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계획 짜느라고 사업을 중단해?

일단 뛰면서 생각하자

by 영감

기업들은 연말이 다가오면서 다음 해 사업 계획을 마무리하느라 바빠진다. 이미 7, 8월부터 작업에 들어가는 회사도 있는데 여름휴가가 긴 유럽 회사들은 아예 6월에 기초가 되는 전략 수정안을 만들어 현업에 뿌린다. 이와 별도로 5개년, 10개년 등 대개 5 배수 년 단위의 장기 계획이 '글로벌', '비전', '혁신' 등의 간판을 달고 이미 완행열차처럼 굴러가고 있다. 그러니 길게는 10년 전에 짜 놓은 장기 전략을 바탕으로 / 올해 상반기 시장 상황을 반영하여 / 내년도 사업 계획을 세우는 격이다, 그것도 연중 가장 바쁜 4사 분기에.




판매 조직에서는 연간 매출 계획을 가지고 비용 예산을 짠다. 업계나 조직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적인 연 매출 예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월별, 제품별... 각종 '별별'로 나누고 쪼개서 (分+析) 물량을 산출하고 매출액을 예상한다. 물량 예측은 자체 판단보다 거래처의 구매계획을 물어보면 근사하게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거래처는 다음 달도 모르는 판에 내년 꺼를 무슨 수로 아느냐고 짜증 내기 일쑤다. 거기다 위에서 내려온 목표 물량도 고려해야 한다. 대충 물량이나 액수를 추정해서 잡으면 좋을 텐데 이미 엑셀 시트에 촘촘하게 박혀있는 각종 양식을 빠져나갈 수가 없다. 말단의 실무자는 결국 늦은 밤에 하품을 해가며, 가상의 수치를 가지고 이리저리 꿰어 맞추어 소설을 쓰게 된다. 앞뒤 줄거리가 충돌하거나 위에서 내려온 목표와 차질이 생기면 (= 소설이 재미없으면) 수치를 '마사지'하든지 역으로 '뚜드려 맞추'든지 해서 좌우간 최종 시나리오에 도달해야 한다. 자료를 홀라당 뒤집어엎는 이 작업은 시간도 걸리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끼여 맞추기 식 계산 놀음에 작성자는 양심의 가책까지 받는다.


이렇게 만든 매출 계획은 뒤따르는 원가, 비용 계획의 근거가 된다. 일부 창작한 숫자에 연동하여, 다시 '정밀한' 예산을 편성하는 거다. 예를 들면 주행거리가 대충 100 마일이라고 하니까 160.9344 kM이라고 환산해놓고 시작하는 꼴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위에서 강림한 목표 손익이 안 맞으면 잘할 때까지 '똥개 훈련'을 되풀이한다. 방대한 자료를 기한 내에 만들려면 밤샘이 불가피하다. 급기야는 주객이 바뀌어 본업은 제쳐두고 계획 수립에만 매달린다. 해마다 사업 계획의 '창작'을 위해서 사업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사업 계획은 다른 업무 지연의 '합법적인' 사유로 전사적으로 용인된다.


그런데 몇 달 동안 열일 미뤄가며 만든 계획에 실행 첫 달인 새해 1월부터 차질이 발생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계획 잘 짜라고 시장이 몇 달 동안 제자리에서 기다려 주지 않는다. 도낏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앉아서 탁상공론하는 동안 사업은 축난다. 달이 갈수록 계획 대비 실행의 차이는 더 벌어지고 맞으면 우연이다.




사업 계획은 필요하지만. 문제는 계획 수립의 경제성과 시장의 빠른 변화다. 투자 대비 그 효과를 따져 보고 남는 장사가 아니면 대안을 찾는 게 사업의 기본이다. 작년까지 했으니 올해도..를 ' 어제의 비용'이라고 부른다. 본시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은 꼼꼼히 앉아서 궁리하고 분석하는 것보다 신속한 실행 (밀어 부침)에 있다.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우리처럼 생각에 앞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유리하다(약간만). 천지가 개벽하는 데 무얼 안다고 일 년 뒤를 정밀 설계하나? 스타트 업은 이런 걸 안 하니 빨리 일어설 수 있는데, 회사가 좀 크면 그 사람들도 이 놀음을 시작한다. '경영자'가 생긴 거다. 보고서의 수는 경영진 수의 자승에 비례한다.


창고의 실물 재고를 장부와 비교해서 자산을 재 평가하기 위해서 매년 재고조사를 실시한다. 정밀하고 투명한 조사를 위해 원칙적으론 창고 종사자가 아닌 인원이 며칠씩 창고를 닫아걸고 실물을 헤아린다. 물건을 못 내주니 영업은 중단이다. 요사이는 연말에 몰아서 재고조사를 하는 대신, 평소에 재고 품목을 돌아가며 조금씩 나누어 조사하는 방법도 쓴다. 영업을 중단하지 않고도 재고를 정확하게 조사하고 또한 재고 차이의 원인도 쉽게 찾아낸다. 수시 순환 재고조사 기법이다.


사업 계획을 왜 꼭 연간 주기로 수립해야 하나? 2 년마다, 6 개월마다 하면 왜 안 될까. 세상이 바뀌었는데 연간 계획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외적으로 공시나 주주총회 등에 필요한 자료라면 이렇게 많은 인력을 낭비하지 하지 않고도 방법이 있을 거다. 위에서 인용한 수시 순환 재고조사처럼 평소에 전략 수정을 해나가고 그에 따른 매출 계획도 차후 1 년을 연속적으로 수정해나가면 어떨까? 일상 업무에 충격도 덜 주면서 시장 환경의 변화에도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는지.



계문자 삼사이 후행 자문지 왈 재 사가의 季文子三思而後行子聞之 曰, 再斯可矣.
계문자(노나라 대부 )가 세 번 생각한 후에야 행동했다. 공자께서 이 말을 듣고 말씀하셨다. 두 번이면 된다. 논어 공야장 편 / 낭송 논어 (김수경외)

실천에 옮기기 전에 너무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며 망설이지 말라는 공자의 현실적인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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