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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Oct 11. 2020

왜 잘 사는 나라는
질서도 잘 지킬까?

이 나라 저 나라 가서 살면서 생긴 의문 중 하나는 ‘왜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은 질서도 잘 지킬까’였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애나 어른이나 공공장소에서 소곤소곤 조용한 반면, 좀 어려운 나라에 가보면 길거리 여기저기에 쓰레기가 날아다녔다. 질서 지키는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닐 텐데... 잘 사는 집에 가보니 집안이 반들반들하고 애들도 손님 앞에서 싹싹하고 공손하더라는 식이다. 빈부와 질서의식이라는 두 변수 간의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함부로 재단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가설은 가능하다. 가령 선진국 사람들도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만 정부에서 비싼 장비와 인력을 동원해서 수시로 청소를 한다든지, 풍부한 단속 인력이 감시하는 바람에 과태료가 아까워서 함부로 못 버린다든지 이다. 아니면 인과의 방향을 바꿔서 질서의식 수준이 높은 나라는 잘 살게 되고 엉망인 나라는 가난하게 산다는 욕먹을 가설도 상상해본다. 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지킬 것 지키고 살지만, 당장 먹고살기도 버거운데 웬 공공질서? 할 수도 있다. 또 달리 보면 대체적으로 선진국이 몰려 있는 서양의 개인 중심 사회에서 타인과의 마찰을 조정하는 수단으로 공공질서가 발달한 반면, 수직적인 위계와 집단이 우선인 동양에선 수평방향의 공공질서는 강조되지 않았다는 가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집단의 이익도 중요하게 여기면서 공공질서는 서양보다 한 수 높은 일본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힘이 지배하는 사회는 법의 지배를 거쳐 질서(도덕과 윤리 )가 지배하는 사회로 발전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새로운 쟁점들이 등장하고 그걸 조정할 규범이 요구된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 해결하려면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보다는, 구성원들의 윤리의식이 성숙한 사회에서는 새롭게 당면한 문제들의 상당 부분을 일일이 법의 신세를 안 지고도 그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유지해온 규범으로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차로나 건널목이 생길 때마다 신호등을 달면 설치 비용도 문제고 교통의 흐름이 방해된다. 신호등을 점멸등, 우선 멈춤, 회전교차로( 로터리)로 대체하면 그야말로 원활하게 소통된다. 하지만 이 경우 시민의 성숙한 질서의식이 바쳐준다는 전제하에 가능하다. 신호등의 색깔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법 대신에 일정 부분 통행자에게 판단을 위임하는 자율 개념이다. 그 보상은 크다. 오히려 신호등 없는 도로의 사고율이 낮다는 통계도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급속한 경제 발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가동하는 공공질서 의식은 국제 기준에 미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두에 전제한 빈부와 질서 의식 간의 상관관계가 무색하다. 도시 생활에서 핵심 규범인 교통질서가 더욱 그렇다. 점잖은 동방 예의지국의 길거리에서 인간의 야만적 본능을 수시로 확인하게 되어 민망하다. 한국의 도시화는 90%에 육박하고 있다. 도시 기능에서 필수적인 교통문제는 국민의 생활의 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한국은 올해 등록 자동차 대수가 2천4백만 대를 넘었다고 한다. 교통문제가 교통 문화로 격상되어야 우리나라는 진정한 선진국이 된다. 교통 문제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운전 습관 몇 가지와 원인을 살펴보자.




1. 멀쩡한 사람도 도로에서 운전을 하면 다른 사람이 된다 : 자동차라는 가면 뒤에 숨어 익명이다. 예비군복만 입혀 놓아도 지성이 30%는 할인되는데 자동차 철갑을 둘렀으니 오죽하겠는가? 평소 눌려 있던 야성이 임자를 만나서 소싯적에나 써봤음직한 걸진 육두문자가 거침없이 나온다. 분노는 질주로 연결되고, 되로 받고 말로 갚는 통 큰 보복이 난무한다. 온라인 게임에서 시비 붙다가 현피 뜨듯이, 자동차끼리의 대리전쟁은 주먹다짐으로 발전해 도로 위 무료한 운전자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하기도 한다.



2.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지나칠 일도 운전 중엔 특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 인간이 움직이는 속도를 훨씬 초과하여 이동하는 자동차에서는 감정 또한 빠르게 반응하는 것 같다. 속도에 비례하여 서로 주고받을 위해가 커지기 때문에 그런지 대체적으로 긴장한 상태를 유지하다가 여차하면 거칠게 반응하고 문제가 커진다.



3. 보행자에 대한 양보가 없다: 횡단보도에 신호가 없을 때는 보행자가 우선이지만 그것 믿고 건너다간 사고 나기 십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보행자가 자동차 먼저 가시라고 기다려준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아래로 보았던 예전 운전사의 우월 의식이 아직 남아있는 듯하다. 덤프차가 승용차 우습게 생각하는 것만큼 후진적이다.



