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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Jan 08. 2024

나의 군대, 아들의 군대

군대 얘기

지난해 가을 아들이 군대 갔습니다. 아이 군대 보낼 군번은 한참 지났는데 말입니다.


훈련소에 들어가는 날 입소식이라는 걸 하는데 학교 입학식 하는 거 마냥 가족들을 참관시키더군요. 식이 끝나면 가족들이 아이들을 남겨놓고 퇴장해서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게 입학식 하고 다르고요. 행사장을 빠져나오는데 등 뒤로 입소 장정들을 정렬시키는 지휘관의 짧아진 말투가 들립니다. 


한쪽에선 훈련병들에게 지급하는 의류 등속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군화가 무려 두 켤레에다 운동화, 외투가 한 보따리가 넘어요. 사관학교 생도 보급품으로 착각할 정도입니다. 육군은 공수부대 같은 베레모를 쓰고 군복은 미군 전투복처럼 좀 있어 보이는데 무엇보다 요즘 우리 군인들이 흘미끈 해요.  


입소식 하기 전에 가족들이 어디들 가서 맥주, 컵 라면 따위를 한두 상자씩 껴안고 와요. 부대 피엑스를 털었다는데 시중보다 싼 지 흡족한 표정입니다. 아이 군대 보내는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달래나 봅니다. 


무슨 앱을 설치하면 훈련 기간 중에 부대에서 공지 사항이나 훈련병들 사진을 올려줘요. 주말에는 생활관 별로 스마트폰 통화 가능 시간을 지정해서 알려주는데 부모들이 간절하게 기다리는 정보이지요. 훈련 끝나고 자대에 가면 일과 후나 주말엔 언제나 통화나 문자가 가능합니다. 


몇 주 후에 훈련 끝나고 수료식 한다고 해서 다시 갔더니 마치 소위 임관하는 것처럼 가족들이 이등병 계급장과 군번줄을 달아주는데 좀 간지럽더라고요. 


© 견자단, 출처


자연히 나 군대 갈 때가 생각났습니다. 세월이 꽤나 흐른 데다 사람들 사는 것도 확 달라지고 특히 복무 기간이 크게 단축되어서 비교하는 게 의미 없기는 합니다. 


나는 본적지 근방 어느 학교 운동장에 모인 다음 군용 열차에 태워져 훈련소로 갔습니다. 그때는 각자 훈련소로 직행하기엔 교통이 불편하고 해서 중간에 모아서 데려간 거 같아요. 논산으로 향하는 내내  몇 시간 동안 열차 칸에서 머리를 숙이고 있었던 게 기억나요. 훈련소 위치가 뭐 대단한 군사 기밀이라도 된다고... 왜 고개를 못 들게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가지만 끌려간다는 사실 하나는 정확하게 실감하게 해 주데요. 


훈련소에 들어간 다음 날, 조교가 '니네 몇 놈은 땅에 묻어도 아무도 모른다'라고 겁을 주는데 허풍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어요. 밥 먹는 시간을 짧게 주는 건 부대의 식당 시설이 부족해서 그랬다 쳐도, 밥을(정량보다) 적게 준 건 아주 잘 못된 일입니다. 아직 나라의 식량을 완전하게 자급하지 못할 때였지만 군량軍糧은 우선적으로 할당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병사들 먹일 양식을 뒤로 빼 돌렸다면 반역죄나 다름없지 않을까요?


훈련소 피엑스에선 부라보콘(그때는 메도골드라고 부름)과 크림빵이 인기 있었고요. 배도 고팠지만 떠나온 사회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는 역할을 한 거 같아요. 지금도 그때 그 사람들 수퍼에 가면 크림빵 앞을 그냥 못 지나가지요. 


아들의 군대 생활 얘기 들으면서 '군대 좋아졌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자제합니다. 상대가 공감하지 못하는 감탄을 반복하는 것도 꼰대의 특징이니까요. 사실 군대 좋아졌다는 말은 내가 입대했을 때도 들었어요. '라떼는 말이야'의 원조 격이지요. 


아무튼 남자들이 군대 얘기 지겹게 되풀이하는 이유는 젊어서 겪은 충격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심하면 트라우마가 되기도 하고요. 나는 지금도 입대했던 1월 말이 되면 가끔 그때 바람 냄새가 코 끝에 스치는 착각을 하면서 기억과 감정이 되살아나곤 합니다.


정녕 다행인 건 군대에 가혹행위가 대폭 줄었다는 사실입니다. 고참이라고 불리는 선임병들의 구타와 괴롭힘이 군대 생활을 힘들게 했고 견디다 못해 탈영으로 이어지기도 했어요. 폐쇄된 내무반 (생활관)에서 군대의 상명하복 질서를 악용해서 자행되었던 병사 간의 폭력은 그걸 방관한 군 간부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당연한 거지만, 규정에 분대장을 제외한 병 상호 간에는 명령 지시 간섭을 금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병사들의 사기와 전투력을 떨어뜨리는 서열(=짬) 관행은 문화나 필요악도 아니고 경제 수준과도 무관합니다. 이제라도 시정되어서 다행이고 근절돼야 합니다. 


군대 생활은 고된 훈련과 엄한 규율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제한된 자유로 인해 이미 고단합니다. 그럴수록 그들을 배려하고 불필요한 속박은 풀어줘야 전장에 나가서도 오히려 더 잘 싸웁니다. 쫄(졸)병들은 풀어주면 사고친다고 크리스마스이브 새벽 두 시에 빤스 바람으로 연병장에 집합시키는 짓은 이제 안 하겠지요. 


병사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그릇된 인식도 개선되야겠습니다. 국토방위를 위해 징집되어 젊음을 희생하고 있는 청춘들에게 특별 대우는 못할망정 대충 말이나 놓으면서 하층민 취급하는 사회는 미련합니다. 병사들도 자기들끼리 서로 존중해야지 밖에서도 쉽게 못 봅니다. 




훈련소 수료식을 마치고 나서 훈련병들에게 오후 몇 시간 정도 가족 동반 외출을 허락해 주더군요. 아이를 조용한 공간에서 쉬게 해 주려고 부대 근방 공립 야영장에 있는 실내 숙소를 예약했어요. 입실이 3시로 되어있길래 야영장에 전화해서 훈련병 외출 시간 사정을 설명하고 좀 일찍 들어갈 수 있냐고 했더니 숙소 청소 때문에 안 된답니다. 청소 먼저 끝낸 방으로 1시쯤이라도 배정해 주면 몇 시간 머물다가 나가겠다고 간청해도 막무가내입니다. 규정이 그렇다는데 할 말은 없지요. 예약을 포기하면서 야속한 마음에, 야영장 직원의 형부 친구가 부탁해도 안된다고 했을까 하는 별 쓸데없는 상상을 했습니다. 아이가 훈련받은 부대 정문엔 'ooo도 지킴이' 간판이 커다랗게 붙어 있고, 그 야영장은 ooo도 도청에서 운영하는 시설이었습니다. 올해부터 공립 야영장 입실 시간을 2시로 앞당긴다고 뉴스에 나오더군요. 


보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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