다. 헨델이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법과 대학에 갔다면 올해 성탄절 때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들어볼 수 없다. 오늘날 한국의 아이는 성적이 된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물리학을 포기(당)하고 의예과에 원서를 낸다. 성공·실패를 내가 아닌 남이 판단하는 환경에서 '나 잘난 맛'으로 버티려면 여간한 뚝심으로는 안된다.


설사 부귀를 지향하더라도 목표가 높으면 '언감생심 유분수'라는 조롱이 따라붙는다. 본분에 충실한 행동이 미덕인 우리 고 맥락 사회에서는 추구하는 이상마저도 '주제'를 알아야한다. 솔잎만 먹는 송충이처럼 '남들 사는 만큼'의 평균적인 인생을 설계하도록 강요당한다.


사회가 정화되는 게 증명됐잖냐. 꿈이 소멸된 젊은이들이 다시 열심히 살잖아. GDP 순위도 올라가고

꿈 소멸 프로젝트 / 황수아 / 문학수첩 2023 상


희곡은 'B 사감' 식으로 커밍아웃한 교관과 꿈 중독자들이 재활원을 탈출하면서 해피하게 엔딩한다. 하지만 탈출 장면조차 현재 사실의 반대인 꿈을 은유하지 않았나 해서 애잔해진다.


꿈이 소멸된 젊은이들이 GDP는 좀 올릴 수 있어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야심 찬 목표를 가진 젊은이들은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기존의 방식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그들만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더 흥미롭게, 더 희망차게 만든다.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가로묘지 주식회사'에서 집값 문제를 꼬집었던 황수아 작가가 다음엔 어떤 문제를 들춰낼지 궁금하다. 작가에겐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은 차고 넘친다.




그렇다고 젊은이들만 꿈을 꾸란 얘긴 아니고. 다만 노인의 꿈은 노인 스스로 '소멸' 시키고 있을 뿐이다. 좀 살아본 사람들만 꿀 수 있는 꿈이 있다. 왜 살았냐에 대한 답을 찾을 지도 모른다. 맘 놓고 꾸어라. 꿈에서 긁은 카드는 청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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