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을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인내와 애정을 갖고 접근해 보세요.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가 요약한 마케팅 3C 에도 당연히 고객이 포함되어 있다( 고객 customer, 자사 company, 경쟁사 competitor). '고객,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마케팅의 첫째 질문에 대한 답은 계속 바뀐다. 앞서가는 회사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미리 알아낸다. 마차가 불편하니 자동차라는 걸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 고객은 없었다. 그런 것의 필요함을 예상한 발명가나 기업가가 있을 뿐이다. 이미 1990년 이전에 휴대용 전화나 컴퓨터, 즉 휴대폰 기술에 대해서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얘기들은 분분했다. 필자 기억에 당시 화두는 컴퓨터와 전화를 결합하되 둘 중에 어느 쪽을 위주로 개발하느냐였다. 컴퓨터에 전화기를 달지, 아니면 전화기에다 컴퓨터를 붙일지를 가지고 갑론을박했다. 그들은 더 중요한 것을 간과했다. 애플이 개발한 아이폰은 컴퓨터나 전화기가 아닌 바로 소비자 (user) 위주의 휴대폰이었다. 사람들은 아이폰의 기반이 전화기인지 컴퓨터인지 알지도 못하고 따지지도 않는다.
고객은 거만하다. 무얼 원하는지 똑 부러지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식당에 가서 '아무거나' 할 때는 뭐든지 먹겠다는 게 아니고 자기도 뭘 먹고 싶은지 모른다는 말이다. 설렁탕인지 비빔밥인지 선택을 구체적으로 다그쳐 물어야지 고객은 입을 뗀다. 고객의 가치를 '창출한다'보다는 고객의 욕구를 '발굴한다'가 더 적절한 마케팅의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 욕구가 까다롭고, 변덕스럽고, 말도 안 된다고 외면하는 공감능력 결핍증 경영자에게 제안한다.
고객을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인내와 애정을 갖고 접근해 보세요, 달래 보세요!
그 순간 고객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워짐을 경험할 것이다. 왜냐하면 고객의 특성이 아이와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자기중심적이다 :
자기가 필요한 것만 얘기하고 그걸 충족시키는데 들어가는 노력과 비용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업체 간 (B to B) 거래를 새로 시작할 때 신용거래를 고집하는 고객이 많다. 외상을 달라는 거다. 상대방 평판이 좋고 재정이 튼튼하면 한두 달 어음 받고 내줄 수 있다. 그러나 거래 경험이 없고 신용상태가 깜깜이인 무명업체와 처음부터 섣불리 신용거래를 틀 수는 없다. 그러면 고객은, 자기네는 거래처로부터 3-4 개월 후에나 돈이 들어오는데 지금 줄 현금이 어디 있냐고 버틴다. 그렇다고 면전에서 그건 당신 사정이고 언제 봤다고 외상을 주냐고 매몰차게 거절할 수가 없다. 그러다 들어주면 불행의 씨앗이 되곤 한다. 공급자는 최소 몇 달 분의 신용 위험을 항상 안고 간다. 어렵더라도 거래 초기에 회사의 정책을 성실하게 설명해서 설득하고, 가격을 깎아주든지 다른 걸로 달래면 풀어지기도 한다. 고객도 아이들처럼 우리 하기 나름이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 :
'막 썰어 횟집'이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횟집 주인이 생선을 어리숙하게 썰어 정량보다 많은 회를 얹어주는 엉큼한 행운을 상상하게 만든다. 주인이 '막 썰어' 주는 푸짐한 양은 이미 원가에 계산되어 있다.
상반된 경우를 보자. 식당에 가서 설렁탕을 시켰더니 깍두기는 따로 천 원을 내고 사 먹어야 한다 라고 가정해보자. 말이 되냐며 야박하다고 화를 낼게 뻔하다. 그런데 그 식당은 깍두기를 안 준다는 게 아니고, 돈을 내고 사 먹으라는 거다. 대부분의 식당은 설렁탕을 시키면 밑반찬과 함께 깍두기와 배추김치 두세 가지가 무한 리필로 딸려 나온다. 그러나 김치 재료의 원산지가 벽에 붙어있을 뿐, 메뉴판에 김치 깍두기를 곁들여 준다고 약속한 적은 없다. 이 사태를 무마시키는 방법은 깍두기를 국내산 유기농 무와 고춧가루, 신안에서 온 천일염으로 담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중국산 배추김치는 종전대로 공짜로 주겠다고 설득하는 것이다.
'더 적음'이 초래할 수 있는 고객의 불만을, 새로운 상위 가치로 덮어서 해결한다. 김치나 밑반찬도 분명히 원가가 들어가고, 본론인 설렁탕의 가치를 구현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비용은 설렁탕 값에 이미 들어가 있다. 조삼모사다. 양식의 샐러드처럼 깍두기도 선택사양으로 떼어내 유료화함으로써 소비자가 그 가치를 재인식하게 하고 식당도 그 품질에 더 신경을 쓰면 서로가 좋다. 공짜라고 해서 수북이 가져다 놓고 일어서는 손님도 줄어든다.
