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감 Nov 22. 2020

덕유산 국립공원 야영 일기




무주 덕유대 야영장(캠핑장)에 가서 하룻밤 묵고 왔습니다.


덕유대 야영장은 덕유산 국립공원 안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엔 국립, 지자체, 그리고 사설 야영장이 있습니다. 어느새 , 국공립이 붙은 시설은 안전하고 신뢰가 가고 친절하기까지 한 그런 나라가 되었습니다. 국립 야영장은 자연휴양림과 국립공원이 나누어 관리하는데요, 각 기관이 소속된 꼭대기 조직은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랍니다. 유사한 두 기관이 별도 조직으로서 공통의 상사가 국무총리까지 올라가는 셈이지요. 소속 기관도 검색을 해서 안 건데 앞으로 바뀔 가능성은 50% 이상이라고 봅니다.


우선 언젠가 정부 부처 이름이 바뀔 겁니다. '농림...부' 의 일곱 자 명칭을 정확히 외우고 있는 국민이 전체 1% 이하라는데 만원 걸고요, 이걸 외우는 국민이 1.5%로 늘어나기 전에 명칭이 다시 바뀐다는데 만원 더 겁니다. 그리고 휴양림과 공원의 소속 부처 또한 변경되기 쉽습니다. 국립공원도 연혁을 보니까 건설부 내무부 사이에서 주고받다가 오늘 현재 환경부 밑으로 왔더군요.


좌우간 제가 야영장을 이용하는 데 있어 소속 기관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예약 사이트가 다른 것 외에는요. 이제까지 대개 자연 휴양림을 이용했는데 이번에 국립공원을 찾은 이유 중의 하나는 텐트 옆에서 불을 땔 수 있다는 겁니다. 집에 있는 장작도 한 포대 가져왔습니다. 자연 휴양림 야영장에서는 불을 못 피우게 합니다. 어떤 시기에는 숯불까지도 단속합니다. 명색이 숲을 관리하는 기관이라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번 덕유대 야영장에서는 아예 장작도 팔고 있던데 미리 알았으면 집에서 안 가져왔지요. 지역 간 해충의 이동을 막기 위해 장작은 현지산을 쓰는 게 좋습니다.





혼자 야영할 때는 아무래도 준비가 허술합니다. 올해 들어 제일 추운 날인데 망사 천으로 된 일인용 여름 텐트를 가져왔네요. 침낭도 겨울용이 아니어서 차에서 자기에도(차박) 여의치 않겠습니다. 전기장판으로 버텨보렵니다. 요즘은 웬만한 야영장엔 자리마다 전기가 들어오고 가까이에 온수 샤워장도 있습니다. 


바람막이 타프도 안 가져와서 한 데서 저녁 취사를 하기가 을씨년스럽습니다. 코로나 거리 두기로 띄엄띄엄 야영 사이트를 배정했는데도 옆집이 빤히 보이네요. 휴양림에 비해서 이웃 간에 시야를 차단하는 나무들이 적어요. 보온이 잘 되는 텐트로 바람 샐 틈 없이 안온하게 구축해 놓은 옆집과 빈한한 우리 집이 극명하게 비교됩니다.


해가 지고 이웃 텐트와 시야가 편안해질 무렵 화로에 불을 지핍니다. 토치 (화염방사기 같은 거)로 장작을 달궈도 잘 안 붙는군요. 저는 숯불이든 장작이든 불을 피울 때마다 영원히 안 붙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초조해집니다. ( 여행 도착지 공항 벨트에서 가방이 안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같습니다.) 가만히 있다가도 내가 불을 때면 주위에 여러 사람이 쳐다보는 것 같아요. 금방이라도 이웃 텐트에서 '그렇게 하시면 잘 안되고요' 하면서 누군가 튀어 올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합니다. 


지척 지간에 있는 이웃에 나의 궁상을 보이는 건 민폐입니다. 바로 눈앞에서 불우한 이웃이 절절매는데 그 사람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고통의 공감은 본능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과도하게 나무를 투입하고 방정을 떱니다. 이런 트라우마 때문인지 숯불구이 집 삼춘이 아직 시뻘건 숯불을 빼 갈 때는 아깝고 아쉽습니다.


장작불이 이제 제대로 가동합니다. 저녁 메뉴는 초간단 약식으로 뚝딱 만든 두부김치입니다.


