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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보도국에 보낸 편지

by 영감

사진 : 아리랑 TV의 A.I. 앵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몇몇 TV 방송국에 보낸 편지를 공유합니다.




내가 TV 뉴스를 ‘끊은’ 이유


수십 년을 시청해 온 TV 뉴스를 안 본 지 이제 일 년이 넘었습니다. 더욱이 퇴직 후에는 이 방송 저 채널 돌려가며 TV 시사 프로에 하루 서너 시간씩 빠져 있었으니 '끊었다'라는 표현이 과장은 아닙니다. 금단 현상 안 나타난 게 다행이지요.


뉴스 매체가 소셜 미디어로 분산되면서 TV 뉴스 시청률이 떨어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제가 TV 뉴스 시청을 중단한 이유가 단지 그것만은 아닙니다.


지나치게 꾸미고 보여주는 데 치중한 진행 방식, 그리고 분별없는 언어 사용이 결국 TV 뉴스를 외면하게 된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TV 뉴스 프로그램의 과도한 꾸밈 사례 몇 가지를 들겠습니다. 하찮게 보이지만 사소하지는 않습니다. 귀 기관의 전문가들이 ‘별 걸 다 가지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오랜 세월 TV 뉴스를 소비해 온 '고객의 소리'로 거두어주기 바랍니다. 본 내용은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주요 방송사에 모두 해당합니다.


꾸밈


우리나라 TV 방송의 뉴스 제작진은 원활한 프로그램 진행에 각별하게 신경을 쓴다. 방송 도중에 벌어지는 돌발 상황을 '사고'라고 할 정도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각본에 따라 빈틈없이 흘러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 과정에서 뉴스 프로의 생명인 현장감이 다소 상실된다.


꾸밈 1: 앵커와 현장 기자의 불필요한 궁합


우리나라 TV 뉴스 프로에서 앵커와 기자 사이에 착착 맞아떨어지는 문답을 들으면 미리 말을 맞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앵커가 시작한 대화를 기자가 현장에서 일방적으로 끝내는 걸 봐도 그렇다.


기자는 본부의 보도 방침을 기반으로 현장에서 본 대로 들은 대로 ‘이야기’를 전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기자가 ‘이야기’를 원고로 옮기고, 사전 협의하고, 다시 읽느라 시간이 걸리고 신선도가 떨어진다.


이야기는 말이고 원고는 글이다. 한자어, 문어로 각을 잡아 문장으로 꾸며 놓으니 잘 외워지지 않고 전달력도 떨어진다.


TV 보도 제작에 참여한 간부가 뉴스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해서 진행하는 앵커 방식은 이미 1950년대에 미국의 거대 방송 네트워크인 CBS 등에서 채택되었다고 한다. 앵커가 국내외 현장의 취재기자를 실시간으로 연결하거나 전문가들을 수시로 불러서 보도 내용을 생동감 있게 완성해 가는 점이 방송 뉴스의 강점이다.


신문기자와 달리 방송기자는 양방향으로 통신한다. 앵커의 즉흥적인 질문에 기자의 답이 궁할 수 있지만 대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 및 정치 현안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TV 앞에 앉은 시청자에게는 매끄러운 진행보다 현장감 있는 상황 업데이트가 더 중요하다. 앵커와 기자가 미리 짜 놓은 대본대로 따라가다 보면 '연기'가 되고, 연기에는 연출이 필요하다. 뉴스는 연출하는 장르가 아니다. 그래서 뉴스 프로그램에서 ‘작가’니 ‘큐시트’니 하는 용어에 시청자들은 좀 의아하다,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이럴 바에야 뉴스 제작에 참여한 앵커가 프로그램까지 진행하는 방식에 부가가치가 별로 없습니다. 차라리 예전처럼 보도국에서 작성된 뉴스 원고를 아나운서가 읽는 편이 산만하지 않고 전달력을 높이지 않을까 합니다. 좀 더 생동감 있는 그림이 필요하면 뉴스 진행을 연기자에게 맡기는 편이 앵커의 판에 박힌 진행보다 깔끔하지 않을까요?



꾸밈 2: 앵커의 멋쩍은 양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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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중에 일어서서 브리핑하는 앵커나 기자를 자주 본다. 진행 방식에 변화를 주려는 노력으로 이해하지만 서 있는 출연자들의 손 처리가 사뭇 어색하다.


저마다 대문짝만 한 A4 크기의 서류나 얇은 소책자를 두 손에 꼭 쥐고 서 있는데 보도에 꼭 필요한 자료는 아닌듯하다. 어떤 이는 볼펜으로 두 손을 연결하고 서 있기도 한다. 손이 부자연스러워서 서류나 볼펜으로 양손을 묶고 방송하는 관행이 반칙은 아니지만 변칙이다. 손짓, 몸짓 등 비언어적 신호도 소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방송인은 이 분야에 전문가(이어야 한)다. 서류나 펜이 소품으로 쓰이는 방송 프로그램은 뉴스가 아니고 드라마다.


