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시청 앞에서 60 대 운전자가 일으킨 사고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습니다.
노인이 운전한 차가 사고를 내면 언론은 가해 차 운전자의 나이 대代를 강조해서 뉴스 가치를 끌어올립니다. 사고 원인이 고령이라고 암시하는 거죠. 미국에서 흑인이나 소수 민족 출신이 부정적인 사건에 연루될 때 출신 민족을 밝혀 편견을 조장하는 세태와 비슷해요. 언론이 불합리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공론화시켜 사회적 합의를 촉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만, 태생적으로 논란을 부추기고 감성에 호소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런 사고 기사가 뜰 때마다 효과적인 해법을 내놓으라는 국민적 요구가 빗발치면서 그렇고 그런 방안과 반론이 난무합니다. 여론은 면허증 자진 반납이나 면허 갱신 규제 강화처럼 노인의 운전을 포기시키는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노인의 운전은 위험하다.'라고 단정하는 주류 집단의 막연한 공포를 짐작합니다. 운전하는 노인을 무책임하고 자기중심적인 길 위의 괴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요.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심리적 방어 기제가 작동합니다
65세 이상 노인이 내는 교통사고 비율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노인 운전자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습니다. 한국이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감자'는 식지 않고 점점 더 커질게 분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정년이 지난 노인은 노동시장의 바깥으로 모셔지면서 '경로효친'의 대상이 됩니다. 보호 대상인 노인이 어느 날 사회적 위험 요소로 변신하는 상황에서 일반 대중은 배신감과 함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노인 혐오를 상징하는 단면이기도 하지요.
'해 드리는 진지나 자시고 집에서 손주나 돌보지 뭐 하러 차 끌고 나와 위험을 자초하시냐' 는 짜증은 노인의 공간과 역할을 한정하는 당돌한 '금족령'입니다. 한때 대표 여자 운전자 '김여사'에게 쏟아졌던 '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는 야유와 묘하게 닮았어요.
그런데 상황이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장애인 운전에 대해서는 비난은 물론 문제 제기나 우려가 거의 없더라고요. 장애인의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따뜻한 시각이 형성된 것 아닐까요?
노인들에게 이동은 생계와 동등한 가치를 가집니다. 인간은 움직일 동動, 동물이니까요. 움직일 권리 즉 이동권은 경제 활동 여부와 관계없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사회적 고립은 노인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게다가 농촌의 대중교통은 점점 열악해지고 도로엔 인도가 없어 걸어 다니기도 위험합니다. 자식들이 도시로 나간 노인들은 장 보기, 병원 방문, 행사 참가 등을 위한 이동을 개인 차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일 삼아 즐기는 운전이 아닌, 이동을 위한 절박한 선택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몇 푼 쥐여주고 노인으로부터 운전면허를 반납받는 방안이 나름 현실적인 해결책 같아 보이기는 합니다만, 혹시 노후 경유 차량 조기 폐차 시키듯 사회에 '걸리적거리는' 집단을 격리시키는 발상이 아닌가 하는 무서운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노인 운전에 대한 대응 방식은 우리 사회가 취약한 존재들을 여하히 대하는지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만일 당국이 '안전'으로 포장된 명분으로 노인을 도로에서 몰아내고 싶다면, 교통사고로 희생당하는 노인 사고도 동일한 명분과 동일한 강도를 적용해서 살펴줘야 합니다. 교통사고 사망자 중에 노인이 절반이랍니다. 노인 10만 명 당 보행 중 사망사고는 7.7명으로 1.9명인 OECD 국가 평균보다 4.1배 많다고 하고요.
노인 운전자를 잠정 가해자로만 인식하고 획일적인 규제로 접근하면 특정 계층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다른 이유로 또 다른 사회적 약자가 사회 참여의 기회에서 배제되는 빌미가 될 수도 있고요. 결국 사회 전체의 연대를 깨뜨리고 우리 모두에게 불안한 미래를 가져다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