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

by 영감
photo-1431540015161-0bf868a2d407.jpg?type=w1 © bchild311, 출처 Unsplash


한국 회사의 회식 자리에서 참석자들이 자기 자리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 어떤 서양 사람이 감탄을 하더란다. 식탁에 이름표를 붙여놓은 것도 아닌데, 서열이 낮을수록 상석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는 원칙에 입각해서 각자 앉을자리를 정하는 과정이 상당히 신속하고도 정확하더라는 얘기다.


회식이든 회의든 이 질서가 흔들리면 불편해한다. 자신의 지위에 비해 좌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면 불쾌하고, 반대로 너무 가깝게 자리하면 송구스럽다. 설사 참석자 중 서열이 2번이래도 최상급자의 위상과 단차가 크면 감히 그 옆으로 바싹 다가가지 못하고 가상의 차상급자 자리를 비워놓고 한자리 떨어져 앉는 경우까지 있다.


우리 사회도 이제 수평 조직을 표방한다고는 하지만 전통적 상하 구조에 익숙한 상층부가 조직의 통제력이 약해질까 주저하기 때문에 변화가 느리다.


수직적 조직이 명확한 계층 구조를 통해 조직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기는 해도 의사결정 속도가 느리고 조직 내 소통과 협업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서열을 기준으로 자리를 배치하는 방식이 발언의 빈도가 지위에 비례하는 권위주의 환경에는 적합하다. 하지만 의사결정 과정에 모든 구성원이 위아래 없이 머리를 맞대고 진솔하게 대화하는 활발한 소통은 기대하기 어렵다.



서열에 따라 자리를 결정하는 원칙이 역逆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거꾸로 권력자와의 물리적 거리에 의해 서열이 결정되어서 측근側近들이 세도를 부리는 경우를 말한다.


비서나 경호원과 같은 직책은 업무의 성격상 불가피하게 상전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경호실장처럼 통치자를 가까이서 '모시는' 측근이 공식적인 지위와 무관하게 실세가 되는 사례가 후진국에서 흔히 발생한다.


독재자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측근에게 의존하게 되고 그들은 이른바 문고리 권력이 되어 통치자의 주변을 봉쇄한다. 경호실장은 통치자의 신변 보호뿐만 아니라 정보 수집과 보안 유지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무한한 신뢰를 얻는다. 측근들은 자신이 섬기는 권력자의 비호 또는 묵인하에 정치에 관여하고 이권에 개입해서 국가의 질서를 어지럽힌다.


조선시대에도 왕의 측근들은 부당한 혜택을 누렸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전란 중 공을 세운 신하들에 대해 논공행상을 하면서 대부분의 공功을 측근 신하들에게 돌렸다. 선조를 호위해서 의주까지 따라갔던 신하들은 86 명씩이나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책봉하면서, 전공戰功을 세운 사람에게 주는 선무공신宣武功臣은 18명에 지나지 않았다.


호성공신에 내시, 말고삐를 잡거나 수레를 끄는 이마理馬 등 하급 관리들과 말을 치료하는 수의사까지 포함되었다. 목숨을 걸고 싸운 곽재우 의병장 같은 이들의 공을 임금의 측근들이 가로챈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공신 녹훈 과정에 대해 사관史官들도 한탄했다. 선조실록 1604년 6월 25일 기사에 '호종신(扈從臣)을 80여 명이나 녹훈(錄勳)하였고 그 가운데 미천한 복례(僕隷)들이 또 20여 명이나 되었으니, 또한 외람한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기록하고 있다.




누구나 자기를 지원하는 사람에게 고마워한다. 특히 가까이서 도와주는 사람에게 더 끌리는 이유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자신을 위한다는 느낌이 증폭되기 때문이다. 간병인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영화 속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측근의 도움에만 의지하면 다양한 시각과 아이디어를 못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공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은 상황과 관계의 특성을 고려해서 측근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경계하고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리적 조건이 권력을 잡는 수단이 되는 사회는 유치하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경호 책임자가 바뀌는 우리나라도 아직 정치 후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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