꾸밈 3: 그들만의 인사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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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와 기자와 대담을 끝내고 서로 허리 굽혀 인사하는 모습이 사뭇 정중하다. 두 사람의 수직적 위상 차이에 인사 각도가 연동되는 것 같다. 뉴스 프로 끝에도 남녀 앵커끼리 그냥 못 넘어가고 엉거주춤 고개를 까딱하기도 한다. 심지어 화면에 안 보이는 스태프들에게까지 인사하는 앵커도 보았다. 영화 촬영을 마친 주연 배우 같다.


매일 보는 동료들과 대화하고 나서 상견례하듯 인사하는 직장은 없다. 인사는 시청자에게만 하자.


시청자는 출연자들끼리의 인사치레에 관심이 없습니다. 혹시 방송업계의 질서가 특별하다면 화면 밖에서 처리하시고요. 대담자의 발언이 끝남과 동시에 화면에 앵커만 남아서 ‘아무개 수고했다’로 마무리하는 게 자연스럽고 시간도 절약될 듯합니다. 앉은 자세에서는 허리 숙이는 절 인사보다 말로만 하는 인사가 더 자연스럽습니다. 한 번 해보세요.


꾸밈 4: 일기예보가 연예 프로?


우리나라 방송 뉴스 말미에 나오는 일기예보는 대개 화려한 복장의 젊은 여성이 맡는다. 일기예보 해설자를 선발하는 기준이 전문성보다는 엔터테이너 소양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준비한 원고를 읽고 외우는 해설자의 말과 손동작이 따로 논다. 어설픈 춤을 추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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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시청자들이 이런 '보여주기' 위주의 방식을 선호한다고 (방송국에서) 핑계 댄다면 대중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 시민의 수준이 그렇게 ‘저렴’ 하지 않다.


미국 방송에선 일기예보 시간에 전문가가 나와서 자기 지식을 활용해서 정보를 '전달하는' 일에 집중한다. 임신한 해설자가 출연해서 예보를 진행해도 우리 방송보다 자연스럽다, 그리고 유익하다.


비 오는 날씨라고 비옷으로 갈아입고 방송하는 정성은, 내용을 숙지하고 전달하는 '알려주기'에 쏟는 게 생산적이다.

우리나라 TV 방송에도 임신 중인 기상 해설자가 출연하는 날이 올까요? 출산 장려에 언론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꾸밈 5: 보여주기 취재


검경의 압수수색 뉴스는 불편하지만 익숙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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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상자를 들고 나와 승합차 좌석에 꾸겨 넣는 수사관에게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댄다. 이제까지 수십 년 뉴스를 보면서 제대로 대꾸하는 수사관을 본 적이 없고 그럴 리도 만무하다.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라는 판에 박힌 한마디를 챙기려고 검찰청 현관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기자들을 보면 딱하다. 어차피 한마디 하려고 작심한 피의자의 변은 기다리지 않아도 들을 수 있다.


경찰서에서 끌려 나오면서 포악을 부리는 흉악범에게서 도대체 무슨 정보를 기대하고 경쟁적으로 마이크를 갖다 대는가?


그걸 뻔히 알면서 되풀이하는 이유가 만일,

1) 초보 기자의 훈련과정이라면 직원 교육 영상은 방송에 내보내지 마세요. 그게 아니고, 2) 혹시나 한 건件 건지려고 한다면 시간도 아깝고 기자도 아까워요. 눈먼 고기는 은퇴한 낚시꾼이나 기다립니다. 검경 압수수색이나 경찰서 앞의 범법자 같은 ‘보여주기’ 취재는 사진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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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국회 복도에 대기하다가 취재 대상이 나타나면 우르르 달려가서 턱 밑에 스마트폰 등을 치켜세우고 쪼그려 앉는다. 국회의원은 못 이기는 체하고 몇 마디 던진다. 익숙한 광경이다.


이미 발언할 준비가 되어있는 정치인들에게 긴급/잠복 취재라도 하듯이 몰려가는 모습이 진부하다. 밑에 쪼그리고 앉아 ‘받아치기’를 하는 기자는 듣기만 하겠다는 자세다. 기자는 묻는 게 우선이다.


즉흥적 회견인 경우에도, 복도에 스탠드 마이크를 설치해 놓고 그들이 스스로 다가와서 발언하도록 하면 어떨까요? 마이크를 피하는 인사는 어차피 몸 싸움하며 쫓아가 봤자 얻을 게 별로 없습니다. 같은 눈높이에서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기자의 실력이 나옵니다.

취재는 정식 회견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우리나라의 기자 회견은 비슷한 수준의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질적으로 양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의지만 있으면 언론이 바꿀 수 있습니다.

어쩌다 하는 기자 회견을 보면 종종 발표자보다 질문하는 기자가 더 긴장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직구를 날리던 중국계 미국 여기자가 생각납니다.


논어 팔일 편에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바탕을 먼저 갖추고 나서 채색하라는 뜻으로서 바탕이 꾸밈에 앞선다는 교훈이지요.


방송 뉴스 프로그램에 있어서 바탕에 해당하는 핵심가치가 '신뢰성 있는 정보의 신속한 전달'이라고 한다면 이 글에서 지적한 사례들은 본질을 훼손하는'꾸밈'에 해당합니다.


방송의 시각적 특성을 살리기 위해 약간의 치장은 용인되어도, 뉴스 프로그램을 '연출'이 주도한다면 본말전도의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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