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조건
내게는 도저히 실감이 안 나는 두 가지 현실이 있다.
하나는 내가 노인이 되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 대국 10위 권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어느새 나는 부자 나라에 사는 노인이 되어있다.
1965년도에 미화 100불이 조금 넘었던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이제 3만 5천 불에 달한다고 한다. 내가 늙은 건 자연의 섭리지만 한국의 도약은 국제 사회에서도 유례가 드문 기적 같은 일이다.
눈부신 한국 경제 성장의 비결을 물으면 사람들은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 계획, 기업가 정신과 혁신, 높은 교육열과 우수한 인적 자원 등 여러 가설을 제시한다. 모두 일리가 있지만 어느 하나만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이 모든 퍼즐 조각들이 한 시기에 맞아떨어져 하나의 그림을 이루었다면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어떤 신비한 힘이 작용한 건 아닐까?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 1절에 답이 있다(라고 나는 상상한다.).
'높은 생활 수준뿐 아니라 안정적인 정치 시스템, 그리고 정신적 풍요를 충족해야' 지속 가능한 선진국이라고 정의한다면, 한국은 아직 선진국이 아니다. 경제 번영이 선진국의 충분조건까지는 아니다. 중동 산유국이 선진국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요즘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1970년대 고개 숙인 군상의 그늘이 없다. 대신, 다들 뭔가 한몫 잡아야겠다는 긴장한 낯빛이 번득인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부단히 경쟁하고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싶은 갈망이 우리 사회를 가동하는 관성이 되었다. 이 강박이 자주 우리를 초조하게 만들고 여유와 품격을 잃게 하기도 한다. 뷔페식당에서 접시에 음식을 수북이 쌓아놓고도 뭔가 더 담으려고 두리번거리는 초조함과 비슷하다. 배는 이미 부른데, 마음은 여전히 허기지다.
우리는 너무 빨리 달려왔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가치를 놓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경제적·문화적 성장을 이룬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진정한 가치를 되찾고 성숙할 수 있는 기회다.
정신적 풍요는 글로벌 시민 의식과 국제 사회에 기여하는 여유로 이어진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국제 사회에서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나라가 될 때, 대한민국은 비로소 선진국 소리를 들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보우'하면서 그 길을 열어가야 한다.
하느님도 바쁘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