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감 Nov 13. 2022

코로나가 도와주는 사회 진화

독서록 :  공간의 미래 / 유현준 저

공간의 미래 / 예스 24

책 : 공간의 미래 / 유현준 저


이 책이 나온 2021년 4월경 한국은 고령자 및 의료 인력에 대한 코로나 1차 백신 접종을 완료하면서 사망률은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형 변이 바이러스로 인한 재 유행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코로나의 장기화를 우려하던 시기였다. 그 후 델타, 람다, 오미크론 따위 학구적인 별명의 변종들이 차례대로 등장해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저자는 2015년 발간한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공간의 속도라는 개념으로 도시의 역동성을 평가한 바 있다. 이번엔 공간의 소비라는 코드를 채용해서 코로나가 미래에 가져올 변화를 주거, 종교, 교육, 사무 공간 중심으로 공상과학 소설처럼 재미있게 구성했다. 내친김에 부동산 정책, 도시, 교통 등 우리 사회 문제까지 들춰내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예언’하는 현상들을 살펴보면 재택근무나 온라인 교육처럼 이미 추진해 온 실험이 대부분인데 코로나 창궐을 계기로 불가피하게 보편화되었을 뿐이다. 어차피 도래할 변화가 코로나 때문에 앞당겨진, 전화위복의 ‘진화’라는 얘기다.


예를 들면 코로나 위기에서 벗어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mRNA 백신도 이미 196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된 방식이라고 한다. 그간 실전 경험이 없어 주목받지 못하다가 기존 방식에 비해 생산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 때문에 이번에 무대에 ‘데뷔’ 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이 시대 우리나라의 대표적 주거 방식인 아파트의 비합리적인 구조가 드러난다. 거실에서 소파는 놔두고 바닥에 앉는 우리나라 사람의 ‘유전적’ 습관을 지적하며 차라리 거실과 침실을 통합시키고 근무 공간을 따로 확보하자는 현실적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한다.


아파트 얘기가 나온 김에 30 개 동이나 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획일적인 구조로 찍어내지 말고, 3 개 동씩 열 종류의 설계로 다양화하면 어떻게냐는 다품종 소량 생산의 선진적인 건의도 한다. (이러면 건축 단가가 좀 오르기는 하겠다.)


코로나는 향후 사회 진화의 방향을 15도 정도 틀 수는 있겠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미래가 180도 바뀔 것 같지는 않다.  11 페이지


'인터넷 화상 통화가 손을 잡는 데이트를 대체하지 못한다.'


저자는 코로나 시국의 대표적인 현상인 비대면 교육이나 재택근무가 일반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관계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일정 부분 대면 근무, 현장 교육이 여전히 불가피하다고 안심시켜 준다. 실시간 동일 공간이 아니면 성립되지 않는다는 기발한 권력 질서 원리를 소개하면서 학교, 종교, 기업 등을 예로 들어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사람을 모아서 한 방향을 바라보게 하면 그 시선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창출된다. 68페이지


책에서 제안한 위성 사무실 시스템은 지역별로 거점 사무 공간을 마련해서 대면 근무와 재택근무의 장단점을 타협한 모델이다. 직원의 거주 지역에 소규모 사무 공간을 제공해서 다중 근무로 인한 코로나 위험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출퇴근 시간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이 아이디어는 감염병 예방의 물리적 효과뿐 아니라 조직의 수직적 계열 구조를 실무자 중심으로 수평화하는 조직 개선의 이점까지 기대할 수 있지만 이게 되레 실천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도시화가 90% 이상 진행된 나라다. 저자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장기화하더라도 도시는 해체되지 않는다고 장담한다. 결국 뉴욕 같은 고밀한 대도시가 계속 세계를 리드한다는 주장이다.


인류의 많은 창의적 생각과 물건들은 모두 도시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에 의해서 발명되고 만들어졌다. 인구가 2배 늘어나면 특허 출원 건수가 2.15배로 뛴다고 한다. 인구의 규모가 커질수록 도시가 더욱 창의적으로 되어 간다. 215 페이지


도요타 자동차가 시도하고 있다는 자율 주행 전용 지하 물류 터널의 제안도 참신하다. 1킬로그램 피자를 배달하기 위해 60 킬로그램 사람이 100 킬로그램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대신 10킬로그램 자율 로봇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엄청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코로나로 증가한(할) 물류 수요를 소화하기 위한 대응책이 될 수 있지만 구현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부동산 문제를 임대 주택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면서 ‘인간이 무소유 하도록 정신을 개조하려는 시도는 석가모니부터 최근의 법정 스님까지 수천 년간 여러 종교와 철학에서 시도해왔지만 실패했다.’라는 저자의 역설이 익살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원의 소모를 줄이는 공유 경제가 현명한 소비를 실천하는 지속 가능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상상력은 끝이 없다.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DMZ에 에지 시티를 건설하자는 제안은 신박하다 못해 비현실적으로도 들리지만 ‘미래는 꿈꾸는 자들이 만든다’라는 인용이 뜨끔해서 입을 다문다.


책 내용 중에 절과 교회의 예식 차이를 농경·산업 사회의 시간관념으로 견준다든지, 종교 지도자의 복장을 낭비적으로 보는 시각이 좀 아슬아슬하기는 하다. 그리고 온돌로 인한 단층 위주 주거 건물 때문에 우리나라 근대화가 늦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섭섭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건축가의 해박한 소양에 대해 새삼스레 감탄하면서도, 누구에게나 우리 사회의 문제를 개선하는데 ( 정도와 능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정한 역할을 할 '공간'은 열려있다는 자극을 받게 된다.


코로나가 야기한 불행 중에 인간이 둘 수 있는 최악의 수는 서로 분열(disunity) 하는 겁니다. 국가들끼리 서로 돕지 않고 필요한 정보도 공유하지 않으며 각자 갈 길을 가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습니다. 신뢰의 부족도 문제인데, 비단 정부나 국가 사이에 신뢰가 부족한 것뿐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믿지 못하고 경계하는 끝에 반목하게 되는 상황이 올까 가장 걱정됩니다.   유발 하라리


매거진의 이전글 얄타 협정의 교훈은 지금도 유효하다, 몹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