미국 국내선 비행기 일반석에서는 알코올 음료가 유료다. 처음엔 떨떠름하지만 2달러를 내고 사 마시면 맥주 맛이 왠지 다르다. 고객이 '더' 요구하는 가치를 제공하되 대가를 기꺼이 내게 하는 것이 기술이다. 서비스는 공짜라는 인식이 바뀌면 서비스의 질도 올라간다.
싱가포르 창이 공항 식당에서 테이블 위에 있는 물휴지 (물티슈)를 한 장 썼는데 계산서에 포함되어 있었다. 끝내 안 줬다. 내가 동의하지 않은 유료 서비스는 논외다.
저마다 다른 것을 원한다 :
전엔 식당에 네 명이 가서 각각 김치찌개, 된장찌개, 냉면, 비빔밥을 시키면 종업원의 입이 나왔다. 처음 사람이 '난 김치찌개'하고 선언하면 줄줄이 '나도 김치찌개'를 복창했다. 우리말이 서투른 외국인이 들으면, 먹으려는 음식과 나를 동격으로 만들어 버리는 어법에 황당했을 법하다. 한편 서양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고 나면 대단한 일이라도 해치운 듯 성취감에 그때야 허기가 진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고른 메뉴를 손가락으로 찍어서 가리키고 나면 그때부터 식당 종업원의 역공이 시작된다. 감자 아니면 양파 튀김을 곁들일 건지, 샐러드에는 어떤 소스를 부을까요, 고기를 얼마나 굽는지 등등.. 그냥 알아서 가져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다.
생산자 입장에서 다품종 소량 생산은 단품 양산에 비해 번거롭고 단위 당 비용도 올라가지만 고객 만족도도 올라간다. 그 만족에 대한 대가를 값에 포함하면 된다. 획일적인 대량 생산라인에다 고객의 요구를 뚜드려 맞춰 놓고 싼 가격을 내세우는 건 후진적이다. 가지각색의 고객의 요구를 다 받아주고 그만큼 더 받으면 된다.
관심과 정성을 원한다 :
휴일에 사무실에 나갔다가 전화를 당겨 받으면 다짜고짜 '지난번 하고 같은 걸로 보내달라'라는 주문 전화를 받는 수가 있다. 우리 회사의 유능한 고객 주문 담당 ㄴ 과장 같으면 대번에 '예 사장님 알았습니다' 할 것이지만, 나는 난감하다. 고객은 우리 거래처가 자기 혼자뿐이고, 휴일 관계없이, 자기네 전화만 기다리고 있는 줄 안다고 여기면 편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대리점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를 그 사장보다 더 잘 알고 있어야 대화가 매끄럽다. 고객의 입장에서 자기 쪽의 사정을 꿰고 있는 공급자를 바꾸려면 상당한 불편과 차질을 감수해야 하므로 웬만한 문제가 아니면 계속 간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경영자나 중역이 직접 나서서 관심을 보이는 게 사태 수습에 유리하다. 특히 서양에서는 상대방 거래처의 중역이 성실한 계약 이행과 문제 발생 시 개인적인 관여를 직접 다짐 ( commit) 하면 점수를 후하게 준다. 물론 약속은 지켜야 한다.
공정하지 않아요 :
미국에서 살 때 아이들은 꺼떡 하면 '불 공정해 It's not fair!'라고 하며 투정을 부렸다. 먹기 싫어하는 걸 강요하면 '왜 누나만 안 먹어?'라는 혼란스러운 어법으로 엄마 아버지를 비난하였다. 맘대로 하지 못하는 불만을 공정-불공정의 프레임으로 몰고 갔다. 지네들은 더 불공정했다. 카드놀이를 하다 자기한테 결정적으로 불리해지면 내 패를 쓰지 말라고 강요했다. 내가 그대로 실력행사를 해서 게임을 끝내면, '아버지는 내가 싫으냐' 라며 비정한 부모로 매도하면서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구매 물량 등을 고려해서 고객별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는 건 상업적이고 상식적이다. 그러나 고객은 어찌 되었든 다른 고객 ( 특히 자기의 경쟁사 ) 보다 조건이 불리하면 불공정하고 편파적이라고 불평한다. 섭섭하다고 소주 몇 잔 마시고 우는 거래처 사장도 보았다. (공정과 평등은 사회 도처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 경우 당신네 물량이 적어서 값을 올렸다고 하면 분위기가 장중해진다. 같은 말이래도 다른 고객사의 물량이 많아서 절약된 관리 비용을 돌려주는 개념이라고 설명하는 게 무난하다.
