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것에 집착하면 어른을 잃는다'

부정부패의 근원적 배경

by 영감

조선시대에도 각종 비리가 횡행한 것을 정사, 야사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혈육과 친지에 대한 '그놈의' 정情이 투명성을 포함한 바른正 가치를 상회하였다. 조선 말엽 우리나라를 찾았던 영국인 지리학자 이사벨라 비숍은 '조선의 극성스러운 엄마들은 어린 자식에게 밥을 먹일 때 위胃를 넓적한 숟가락으로 토닥거려가며 억지로 밀어 넣는다'라고 묘사하였다. 다른 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부모 자식 간의 이 숙명적인 끈은, 아이를 학원과 조기 유학으로 내 모는 오늘의 엄마에게 전승되었다. 그 비용을 대기 위하여 부정不正과 타협하는 아버지의 양심은 장발장의 그것만큼 절실함에 가려진다.


계소자 실장부 係小子 失丈夫 어린것에 집착하면 어른을 잃는다 : 주역 택뢰수澤雷隨 괘




1. 부당하게 권한을 행사하여 얻은 편익도 동기에 따라 정당화되는 가변적인 윤리 기준이 작동한다. 자식 문제에 부딪치면 갑자기 청렴의식이 마비된다. 허기진 자식을 먹이기 위한 도둑질은 용인해주는 온정적인 사회 풍조가 부정행위 유혹에 대한 저항력을 연약하게 만든다. 되레 죄지은 자가 갑자기 엄마, 남편으로서의 입장을 내세우며 대들기까지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범인 은닉죄 마냥 직계가족을 위한 부패는 봐주자는 법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2. 조직에서 감시자와 피감시자의 역할은 순환 교대하는 공생의 질서 속에 매몰되고 상하 간 할당과 상납을 통해 유통의 고리를 형성한다. 그리고 조직적으로 진화한 범죄는 조폭성 '으리'로 단단히 포장되어 배타적으로 '운영'된다. 부정행위에 의한 범죄 수익은 조직이 묵시적으로 제공하는 비공식적 추가 보상으로 간주한다. 죄의식은 없고 오직 이 수입원이 지속적이고 발전적이기를 기대할 뿐이며 수익을 조직원끼리 나누면서 심리적 돈세탁이 완료된다. 청탁 수요가 많은 자리는 서로 가려고 하고, 승진까지 미루면서 그 노른자위 직책을 유지해서 부패를 본업으로 전환시키는 사례도 있다. 방송보다 광고로 버는 돈이 많은 연예인처럼, 직무는 부패에 필요한 권한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어쩌다 발각되어 문제가 되면 재수가 없어 걸린 거다. 같은 '업계'에서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보다, (여러 건들 중에) '무슨 건으로' 걸려 들어갔는가가 관심사가 된다.

백성을 수탈하는 신하를 두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재물을 도둑질하는 신하를 두는 것이 더 낫다.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 : 대학大學 에 나오는 맹헌자孟獻子의 말


3. 새치기 안 하고 정직하게 줄을 섰다가 바로 앞에서 잘려서 황당했던 기억이 누구나 한두 번씩 있다. 성실하게 법을 지키다 오히려 불이익을 받은 경험이 법질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집단적 소외감의 원인이 된다.


부정부패2배경 어린것에 집착하면어른을 잃는다.JPG


소외당하지 않으려고 힘을 합쳐 연대를 시도하는데 여기서 혈연, 학연, 지연, 직職연 등 하나도 각별하지 않은 참으로 유치한 인연이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한다. 부정부패는 인맥 관리의 중요 목적이자 도구이다. 이 연줄로 얽힌 공동체 안에서 갑 을의 위치는 청탁 내용에 따라 결정된다. 거래는 대개 청탁의 갑과 을 임무 교대를 통하여 대차의 균형을 맞춰 나가는 물물교환 방식으로 정산하게 된다. 따라서 신세를 진 청탁 '채무자'는 부채를 청산하기 위하여 또는 미래에 도래할 청탁 소요에 대비하여, 권한이 살아있는 한정된 기간에 부지런히 품앗이 부패를 저질러서 청탁 자산을 비축해 놓는다. 부정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고 연줄 닿는 청탁 갑과 을을 연결해주는 브로커의 역할도 폐쇄적인 부패 망에서 거래를 활성화시켜주는 기능의 하나이다. 혈연과 지연 또는 학연이 결합된 형태도 흔하다. 아버지 고향 친구의 부정한 청탁을 들어준 '출세한' 아들과 그 아버지는 동향 사람들 간에 두고두고 칭송받는다. 많은 실력자들과의 관계를 구축하기 (=줄을 대기) 위하여 여러 인맥 서클에 가입해서 '든든한 빽'을 확보하고, 경조사에 얼굴 디밀기 등 초보적인 인맥관리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4.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부패가, 주요 사안들을 굴러가게 하는 사실상 불가피한 절차로 인식된다. 부패가 만연하고 확산되는 악순환 속에서 이러한 시스템에 저항하면 해당 분야에서 부적응자로 찍혀 조직에서 배제당하기 십상이다. 심지어 집안에서까지 무능한 가장, 융통성 없는 사위가 돼 버린다. 대부분 이런 총체적인 부패 환경에 영합하고 익숙해지며 정의감 '같은 거'는 실종된다.



5. 법의 적용을 유예받는 '치외법권'적 특권의 양과 질로 개인의 사회적 성취도를 측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 권리의 부당한 행사를 불시에 제지당했을 때 돌발적으로 튀어나오는 호통이 '내가 누군 줄 아느냐'이다. 직무상 부여받은 권한을 자신의 사적 소유물로 혼동하니, 그 권한을 이용하여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데도 죄의식이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한국의 청렴도는 OECD 36개국 중 27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