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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Nov 05. 2020

시월의 어느 날,
청옥산 자연 휴양림에서 야영


10월 중순, 소문으로만 듣던 봉화 청옥산 자연휴양림의 ‘칠성급’ 야영장에서 이틀을 지내고 왔다. 지난 8월에도 계획했지만 태풍 소식에 한번 연기한 후 이번이 두 번째 시도인 셈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인기 있다는 제2 야영장 데크도 인터넷으로 어렵지 않게 예약을 했는데 오히려 집사람 일정을 예약하는 게 더 까다로웠다.


오후 2시경 용인을 출발해서 중부내륙 고속도에 접어들자 맑았던 하늘 저편이 먹색으로 드리운다. 이번엔 일기예보가 틀리기를 기대했는데. 터널을 지날 때마다 비가 뿌리고 그치기를 반복한다. 어둑해서 휴양림 입구 매표소에 도착하니 직원이 기다렸다는 듯 씩씩하게 예약을 확인해 주며 야영 데크의 위치를 알려준다. 호텔의 프런트 데스크를 떠올린다. 칠성급 맞다.


쓰레기봉투를 받아 챙기고 야영장에 들어서니 텐트 두 동 외에는 데크들이 거의 비어 있다. 주 중인 데다 비 소식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근래 야간/우중 텐트 설치는 처음이다. 빗방울이 듣는 텐트 안에 조용히 앉아 있는 건 운치 있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텐트를 치거나 걷는 건 구지레하다. 좌충우돌 끝에 우리가 이틀 밤을 묵을 숲 속 별장을 ‘완공’했을 즈음엔 야영장이 깜깜해졌다.


고즈넉한 가을밤에 뚝딱거린 게 미안해서 길 건너편 텐트를 지나며 인사를 건넸더니 앉았다 가라고 잡는다. 염치 불고하고 맥주에 즉석요리한 부침개까지 대접받았다. 캠핑 다니는 얘기만 해도 화제는 끝이 없는데 집사람에 이끌려서 그만 일어났다. 다음 날 아침 송편을 조금 갖다 드렸다. 야영장의 인심이 시골 동네의 그것과 닮은 이유는 서로 개방되어 있어 (=빤히 보여) 접근이 (=마실 가기가) 용이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우리의 전통 공동체 문화의 원형을 야영장에서 발견한다. 하긴 여기 청옥산 휴양림도 지난 7월 정선 가리왕산 휴양림에 캠핑 갔을 때 옆집 텐트 이웃이 귀띔해 주어 알게 되었다. 일단은 먼저 다가가는 게 이웃이 되는 첫 순서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우리 텐트 옆 조오만 치에 좀 묵은 듯한 산소가 한 기 모셔져 있다. 새로운 이웃에 와인 한 잔을 올려 인사를 대신했다. 우리 자리가 명당임에 틀림없으렷다. 원효대사가 생각났다. 一切唯心造 일체유심조.


비가 그치고 낙엽송이 비처럼 흩날리는 휴양림 일대를 둘러본다. 잣나무 등 수종이 다양하다. 청옥산 2 야영장은 데크마다 전기가 제공되어 전기담요 등 난방 기구를 사용할 수 있고, 게다가 근처 온수 샤워장은 좀 기다려야 수온이 올라가는 우리 집 욕실보다 순발력이 좋다. 전천후 시설이다. 온수가 나오는 취사장의 개수대는 음식물 찌꺼기가 거의 없이 청결했다. 시설 관리자와 이용자 양측이 모두 노력한 결과이려니. 휴양림 직원들이 마대를 들고 샅샅이 청소 ‘순찰’을 도는 걸 보며 이 양반들이 정말로 잘해 보려고 애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옥산 휴양림의 야영장은 계곡을 따라 5개 구역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규모도 크지만 경관이 뛰어나다. 특히 계곡 건너편 5 야영장을 끼고 걷는 숲길은 명품이다. 5 야영장의 별칭이 ‘불편한 야영장’인데 가서 보니 데크 대신에 노지를 ‘반들반들하게’ 다져 놓았는데 샤워장과 주차장이 좀 떨어져 있을 뿐 그다지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전기는 안 들어온다. 다음엔 이 불편 야영장을 한번 체험해 볼까 한다. 휴양림 곳곳에 적외선 CCTV가 설치되어 있어 주야간 안전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휴양림 옆으로 31번 국도가 지나가는데 산간이라 그런지 자동차 주행 소음이 가까이 들린다. ‘청옥’에 티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도로변에 방음벽을 설치하자고 하면 과욕이 되겠지.


타고 간 자동차의 배터리가 방전된 것을 알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데크에 붙어 있는 관리사무소 전화번호를 돌려 사정을 설명하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객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5분도 채 안 되어 노란 경광등을 달고 도착한 산림청 차량에서 직원이 늠름하게 점퍼 케이블을 들고 내린다. 가히 119 수준이다.


과거 회사일로 선진국에 주재하던 시절 그 나라의 국립공원 등 공공시설과 서비스를 부러워하곤 했는데 오늘은 여기 자연 휴양림에 와서 선진국 국민임을 자부하게 되었다. 우리도 미국처럼 야영장의 관리는 국립 자연휴양림과 국립공원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것 같다. ‘국립’의 위상에 걸맞게 시설과 서비스의 수준이 우수하다. 그러나 한편 일부 지자체 소관 휴양림 중엔 운영이 부실하여 훌륭한 입지와 공적 투자 자원을 안타깝게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본다. (필자가 살고 있는 용인시의 자연 휴양림은 예외다).


시월의 멋진 가을날을 청옥산 휴양림에서 보내고 돌아오는 차에서 이 좋은 자원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작 우리나라의 선진화 과정에서 헌신하고 희생한 세대의 많은 수가 이제는 교통 취약자가 되었다. 가족 등이 거들지 않는 한 혼자서 휴양림 시설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다. 노인일수록 자연과의 교감은 중요하다. 취약계층을 포용하여 그들의 생활의 질도 높이고 주 중에 여유 있는 시설을 균형 있게 활용하는 방안을 사회적 과제로 제안하고 싶다. 또한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휴양림을 적극 홍보하여 우리의 자연과 문화를 체험케 하면 유무형의 국익 창출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이동 수단, 보조인력, 야영 장비 등의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관련 해외 사례를 조사해서 참고하든지 아니면 우리가 시스템을 개발하여 초기 모델이 될 수도 있다.


캠핑 사진 몇 장을 카톡에 올렸더니 ‘문의’가 쇄도한다. 거기가 어디냐… 같이 좀 다니자.. 11월 중 날짜 잡자 ..


2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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