4. 영업용 차량 운전기사는 무법자?: 버스, 택시, 건설장비, 화물차 등은 마치 교통법규 면제 면허나 있는 듯 신호, 주 정차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위반한다. 대중교통 기사는 많이 친절해졌지만 아직도 개인별로 편차가 많다. 예전엔 무뚝뚝함의 예로 동서기 ( 동사무소 직원)와 버스 운전수 ( 운전기사 )를 들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어서 동사무소 직원들은 민원인들이 미안해할 정도로 친절해졌다. 그러나 그 변화는 대중교통 기사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택시 잡는 걸 꺼리는 이유는 요금보다는 대답도 잘하지 않는 퉁명스러운 기사가 걸려 기분 상하지 않기 위함이다. '먹고살기 힘들어서' 불친절하다고 하는데 불친절은 배를 더 고프게 할 뿐이다.


5.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이 서민 흉내 내는 단골 메뉴가 전통시장에 가서 좌판에서 음식 입에 집어넣기와 대중교통수단 이용하기 정도일 것이다. : 나는 그 사람들 중 아무도 복잡한 시내버스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그렇지 않다면, 입만 열면 그렇게도 ‘친애하는’ 서민들이 겪는 위험하고도 치욕스러운 노선버스 타기 곡예를 이렇게까지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광역버스, 시내버스, 마을버스 등 여러 노선이 동시에 서는 정류장은 아수라장이다. 버스 노선별로 서는 지점을 지정해둔 경우도 있지만, 색색의 버스들이 얽혀서 정차하면 기다리던 남녀노소 승객은 버스를 놓칠 새라 헉헉대며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그 거리가 50미터 이상이 될 때도 있다. 도로변에 세울 데가 없으면 어떤 버스는 도로 한가운데 주춤하고 선다. 그러면 승객들은 달리는 차 사이를 뚫고 길 한가운데로 돌진한다.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하려 슬금슬금 도로변으로 접근할 때도 이미 마음이 조급한 승객은 차도로 ‘마중’ 나가서 버스를 두드리고, ‘두드리면 문이 열린다’. 그러면 다른 승객까지 우르르 몰린다. 저마다 제자리에서 정직하게 기다리다 버스 떠나보내고 좌절한 트라우마가 있다. 사고 나면 차도로 뛰어든 피해자 과실이 크다. 게다가 택시들이 버스 정류장을 떡하니 길게 차지하고 서 있어 버스는 저만치 밀려나기도 한다. 참 위험하고도 처절하고 한심하다. 이는 버스를 이용하는 학생, 시민이 자주 겪는 일임에도, 일부 버스 중앙차선 정류장을 제외하고는 수십 년간 개선이 없다. 후진국도 이 정도는 아니다.



6. 불법주차는 교통흐름을 방해하고 사고를 유발하는 도시 교통의 골칫거리다. : 나라의 빈부와 관계없이 차량이 많이 몰리는 대도시 공통의 문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주차 위반 문제는 국제 위상과 비교해 심각한 수준이다. 일본처럼 주차공간이 없는 경우 차량 등록을 안 받아 주는 방법이 있지만 주거지가 아닌 곳에서는 대책이 안된다. 일단 한국은 지정 주차면도 부족하고, 주차 단속도 느슨하다. 대개의 선진국은 도로변 등 주차 허용 여부와 요일 별 시간까지 상세하게 고지해 놓았고, 미터기를 설치해서 촘촘하게 단속하고 있다. 웬만해서는 모험할 생각을 하지 않게 해 놓았다. 우리나라는 알아서 요령껏 대충 세우라는 식이다. 경찰과 지자체가 주차 단속을 맡고 있지만 꽤 관대하다. 더욱이 지자체장이 선출직인 지역은 표를 관리하느라 제대로 단속하지 않는다는 설도 있다. 전반적으로 주민들 민원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공기관의 분위기와 연관이 있다. 그러니 공용주차장을 만들어 놓아도 불법주차를 하게 되고, 교통 범칙자를 양산한다. 지키는 사람만 숙맥이 되는 환경이다.





공공질서를 공중도덕으로도 표현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선 질서의 격이 높다. 다만 전통사회의 지배와 복종의 수직적 규범이 민주적, 인도적 수평적 규범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에서 질서 후진국에 머물러 있다. 세계 가치관 조사(WVS) 결과에 의하면 ‘자녀가 가정에서 배워야 할 가치관으로 타인에 대한 관용과 존중이 중요하다’고 꼽은 비율은 한국이 다른 국가에 비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질서 준수의 정신은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 뭣보다도 중요하다. 위에 열거한 모든 원인을 관통하는 해결책은 교통 소비자인 우리 자신의 의식 전환이고 그것은 교육이 관건이다. 국제시민으로서 활동하는데 외국어보다 질서의식이 더 중요하다는 진리를 우리 부모들이 깨닫는 순간 우리나라의 질서 수준은 인터넷 보급률만큼이나 치솟을 것이다. 한다면 하는 민족이다. 학부형을 설득하면 얘기는 끝난다.


세계 가치관 조사(世界價値觀調査)World Values Survey 는 사회 과학자들이 세계의 각기 다른 문화의 사회문화적, 윤리적, 종교적, 정치적 가치를 조사하기 위해 진행 중인 학술 프로젝트이다.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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