이제는 오늘의 본 게임 - 불멍을 곁들인 소맥 ( 멍하니 불을 쳐다보면서 소주와 맥주 혼합주 마시기 )-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단일 종류 칵테일이 소맥이라고 추측합니다. 제 상식으로는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알코올이 섞여야 칵테일 자격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진 토닉, 스크루 드라이버 죄다 탈락입니다. 소맥의 원조는 위스키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 (boilermaker)라고 기억하는데 결국 맥주보다 달고 소주보다 부드러운 환상의 조합, 소맥으로 뿌리를 내렸지요. 


두부김치와 소맥의 궁합은 괜찮습니다. 혼술은 건배 안 합니다. 우리 주례酒禮 에 건배 같은 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외국 동료가 니네는 cheers를 뭐라고 하냐고 물었을 때 건배라고 가르쳐 준걸 후회합니다. 제 (극단적인) 생각엔 thank you ≠ 감사합니다, good morning ≠ 안녕하세요 입니다. 그냥 고개 약간 숙이는 침묵이 정확한 번역이라고 (속으로) 우깁니다.


피울 때 애를 쓴 장작불이 대견스럽게 혼자 잘 탑니다. 서부영화에 나오는 장작불은 한두 줄기가 차분하게 살랑거리고 보기 좋지요. 장작 몇 개 가지고 밤새 갑니다. 오늘 불은 초반에 장작을 많이 넣어서 활활 발칙하게 타오릅니다.


그렇게 당당한 불길도 사진으로 찍으면 연약한 한 줄기로 보이고 낯섭니다. 어느 스님의 말대로 멈춰야지 비로소 보이는 불의 속살인가요. 산에 가면 일렬로 가는 일행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보게 됩니다. 평소에 쾌활했던 이의 뒷모습이 찬바람 불 것 같이 외로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동영상에서 지나친 순간의 수줍은 불줄기가 정지된 화면에서 보이고,

얼굴에서 나오는 꾸민 정보가 아닌 진정한 메시지를 사람의 뒷모습이 제공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글자도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어느새 처음 보는 생소한 글자가 되더라고요. 사람도 그렇게 보면 달라 보일까요?


장작불 덕분인지 훈훈해졌습니다.

소맥을 연속 생산합니다. 순간의 취향에 따라 소와 맥을 번갈아 보태는 다중 도수 방식으로 제조 기법에 변화를 줍니다. 세상에는 혼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좀 출출해져서 두부김치가 남은 프라이팬에 밥 한 공기 볶아달라고 주문합니다, 저 한테요. 식당에서는 이 부탁을 하기가 왠지 미안해서 다른 일행이 시킬 때도 다른 데를 쳐다보는 용렬 맞은 버릇이 있습니다. 이유는 잘 모릅니다.


장작불이 사그라들며 찬 기운이 바지 자락을 타고 올라옵니다.


후식은 마지막으로 먹어 본 지 한참 되는 신풀한(sinful : 불필요한 외국어지만 술김에 몰래 한번 써봅니다. ) 컵라면으로 결정합니다. 객지에서는 일탈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지금 옆집이 하나도 안 부럽습니다.


잘 시간입니다. 이 추운 초겨울에 전기장판이 위력을 발휘합니다. 등 따시고 배부르고 아울러 알딸딸한 이상적인 상태가 이루어졌습니다. 코는 시리지만 방바닥은 지지는 온돌방과 흡사한 환경입니다.




다음 날 아침밥은 오다가 휴게소에서 산 스낵과 커피로 대신하고 오 분에 걸쳐 텐트를 철거합니다.


2박을 예약했지만 부득이 명퇴합니다. 전략적 후퇴라고 구실을 붙입니다.


매표소를 지나면서 하루 일찍 나간다고 하고 대답도 듣기 전에 차 창문을 올립니다. 왜 벌써 가냐고 붙잡을까 봐 전속력으로 내뺍니다.


오분 있다 전화가 옵니다. 위약금 제하고 하루치 환불을 해준다는데, 우물우물 알았다고 하고 다시 내뺍니다.


무주 톨게이트로 나오는 데 하늘이 왜 이리 시리고 아까운가요.


시월 다르고 십일월 다른 코로나 가을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리산 둘레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