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더하면 잘할 것 같은 경영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은 기업에서는 반만 맞다. 위가 깨끗하다고 해서 반드시 아래까지 맑으란 법이 없다. 하지만 경영자의 솔선이 투명한 조직의 충분조건은 못돼도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기업의 임직원들이 부정한 거래의 주체가 되어 시장 질서를 혼란케 하는 일이 적잖이 발생한다. 사기업 간에 횡행하는 부정은 느슨한 법적 통제와 대중의 안일한 인식으로 인해 크게 주목받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사기업 간의 불공정 거래에 의한 폐해는 공직자가 연루된 부패 못지않게 크다.
아는 소규모 건설 하청업체의 사장에게서, 어느 지방 도시의 고급 유흥 주점 중에 안 가본 데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기가 막혔던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술을 못 마실뿐더러 회사가 어려워 종업원들 급여도 제대로 못 줄 때였다. 얘긴즉슨 그 지방에서 하청 받은 일을 몇 달 하면서 이 집 저 집으로 원청사 직원들을 '모시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한심한 건, 갑이 접대나 뇌물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게 ( 을의 입장에서 ) 차라리 편하더라는 거다. 무언가 바라면서도 말은 안 하고 빙빙 돌리는 게 더 난감하단다.
사기업 간에 뇌물, 접대의 목적은 계약을 따내기 위한 목적 외에도 정보 제공, 계약 변경, 품질 하자 무마, 보험 성격의 관계 유지, 그냥( 접대를 빙자한 유흥) 등 여러 가지다.
필자 회사도 투명한 영업만 고집하다가 자격 미달의 경쟁업체에 밀려 골탕 먹은 적이 더러 있다. 원청사인 건설사와 우리 회사의 실무자들이, 갑 을이 아닌 파트너로서 수년간 신축 건물에 설치할 장치를 공동 개발하고 특허출원 준비까지 했다가 막판에 물거품이 되었다. 갑자기 '위'에서 특정 회사의 제품을 쓰라는 이상한 지시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공사 일정이 지연되고 비용도 올라간다. 무엇보다 시공 품질의 하자가 불가피해서 나중에 빌딩의 입주자들까지 두고두고 불편을 겪을 게 뻔한 황당한 결정이다. 건설사의 실무자도 기가 막혀서 그 윗선에 '아니 되옵니다'하고 버텨 보지만, 그 윗선으로부터 도리어 '너 거기(필자 회사) 서 돈 먹었냐'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 좌절하고 그만 입을 다문다. 적반하장이다. 개 눈엔 똥 밖에 안 보인다. 내막을 들어보면 돈과 향응 또는 권력 (또는 셋 다)이 치고 들어와서 하루아침에 사업을 날치기당한 경우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동 시대 '윗선'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직원뿐 아니라 갑 측의 실무자마저도 보기가 민망했다. 실력이 아닌 불결한 뒷거래에 의해 놓친 신축 빌딩들은 볼 때마다 불쾌한 기억이 되살아나곤 해서 지금도 그 앞으로 안 다닌다. 그리고 그 아픈 기억은 옹졸한 나의 저 깊은 하드디스크에 각인된 채 평생 간다.
<창피하고도 더러운 기업 부패 2020. 10. 4. 브런치 > 필자 글 중에서
부정한 구석을 없앤다고 최저가 공개 입찰로 경쟁을 시킨다지만 궁여지책이다. 가격과 함께 업체의 재무 상태나 시공 실적도 따져봐야 하는데 공정한 심사에 자신이 없어 포기하고 가격으로만 구매를 결정한다. 저가 경쟁은 자연히 제품이나 서비스의 부실로 이어진다. 대학 입시에서 학종에 의한 입학사정관제를 택하다가 불법적인 '스펙' 쌓기가 문제가 되니까 정시 모집 확대로 후진하는 것과 같은 얘기다. 공개 입찰이라고 해서 검은 뒤 거래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그간 공직자의 비리는 많이 나아졌다고 체감하는 경향이지만, 사기업 간 부정 거래는 피해자이자 당사자인 을 쪽에서 그것을 영업의 도구로 애용하는 한 뿌리 뽑기 어려워 보인다. 부패는 갑과 을 양쪽에 책임이 있다. 을이 내민 반칙의 검은 손을 갑이 잡는 순간, 건전한 경쟁 질서는 한 방에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마약에 한 번 맛 들이면 못 빠져나오듯이, 을은 문제의 해결을 질펀한 하룻밤의 술판이나 한나절의 골프 라운딩에만 의존하게 된다. 사업 달성과 문제 해결을 위한 조직과 개인의 건강한 발전은 성장을 멈추고 병든다. 갑과 을 그리고 나아가 우리 사회 전부가 피해자가 된다.
