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부패 문제의 핵심
부정부패 현황과 배경을 관통하는 문제의 핵심은 범죄의식의 부재이다. '그럴 수도 있지 이 정도가 뭐 대수냐' 다.
부패는 사회의 질서를 문란하게 만드는 심각한 반사회적 범죄다. 그러나 그 해악에 비해 피해자인 우리 사회가 느끼는 죄악감은 크지 않다. 절도죄의 형량은 6년 이하 징역인 반면, 뇌물 수뢰 죄는 1억 미만이어도 특가법상 7년 이상 징역에다 벌금까지 뚜드려 맞는 걸 보면 처벌이 느슨한 것도 아니다. 도둑질은 사회의 낙오자가 저지르고 피해와 피해자가 명확하다. 부패는 대개 기득권자가 개입되며 그 피해의 파급이 간접적이어서 피해 감각이 무딜 수는 있다. 그러나 부정부패가 국가 경제와 사회 질서에 초래하는 혼란을 생각하면 부패 범이 여느 도둑놈보다 죄가 훨씬 무겁고 파렴치하다고 볼 수 있다.
1. 학원비를 대기 위해 부정한 돈에 손을 대거나 자녀의 채용을 부당하게 청탁하는 행위도 도둑질과 다르지 않은 엄연한 범죄다. 자식을 위해 저지른 부패는 정情에 못 이겨 사邪에 집착하고 정正을 버림으로써 자식을 오히려 욕되게 하는 행동이다. 아이가 배고프다고 독수毒樹의 과실果實을 먹일 텐가?
2. 조직폭력이 가중처벌을 받는 이유는 상습성, 계획성, 내부 규율성, 목적성 등의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조직 차원에서 저지르는 부패도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정작 부패의 주체들은 공범의식에 기대어 죄책감이 덜하다. 도둑질도 여럿이 하면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대담해지는 한편 공범들은 강한 공동체 의식으로 뭉치게 된다. 동료 범죄자가 외부에 드러나면 결사結社하여 비호하고 사후 관리해준다. 조직에서 깡패의 뒷배를 봐주고 감옥에 가면 가족을 돌봐주는 조폭의 '으리'와 닮았다. 부패나 도둑질이나 그 조직은 범죄 공동체일 뿐이다. 조폭은 계층적 인적구조와 내부 통솔체를 보고 판단해서 그 수괴와 가담자까지 가중 처벌한다는데, 조직부패에는 안 그러는 것 같다, 문신이 없어서 그런가?
3. 우리 사회가 유난히 연연하는(= 없으면 허전해하는) 연줄은 약자들이 기득권 세력의 횡포로부터 자기를 구하기 위하여 형성하는 보호막이자 기득권의 리그에 진입하는 수단이다. 그 연줄에 대항하여 다른 연줄 세력이 생겨 편을 가르기도 한다. 다행히도 연줄간의 충돌은 양측 화력 (=끗발)의 규모를 사전에 측정할 수 있어, 차이가 현저하면 기권이나 불계승을 선언한다. 죽으나 사나 연장 들고 피를 봐야 승패가 갈리는 조폭과 다르다. 역시 부패는 지능범죄라 좀 우아하다. 그저 아무 데도 못 끼는 민초는 할 수 있는 게 좌절 밖에 없다.
4. 걸핏하면 김영란법의 완화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부패를 사회가 돌아가는데 필요한 윤활유 정도로 생각한다. 지난 추석 때 농축수산물의 김영란법 상한액을 1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올려주었더니 백화점의 고가 선물 매출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국가재난 상황'을 맞아 '국가적인 차원'에서 비싼 뇌물 주고 받으라고 부추긴 셈이다. 비리를 조장해서 농축산 경기를 살리자는 정부의 발상이 과연 국가 청렴도 OECD 27위 나라답다.
5. 법치의 대 전제는 '법앞에 누구나 평등'이다. 그러나 정치 후진국의 지배층은 신분에 따라 차등해서 법이 적용되던 과거 신분제 사회를 몰래 그리워한다. 피지배층(=아랫것 들)과 나란히 서서 동일한 기준으로 취급 받는 걸( 테레비 카메라 앞에서 구내식당 줄 서는 연출 할 때를 제외하고 )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법을 어길 시 평등하게 처벌받겠다는 공동의 계약에 정서적으로 동의하지 않으며, 민초들과는 구별되는 특권에서 출세를 실감하고 보람을 느낀다. 삿邪된 이익을 그들 리그 만의 보너스로 착각하는 지도층에서부터 부패는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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