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 지역의 언어로 이야기했습니다.' 공자의 마부
앞에서 얘기한, 괌 공항 착륙 중에 추락한 대한항공 801편 사고 얘기를 좀 더 해보자. 조종실 내 기장의 권위에 대한 굴종이 이 사고의 요인일 거라고 추측했지만, 잠깐 당시 사고기 조종사들의 이력을 좀 들여다본다.
마침 대한 항공 801 편의 기장과 부기장, 기관사 세 명의 조종사는 모두 공군 출신이었다. 기장은 (사관학교가 아닌) 간부후보생 학교를 거쳐 임관했고, 부기장과 기관사는 공군사관학교를 나왔다고 한다. 공사 기수로는 기관사가 부기장보다 한참 선배였다. 세 사람이 같은 군 출신이면서도 출신 학교는 달라서 서로 간에 위계가 매끄럽게 형성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게다가 나이는 조종실 서열이 낮은 기관사가 제일 많았다. 따라서 기장의 권위에 쐐기를 박아 줄 비공식 서열은 좀 꼬여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세 명의 조종사가 모두 같은 사관학교 출신에다 선후배 순서까지 현재 조종실 서열과 일치했다고 가정해 보자. 선후배 유대가 평생 가는 사관학교 출신끼리, 직장에서도 상사와 부하로 801 편의 조종실에 앉아 있었다면 대화와 의사 결정 과정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가상해본다.
학연과 직연에 나이까지 순 방향으로 일치하니 위계는 더 또렷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유대감과 동질감이 진하게 형성되면서 오히려 대화가 자연스럽다. 소통의 양도 많아진다. 긴박한 순간이지만 세 사람이 교환하는 정보의 양은 양방향으로 풍부하다. 부기장과 기관사는 선배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정확하고 쉽게, 기장이 현재 위치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상황을 전달한다. 기장은 오해 없이 스스로 오류를 확인하고 늦기 전에 수정하고 비행기 고도를 높이며 '복행' 한다. 그날 괌 공항에 무사히 안착한 승객들 중에 비행기가 니미츠 언덕에 충돌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하나도 없다.
이 가상대로 하면, 당시 대한항공 801편 조종실의 문제는 글래드웰이 주장한 위계질서로 인한 불통보다는 공적 권위와 비공식 서열이 뒤섞이며 어정쩡해진 소통이다. 어정쩡하면 불편하고, 불편하면 소통의 양이 줄어든다. 말하기가 싫어진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에서 위계는 우선 말의 존대와 하대로 실천된다. 화자가 상대방의 권위를 얼마나 수용하는지는 말 몇 마디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 위계가 명료하면 쉽게 말투를 선택하고 표현한다. 그렇지 않고 복수의 위계 요소가 엇갈리면 적용할 말투를 결정하기가 애매해진다. 그러면 우리말의 존대 여부가 갈리는 '말끝'을 흐린다. 직장에서 직급은 위인데 학교가 직속 후배이거나, 실무자 시절 조수가 어느 날 내 상사가 되어 올라타면 맘과 말이 불편해지고 대화는 줄어든다. 어떤 사람들은 부르기가 애매해서 호칭을 잘라먹고 말을 중간부터 시작하거나 (주어를 생략해도 되는 우리말이 이럴 때는 편리하다.) 꼭 불러야 할 땐 툭 친다. 우리말의 존대는, '~님'하는 존칭으로 시작해서, '~합니다, 해요' 등의 종결어미로 끝난다. 이렇게 말의 앞 뒤에 버티고 있는 존대가 껄끄러우면 소통은 줄어든다.
이런 현상은 어쩌다가 생기는 해프닝이 아니다. 내색을 잘 안 해서 그렇지 우리나라 거의 모든 조직에서 앓고 있는 시름병이다. 상하 질서가 엄하다는 검찰에선 검찰총장이 바뀌면 고시 동기와 선배가 아예 사표를 내(게 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비공식 서열이 공식 위계와 충돌하는 구성원들을 정리함으로써, 검찰 수장이 동기나 선배 검사들을 통솔하면서 생길 불편한 소통의 단초를 초장에 제거해버리자는 취지다. 후배를 위한 용퇴라고 둘러치기는 하지만 수십 년 봉직해 온 고위 공직자들이 하루아침에 옷을 벗는 이유로는 원색적이다.
조직이 크고 구성원이 많으면 공식, 비공식 서열이 혼재하면서 내부 소통에 장애가 된다. 비공식 네트워크는 공적 권위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려는 반작용으로 작동한다. 조직이 지나치게 계층적일수록 비례해서 복선의 비공식 서열도 활개 친다. 군대 내무반에서 밤중에 신입 하사가 고참 병장한테 기합 받는 일까지 벌어진다. 소통의 장애는 경영자가 풀어야 한다. 그렇다고 검찰 방식처럼, 공적 질서에 걸리적거린다고 사적 위계를 인위적으로 재단해버리는 관행은 투박하고 낭비적이다.
경영자는 이런 경우 자기의 권위를 좀 양보하고 비공식 서열을 일부 존중해주는 제스처를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공식 질서를 더 단단히 할 수도 있다. 나이 많은 부하와 말 섞는 게 불편하다고 피할게 아니라, 그 사람이 경험을 다른 부하들과 공유할 수 있게 주선해주는 게 그 한 예다.
비공식 질서에도 너그럽게 손을 내밀어 그들의 문법으로 소통을 해보세요.
그러면 수직적 소통의 빈자리에 소외받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밀려 들어온다. 소통이 전방위로 이루어지면서 그 양과 질도 좋아진다. 뜻밖의 문제가 풀린다. 음성적인 서열은 지레 시들해지고 조직이 밝아진다.
공자 일행이 제나라 변방을 지날 무렵, 일행의 말이 남의 밭에 들어가 보리를 다 뜯어먹어 그 밭의 주인 농부가 노발대발 화를 내며 말을 돌려주지 않았다. 말재주 좋다는 자공이 나서도 소용이 없었다. 농부는 오히려 더 뻗댈 뿐이었다. 이를 본 공자가 마부를 보내 화를 풀었다. 농부를 설득한 마부에게 그 비결을 물어보니 이렇게 답한다. “별것이 없습니다. 저는 이 고장의 관습대로 형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의 언어로 이야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