아이들은 어느 경우에나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고객 간에 거래 이력과 전망 등을 고려해 거래 조건을 차별하는 건 불가피하다. 차별에 대한 어감을 순화하여 차등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주요 고객(key account)은 아예 따로 관리하는 것도 괜찮다. 단순히 고객사와의 거래 규모뿐 아니라 이력, 대표의 성향, 재무 상태, 상호 간 사업 의존도, 성장 잠재력, 제품 구성, 시장점유율, 기여 이익, 인적자원 등 여러 가지 항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주요 고객'을 선정한다. 일단 선정된 고객사는 다른 보통 고객들과는 차원이 다른 전략적 파트너로서 대우한다. 예를 들면 제품 개발 정보나 중장기 전략에 주요 고객사의 요구 사항을 반영하고 그 진행사항을 공유한다. 역으로 주요 고객에도 업계 시장 정보 공유, 경쟁사 거래 제한 등 일정한 역할과 의무를 요구할 수 있다.
이러한 제휴에 포함되지 않은 보통 고객사들이 시샘하여 반발하는 데 대한 현명한 대응도 필요하다. 취지와 기준의 일부를 공개하고 보통 고객도 기준을 충족하면 나중에라도 이 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혀, 오해를 자극으로 전환시키면 금상첨화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비난은 감수해야 한다.
참을성이 없다 :
새로 산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타고 사막을 가다 고장이 나서 메이커에 전화했더니 조금 있다 헬기가 똑같은 차를 싣고 와서 바꿔주고 갔다. 나중에 고맙다고 전화를 했더니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면서 롤스로이스는 고장 나지 않는다고 했다나... 하나 더, 가족이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는 리츠 칼튼 호텔에 묵었는데 가족 중에 한 아이가 음식 알레르기가 있어 특별 달걀과 우유를 준비해서 여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행 중에 그 특별식이 상했다. 호텔 매니저가 발리에서 구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허사, 그때 호텔 주방장이 싱가포르에서 그 달걀과 우유를 파는 것을 기억해 내고 거기 사는 자기 장모에게 긴급히 사서 발리로 직접 공수하게 했다고. 싱가포르-발리는 비행기로 2시간 반. 이런 믿거나 말거나 전설 같은 고객 감동 사례는 많다. 대개 그 공통점은 신속함과 기대 이상이다. 환상적 서비스는 어쩌다 이벤트 개념으로는 몰라도 상례화 하는 건 비용이 많이 든다.
고객들은 문제 발생 시 기대보다 조금만 빨리 반응해 주어도 고마워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이 기대하는 '빨리'가 국제 평균보다 많이 조급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면 그곳의 느린 서비스에 실망할 때가 있다. 어느 나라는 커튼을 하나 다는 데도 2주를 기다려야 하고, 여권 신청하면 공식적으로는 6주에서 8주, 급행으로 해도 2-3 주다. 고객은 기대를 넘어설 때 감동하고 그중에 신속한 서비스가 감동의 단골 항목이다. 고객은 또 감동받은 서비스를 나서서 홍보해주는 습관이 있다. 승산 있는 전략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대체적으로 한국의 고객들이 까다롭고 요구하는 바가 크다. 외국 가전업체가 한국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그렇다. 서비스로 승패가 갈릴 수 있다.
고객 서비스를 추가하거나 강화하면 고객들로부터 환영은 받지만 비용이 발생한다. 따라서 고객들이 골고루 감사할 서비스인지, 아니면 특정 부류의 고객에게만 가는 혜택인지를 살펴서 서비스의 타당성을 결정한다.
이에 따르는 비용을 1) 이익의 감소로 흡수 또는 2) 가격에 반영하여 충당, 아니면 이상적이지만, 3) 서비스 향상 덕분에 늘어난 매출에 의한 이익 증가분으로 환수할지를 계획 단계에서 판단해야 한다. 고객이 우선이지만 고객 서비스를 검토하는 과정에서는 비용 대비 유무형의 효과를 시뮬레이션해서 신중하게 예측해야 한다.
역으로, 비용 대비 고객 반응이 별로이거나 현실적으로 유료화하기에 무리가 있는 무상 서비스는 축소할 수도 있다. 만일 10년 전에 식당에 가서 야채 좀 달라고 했는데 종업원이 직접 가져다 먹으라고 했다면 큰 소리 났을 거다. 지금은 말 안 해도 군말 없이 가서 주섬주섬 챙겨 온다. 학습의 효과다. 아이들은 사탕을 주었다 빼앗으면 울지만 잠시 후면 그친다. 고객도 교육하기 나름이다.
고객은 왕이지만 항상 왕을 기쁘게만 할 수는 없다. 때에 따라 왕의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충신이다. 고객의 욕을 감수하고라도 적정선을 지켜야 한다. 넘치면 덜고 모자라면 채우는 중용中庸의 도리가 여기서도 적용된다.
그런데 넘쳐도 좋은 서비스가 하나 있다. 경영자가 고객과 소통하는 거다. 만나기만 하면 무리한 요구를 해대는 진상 고객일수록, 경영자가 만나서 돌파구를 만들어주면 실무자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 (경륜 있는) 경영자의 말 한마디가 '천량 빚'을 해결한다. 경영자가 각양각색의 거래처와 격식 갖추어 교류하는 일이 피곤하긴 해도 잘만 하면 꽤 남는 일이다. 그래도 고객 전화를 피할 건가?
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 여자와 소인은 상대하기가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하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논어 양화陽貨편 / 낭송논어 ( 김수경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