사기업 간 부정한 접대, 뇌물, 금품 등은 을의 추가 비용이 되고 갑이 지불하는 가격에 포함된다. 결국 그 부담은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문란한 기강이 갑과 을 양측 조직의 사기를 갉아먹으며 이중 삼중의 손실을 끼친다. 미국에선 거래선을 접대한 후에 같이 사진을 찍는 경우가 있다. 기념사진이 아니고 접대비의 사업 연관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증명이 되어도 세법상 액수의 반만 비용으로 인정해준다. 접대를 제공하는 쪽 사람이 먹은 건 비용이 아니라는 거다. 일리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틈만 있으면 골목 상권 보호네 뭐네 하면서 접대비 한도를 올리자는 주장이 고개를 든다.
사기업 간 부패는 누구보다 경영자들이 나서서 잡아야 한다. 갑이건 을이건 간에 경영자의 의지만이 동료들을 접대와 뇌물의 함정에서 건질 수 있다. 그러려면 우선 윗물이 맑아야 한다. 회사의 경영자부터 솔선하여 공公과 사를 철저히 구별해야 한다. 구별이 어려울 땐 공公이 우선이다. 사소한 것부터 실천하자.
☞ 내 법인카드 사용은 내가 감시한다 : 법인카드는 지갑 깊숙이 집어넣고 사용 전에 두 번 생각하세요! 내가 사용한 경비 전표라도 결재하면서 다시 보고, 좀 애매하면 반려하자. 경리 직원에게는 실수로 법인카드를 사용했다고 하면 된다. 설사 거래처를 접대하더라도 그 거래처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관계면 내 돈 내세요! 그래 봐야 몇 푼 안돼요! 그래서 경영자의 보수가 쎄다.
☞ 사적으로 아는 사람이나 업체를 회사와 차단시키세요 : 처조카가 하는 회사와 수의 계약을 맺는다든지, 주거래 은행을 친구 동생이 지점장으로 온 은행으로 바꾸는 일은 피해야 한다. 설사 친지가 하는 업체가 현재의 거래처보다 더 유리한 조건을 내밀어도, 대가 없이 무상으로 주겠다는 경우가 아니면 거절하세요!
☞ 회사의 거래처와 개인적으로 거래하지 마세요!: 하청업체, 납품회사에 사적인 부탁은 물론 돈 주고 사는 것도 하지 마세요! 갑 측의 사장이 사겠다는 데 제값 못 받는다. 그러면 뇌물이다.
내 회사인데 이 정도 못하겠냐 하지만, 만일 직원들이 나하는 걸 따라 한다고 상상해보라. 내가 이런 거부터 투명해야지 실무자들은 반투명이라도 한다. 윗물이 맑아야 겨우 아래 물이 맑을까 말까 한다.
거직조제왕즉민복擧直錯諸枉則民服 곧은 사람을 기용하여 굽은 사람의 위에 두어야지 백성이 복종한다 :
논어 위정편
추신: 그런데 그 '윗선'의 횡포가 안 통하는 갑도 있었다. 그 대기업 소속 건설사는 직속 임원이 실무자에게 설사 말도 안 되는 지시로 찍어 눌러도, 실무자가 '그럼 상무님이 나중에 책임지시겠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는 선진적이고 강직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우리 영업 실무자는 그 회사에 가면 밥을 얻어먹고 왔다. 잘 되는 기업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