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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Nov 01. 2020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고

국민소득 6천 불 때 네덜란드 주재원

이사 간 호수가의 집은 사무실에서 가까웠지만 중간에 운하가 있어 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런데 그 다리는 좀 크거나 돛대가 높은 배가 지나갈 때마다 부산의 영도 다리처럼 (도개식이라고 함) 한쪽이 들어 올려졌다. 많이 알려진 반 고호의 그림 랑글루아 다리를 생각하면 된다. 영도다리는 그것 때문에 명물이 되었지만 매일 그런 길로 출근하는 나는 잘 못 걸리면 몇 분씩 기다려야 되니 짜증이 날 수밖에. 10분이면 갈 거리가 15분, 20분이 걸린다. 통항하는 배는 여러 종류인데 여름 철에는 유난히 요트가 많았다. 출퇴근 시간에 다리가 올라가면 차들은 길게 밀리고 다리 밑으로는 반 나체로 누운 사람들을 태운 요트가 강을 따라서 유유히 빠져나간다.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이 바쁜 출근시간에 어떻게 놀이 배가 저렇게 뻔뻔하게  길을 막을 수 있으며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착하게 참고 기다리지? 주위 사람들에게 이걸 얘기하면서 같이 분개해 줄 것을 기대했건만 '아 그 사람들 (다리 관리하는 이들)  원래 그래요. 배만 신경 쓰지 차는 상관 안 해요.' 정도였다. 빨간불이 좀 긴 신호등 앞에서 하는 푸념 정도로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곳 생활을 하면서, 누구에게나 여름에 짧지 않은 휴가가 주어지며 그중 많은 수가 요트를 (자기 것이든 빌려서 타든) 즐길 수 있는 형편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이해가 되었다. 오늘은 비록 내가 출근 길 차 속에서 유람선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내일은 나도 식구들하고 저 요트 위에 웃통 벗고 누워 있을 수 있으면 불편할 뿐 분개할 사항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우리 집 일을 도와주는 파출부(도우미)가 휴가를 간다고 해서 생겼던 의아함도 동시에 풀렸다. 


일하는 사람은 쉼 없이 일만 하는 세상을 살던 (사실 당시 나의 휴가 일수는 연간 이틀 정도였는데 그나마도 찾아 쓰기 어려웠다) 내가 적응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던 것이다. 일과 휴식이 처지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고 때에 따라 누구나 임무를 교대하는 단순한 질서가 사회를 관대하게 해 주었던 것 같다. 네덜란드는 휴가철이 되면 퇴직연금에도 휴가비를 얹어준다. 


구내식당에서 유심히 보면 밥을 배식하는 아주머니와 빈 그릇을 받아 설거지하는 아주머니의 표정이 다를 때가 있다. 배식과 설거지를 교대로 돌아가며 하는 식당에서는 양쪽 담당의 표정이 안온하고 차이가 없다.(요즘은 식당 아주머니들이 명랑하고 농담도 잘한다. 나는 그런 걸 보면 참 좋다.) 그러나 고정적으로 한 가지만 줄곧 하는 경우 설거지 아주머니의 표정은 어둡고 혼잣말 푸념까지 간간이 들린다. 같은 설거지 일을 하더라도 나중에 편하고 보람 있는 배식 일이 보장되어 있는 경우와 죽으라고 한 가지만 해야 하는 경우는 행복감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주역周易에서는 모든 사물과 현상을 음양으로 대비하여 이해하는데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라는 말이 나온다. 한마디로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되는 돌고 도는 우주 만물의 이치를 이른다. 이것을 어길 때 문제가 생긴다. 줄 서서 기다리면 내 차례가 돌아와야 한다. 앞에서 끊기거나 새치기당하면 초조하게 되고 다른 방법을 찾게 된다. 


어려움에 처해도 언젠가 벗어날 수 있다는 보장이 있으면 그 고통은 반감된다. 그렇지 않고 고통이 기약 없이 계속된다고 상상할 때 고통은 공포로 바뀐다. 그럴 땐 우리 스스로 변화를 보장해 보자. 그것을 다른 말로 희망이라고 부른다. 만물은 변화한다는 이치만이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신호등의 색깔은 바뀐다.


표지사진 Pixabay로부터 입수된 Erich Westendarp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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