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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Aug 29. 2020

지리산 둘레길

길, 마을, 사람의 기록

지난 3월 말 지리산 둘레길의 마지막 서너 구간을 걷고 시작점인 남원 주천으로 돌아왔다. 둘레길 전체 22구간 중 하동 읍-서당동 등 3개 곁가지 (= 업션 구간) 30 킬로는 빼고 19구간 260 킬로를 돌았다. 작년 9월 시작해서 연내에 끝내려고 했는데 눈병도 나고 겨울이 닥쳐 해를 넘겨 겨우 마무리했다.  어차피 이걸 시작하면서 설정한 키워드는 유유자적悠悠自適·세월아-네월아 였으니까. 터벅터벅 걸으면서 산촌과 사람을 관조해보는 소박한 여행으로 제안한다. 거창한 걸 기대하고 가면 실망한다. 하지만 그 길에 마을이 있고, 사람이 있고, 역사도( 돌에 새기지 못하고 땅에 스며들어 있는) 있다. 풍광은 찬란했고 사람들은 밝았다. 헬조선은 아니었다, 내게는 (내 수준이 저렴해서 그런지 몰라도). 마무리 구간인 전남 구례군은 ‘꽃피는 산골’ - 매화, 벚꽃, 산수유, 진달래가 발칙하게 피어 있었다.

대재大哉라. 건원乾元이여! 만물萬物이 자시資始하나니 내통천乃統天이로다.  : 주역 건乾괘 단전

 



길 1: 마을을 잇는 길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생각하고 덤비면 좀 뻐근하다. 아예 산행으로 치고 시작하면 좀 거슬러 받는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그래도 ‘쓰레빠’ 코스는 없다. 마을을 가로지르고, 강을 끼고돌며, 예전에 장날이면 나뭇단을 지고 넘어가서 제우 (겨우) 석유 너 홉 들이 한 병과 바꾸어 빈 지게에 ‘짬매’ 달고 오던 그 산길도 간다. 갈림길에는 거의 어김없이 이정표가 서있고 양방향 화살표와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빨간 화살표는 순방향, 검은 것은 역방향 목적지. 그런데 이정표의 목적지는 XX 봉이 아니고 XX 마을이다, 등산이 아니다. 산길을 가더라도 굳이 정상을 탐貪하지 않는다. 그래서 둘레길이다. 내가 걸은 구간들의 평균 거리가 15 킬로미터 정도인데 10킬로 구간도 더러 있고 20킬로 이상 '대짜'도 두어 군데 있다. 하루 거리로 큰 무리가 없으며 일정상 짧은 구간 서너 개는 연결하여 통과하기도 했다. 안내 사이트 http://jirisantrail.kr/ 에 상세한 구간 설명이 나와있다. 구간별 고도와 경사에 따라 난이도를 상중하로 나누어 놓았고 예상 소요 시간도 있다. 소요시간은 겸손하게 계산되어서 꾀부리지 않고 걸으면 남기도 한다.

나물을 캐면서 산을 올라가면 힘이 하나도 안 든다. : 아는 동네 아주머니






길 2: 요즘의 시골길은 마냥 낭만적이지는 않다. 임도는 물론 농로의 상당 부분이 농기구 이동을 위해 포장되어 있다. 먼지는 줄었지만 대신 비닐이 날아다닌다. 보드라운 흙 길만 상상한 외지인들에게는 밋밋하다. 그 불만도 둘레길의 일부이다. 그러다 산속에서 만나는 편안한 숲 길은 선물이다. 특히 대나무 숲길로 들어가면 부는 바람까지 초록이고 분위기가 묘하다. 당국에서 구간을 설계하면서 가급적 자연의 길로 안내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길을 잇기 위해 부린 약간의 억지는 그래서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지리산 둘레길 구간에는 공식적인 일련번호가 없고 마을 이름 (예, 대축-원부춘)이 붙어있다. 환형이므로 어느 구간에서 시작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많이들 남원의 주천면에서 운봉 고원을 잇는 14킬로미터 구간에서 첫출발을 한다. 그동안 여섯 번 내려갔는데 한 번에 사나흘 씩 걸었다. 이동시간 포함, ‘주 5일 근무’까지도 해봤는데 좀 지겨웠다. 따져보니 걸은 날 수는 17일이다. ROUND (260kM/17일) =15km/일. 차를 구간 초입에 주차해 놓고 나중에 버스나 택시로 돌아와 차를 픽업하거나, 차 두 대를 양쪽에 세워 놓고 왔다 갔다 했다. 후자의 경우 어느 민박집 주인이 럭셔리하다고 한 마디 함 (= 미련하다고 흉을 봄). 산골 버스를 타고 버스카드를 슬쩍 대 보았더니 ‘되네?!’ 둘레길의 본래 취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접근하는 거였다고 한다. 그러면 한갓지기는 한데 모든 짐을 배낭에 지고 걸어야 한다. 결국 차를 베이스캠프로 이용하게 되었다. 

