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태地天泰 : 하늘이 밑에, 땅이 위에 있으면 태평성대
1997년 8월 6일 오전 1시 43분경 김포 공항 발 대한항공 801편이 괌 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중 언덕에 추락해 220여 명이 사망했다. 공항에서 보내주는 항법 보조 신호가 고장 난 데다 조종사 과실까지 불운하게 겹쳐서 생긴 대참사였다. 그런데 기자 출신 작가로 알려진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책 아웃라이어Outlier에서, 이 사고의 원인을 한국 사회의 상하 위계질서로 인한 소통의 부재라고 규정했다.
착륙하려고 고도를 낮추는 과정에서 기장은 위치를 착각하고 있었고, 조종실에서 함께 비행기를 몰고 있던 부기장과 기관사는 (이를 알면서도) '감히' 상사를 제지하지 못해 비극이 벌어졌다는 추정이다. 블랙박스에 기록된 추락 당시 세 조종사의 긴박했던 대화 기록을 보면 그 주장에 수긍이 간다. 기록에 의거 추측해본다. 충돌 7초 전부터 부기장과 기관사가 위험을 감지하고 '복행' (착륙 포기, go around)을 세 번이나 외쳤다. 기장은 고장 난 유도 장치만 보며 착륙을 강행하다 뒤늦게 복행에 동의하고 기수를 올려 보지만 2초 후에 니미츠 언덕에 부딪히고 만다. 지상에서 단 3 미터 여유만 있었어도 충돌을 모면할 수 있었다니 안타깝다. 우리나라 항공사의 추락 사고 중에 이와 유사한 경우가 몇 건 더 있다고 한다. 1999년 12월 런던에서 이륙 직후 추락한 대한항공 8509 편 화물기도 기장이 기관사의 경고를 계속 무시하고 급선회하다 추락한 걸로 추측한다. 기록에 의하면 옆에 부기장은 알면서도 차마 말을 못 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한항공 801편의 조종실에서는 220여 명의 생명이 걸린 중차대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경험을 가진 전문가 세 명이서 '복행'이라는 간단하고도 당연한 조치 하나를 적기에 실행하지 못했다. 부기장과 기관사가 착각하고 있는 기장과 똑 부러지게 소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종실을 지배하고 있던 권위주의가 상사의 치명적인 오류를 지적해야 하는 상식을 덮어버린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의 잠수함 영화를 보면 비슷한 상황에서 상황이 정반대로 전개된다. '또라이' 같은 함장이 승조원의 생명과 세계 평화를 위태롭게 만드는 명령을 고집한다. 이에 부함장이 함정에게 대들어 지휘권을 빼앗고 잠수함을 구한다. 이런 영화를 보면서 한국의 경영자들은 사태 수습에는 안도하면서도 부함장의 반란에 대해서는 약간 찜찜해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신의 권위가 도전받기라도 한 것처럼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우리나라 조직의 수직적 권위주의는 신분간 차별을 합리화하고 절대시 한 조선시대 성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 당시 국정철학의 근간이 된 성리학 이론과 좀 다른 생각을 입에 올렸다가는 학문을 어지럽히는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탄압당하기 일쑤였다. 지금 시대에도 우리 사회는 경직된 상하 질서로 인한 역작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개선이 더디다. 정치인이 당론과 엇갈린 소신을 밝히면 이적행위가 되고 온라인에서 몰매 맞는다. 대학에서 시험을 잘 보는 비결은 교수가 강의한 내용을 그대로 외우는 거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수업 중에 학생이 교수가 주장하는 이론과 어긋나는 질문을 하면 주위 학생들까지 지레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한다고 한다.
이런 일방통행식 소통은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사의 의견에 문제가 보여도, 읍소는 해보되 일단 상사가 고집부리면 접어야 한다. 여기서 부하가 끝끝내 우기면 ( =너무 나가면 ) 반발이 되고, 상사는 이런 거 잊지 않고 언젠가 해코지한다. 회의는 상사가 일방으로 지시사항을 생방송하는 기회다. 묵묵히 받아 적어야지 여기서 중간에 끼어들면 (어용 질문은 제외하고) 불경죄가 된다. 어느 유럽 회사의 임원 회의에서 사장이 얘기하는 중간에 임원들이 하도 말을 자르니까 사장이 '나도 얘기 좀 하자'라고 사정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지시사항만 전달하는 회의는 낭비다. 받아쓰기하려면 구태여 한자리 모일 필요가 있나? 어떤 회사는 사장이 사무실 복도를 뛰어다니면서 소리친다. 화가 난 게 아니고 전 직원에게 메시지 전달하는 방식이란다. 실제 영국의 어느 컴퓨터 회사 얘기다.
회의록은 한 사람이 만들면 되고요, 나머지 참석자들은 펜은 집어넣고 자기 생각을 기탄없이 꺼내 놓으세요! 그게 진정으로 밥값 하는 겁니다.
더욱이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상사의 비행이나 횡포는 차마 외부에 발설하지 못한다. 자기를 '건사해 준' 고마움이 밟혀 감옥에 끌려갈 망정 눈을 감아버리고, 목숨 바쳐 주군을 보호한 충절한 신하로 남는다.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건 수는 무수히 많은 데도) 내부고발이 극히 적은 것도 이런 비겁함을 의리로 미화하는 사회 분위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도리어 이런 부하를 키운 상사를 능력 있는 보스라고 치켜세우는 판이다. 참다못해 폭로하는 용기는 패륜으로 몰아간다. 이래저래 우리나라의 지도자들 '개판' 치기 참 쉽다.
경영자의 생각과 행동을 나라 법처럼 말단까지 일사불란하게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기업은 위험하고 경쟁력도 없다. 같은 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한 조직에 한 사람이면 족하다. 부하의 소수 의견을 항명이 아닌 다양한 제안으로 존중하는 문화는 몇몇 경영자의 발상의 전환으로 꽃 피지 않는다.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학생이 교수에게 도전할 때 주위 동료 학생들이 불안해할게 아니라 도리어, 응원하고 축복해 주어야지 변화가 완성된다.
주역의 64괘 중에서 지천태地天泰 괘는 하늘과 땅이 서로 어울리는 태평성대를 상징한다. 그런데 괘의 모양을 보면 땅地이 위에 올라 가있고 하늘天이 아래에 있다. 반대가 되어야 순리일 것 같지만 여기에 화합의 철학이 숨어있다. 위아래가 서로 바꾸어 자리함으로써 하늘은 위로 가려하고 땅은 밑으로 향하면서 어울림의 동적 에너지가 생성된다는 의미다. 상하, 음양의 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면서 평화로운 상태가 된다. 윗사람이 자기를 낮춰야 비로서 소통이 이루어진다.
거꾸로 천지비 괘는 하늘이 위에, 땅이 아래에 있다. 하늘과 땅이 각각 위아래에 있으면서 서로 소통하려는 동기도 없고 기회도 없다. 꽉 막힌 비否의 상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