빨리 걸으면 라사에 도착할 수 없다. : 티베트 속담


길동무: 연전에 어느 테레비 프로에서 둘레길을 소개한 후부터 많이 알려졌다고 함. 그래도 주 중에 는 사람 구경하기 힘들다. 위태-하동호 구간을 걸을 때였는데 구간의 초반부인 궁항마을에서부터 개 한 마리가 따라붙었다. 쫓아도 안 가고 다음 목적지인 하동호 못 미쳐까지 근 7킬로미터를 동행하며 정확하게 길을 안내해주고 돌아갔다. 나중에는 김밥도 나누어 먹고 친해져서 헤어질 때는 못내 아쉬웠다. 그 날 저녁 민박집 주인에게 그 얘기를 하니 대뜸 ‘진순이’라고 하면서 둘레길에서 그렇게 먹고사는(=경제활동을 하는) 개라고 한다. 열정을 가진 전문가는 보기 좋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혼자서도 가고 집사람 하고도 가보았는데 대부분은 지방에 사는 친구하고 둘이서 길동무해서 걸었다. 지방 공무원 출신답게 길을 가며 보는 각종 농업, 임업, 건설 상황을 해박한 상식으로 솔직한 우려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해설한다. 위기의 대나무산업, 수종 개량의 현실, 특용작물 재배의 쏠림 문제, 벼의 작황, 산간 가옥의 추세, 도로명의 모순 등, 화투장하고 달리 하얀 매화도 많다는 것까지. 어디를 가느냐 보다 누구하고 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재확인하게 해 준 좋은 친구다. 

오늘 힘들어하는 당신 잘 사귀면 바람도 친구가 됩니다. 인내와 손을 잡으면 고난도 연인이 됩니다. : 이해인 수녀님


숙식: 각 구간의 시종始終점 마을에는 민박집들이 있어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데 그 연락처는 안내 사이트에 있다. 나는 민박집을 물색할 때 가급적 그 지역에서 오래 산 집을 찾았다. 살림에 보태기 위해 민박을 치지만 길손을 재워주고 돈을 받는 행위는 아직도 어딘가 어색하다. DNA는 사회발전보다 더디게 진화하는 것 같다. 민박은 대개 안주인이 주관하며(= 실세이며) 남편들은 과묵하고 로우키 low-key다 (=겉돈다). 남편의 역할은 손님과 겸상하는 상징적 대표 정도다. 항룡亢龍이니… 손님 아침밥 걱정하다 새벽에 몇 번씩 깼다는 아주머니, 예전 우리 엄마들의 원형 아니던가? 물론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방이 하도 불편해서 일정을 단축하고 철수한 적도 있다. (인생에다 적용해서는 안 되는 대책이다.) 묵는 마을이 면 소재지 정도 되면 저녁은 나가서 사 먹는데, 향토 맛집을 개발하는 재미가 있다. 원지에 있는 할머니 어탕 국숫집이 생각남. 아무튼 민박은 겪어 보기 전에 미리 판단하기 어렵다. 뭐는 안 그런가? 

타인 능해 他人能解 : 누구나 쌀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으로 구례군 오미-방광 구간의 시점에 있는 고택 운조루의 뒤주에 쓰여 있음. 누가 쉽사리 이해를 하고 … 




말 

지리산 언저리엔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있는 동네들이 화개장터 말고도 많은데 거기 사는 사람들의 억양이 묘하다. 전북 산내면은 경남 마천면과 인접해 있는 산골이지만 엉뚱하게 충북 제천 악센트가 튀어나오고 (그야말로 혼합이 아닌 화합이다), 경남 하동과 접경한 전남 구례 일부 지역 사람들 말은, 전라도 사람이 들으면 경상도 말이고 경상도 사람에게는 전라도말로 들린다고 한다. 원주민과 얘기를 해보면 한자어로 바꿔 부르기 전 옛 고유 지명이 흘러나온다. ‘헤겡이골’, ‘노루울’, ‘물메기’, ‘개롤’… 머지않아 그 땅에 묻히고 말 소중한 땅 이름들이다. 말과 지명에는 그 고장의 환경과 문화가 운명처럼 각인되어있다. 그래서 언어는 문화를 담는 그릇이라고도 했다. 와인을 소주잔에 따라 마시면서 그 맛과 향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듯이 언어를 버린 문화는 온전히 이어가지 못한다. 사투리는 표준말에 밀려 퇴화하고 ‘소위’ 표준말은 근세까지는 한자어에, 그 이후에는 영어에 자발적으로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이대로 가면 우리말은 한문에 붙이는 현토懸吐 수준으로, 우리 한글은 발음 기호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든다. 정신 나간 언론도 한몫을 하고 있다. 둘레길을 시작하는 남원 하면 광한루와 추어탕 집이 떠오르지만, 작고한 작가 최명희의 혼불 문학관도 있다. 최명희는 남원 사매면을 배경으로 한 그녀의 대하소설 ‘혼불’에서 우리말의 다양함과 아름다움을 신들린 듯 뽐내고 있다. 

최명희의 혼불은 우리말의 박물관이다 : 우리 집사람
소설 혼불에 나오는 노비 모녀의 대화 :  인간의 실존적 가치를 따져 묻는 어린 딸을 엄마가 피하고 있다.  




사람: 둘레길 덕에 민박, 식당, 가게 등 수익이 좀 생긴 반면 지나는 방문객들이 농작물에 끼치는 폐해도 있다. 마을을 지날 때 미안한 마음에 주민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게 된다. 마을마다 정자나 마을회관, 평상 같은 쉼터가 있어 날씨가 좋으면 쉬어 가거나 점심 먹기 좋다. 첫 구간을 걸을 때 회덕 마을 정자나무 아래서 만난 팔십 노인으로부터 들은 ‘지난 얘기’는, 어려서 머슴을 살고 새경 (=연봉)으로 받은 나락 한 섬으로 시작해서 논 스무 마지기를 마련하기까지의 ‘남자의 일생’ 이자 곧 재산형성 과정이었다. 할머니였으면 가난한 집에 시집와 배를 곯며 애 다섯 키우고 시집살이 한 그 버전이었을 텐데... 지리산 마을에도 아픈 과거가 있다. 빨치산 (남원, 구례), 산청∙ 함양 사건 등. 지역 촌로에게 그때 얘기를 들어본다. 총론은 같아도 각론에 들어가면 관점이 다양하다. 지역 주민과의 대화는 당연한 절차다. 비로소 장소성이 생기는 과정이다. 잠만 자고 나온 집과, 밥을 같이 먹은 집, 술까지 얻어먹은 집, 각각 관계의 농도는 달라진다. 단계별로 수반되는 대화의 물량 그리고 그 깊이의 차이에 기인한다. 길을 걷다 보니 끄트머리에  마을이 나왔고 마을에 들어서니 거기 사람이 있었다. 그러다가 내 얘기가 두서없이 늘어졌다. 

가슴에 굵은 못을 박고 사는 사람들이 생애가 저물어가도록 그 못을 차마 뽑아버리지 못하는 것은 자기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을 거기 걸어 놓았기 때문이다.  : 못- 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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