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신입 외노자 생존기

by Min

( - 계속)


보통 역할과 직책에는 그에 상식적으로 기대되는 역량과 인품이 있다. 저마다 그리는 디테일 한 모습에 차이는 있겠지만, 이는 주위 ‘카더라’ 와 여러 매체에서 그려지는 좋은 예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실무에 몸 담아 보면 안다. 그런 이상적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책을 떠나 모두가 같은 불완전한 인간이고, 각자는 자신이 경험하고 배워온 틀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내가 가진 상식이 그에겐 아닌 경우가 허다하고, 사소한 습관부터 업무 처리 방식까지 다른 형태를 띄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때에 어떤 이는 이를 그저 다름으로 생각하고, 다른 어떤 이는 이를 틀림으로 규정하고 배척한다. 이는 나이나 경력과는 무관한 개별적 성향이다. 나와 다른 타인을 보며, 자신을 피드백 해야 할 필요를 자각한 이만이 ‘다름’이란 가치를 마주할 기회를 얻는다. 어느 운이 좋은 이는 일찍이 이를 체득해 세상의 다양성과 공생하고, 어떤 고지식한 이는 평생 누군가를 욕하고 또 그렇게 욕을 먹으며 살다 홀로 떠난다.


물론 간혹가다 누가 봐도 명백한 ‘틀림’을 온 몸에 두른 채, 사방에다 불만 및 민폐를 흩뿌리는 이가 있다. 성숙한 인품과 실력으로 주위에 선한 영향을 주는 이보다 이런 네거티브의 수가 더욱 많고 활개를 치고 있음은, 열역학 제2법칙에 의거한 세상의 무질서도 증가 현상으로 해석해야 할까.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그들이 조직에 남아 있는 이유가 있다는 것. 그것이 그들의 업무 외적 능력이 됐든, 조직 인사관리 시스템적 맹점이 됐든, 그들이 결과로서 증명하고 있는 나름의 이유다.

이를 보는 개별적 입장에서 나름의 가치 판단은 다양하다. 놀람, 의아, 허탈, 허무, 짜증, 분노, 혹은 경외. 여러 감정이 일 수 있겠지만, 보통의 반응은 된소리를 동반한 체념의 정서에 가까울 것이다. 앞서 언급한 나름의 이유 때문이다. 개별적 목소리로는 그 이유를 뒤집기 쉽지 않음을 이미 알고있기 때문이다.

합리적 정의 구현을 위해서는 그 이유를 개선할 만큼의 변화가 있어야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단시간에 이루어지기 힘듦이 보통이다. 이를 대하는 다양한 반응 중, 당장 내가 취한 생각은 이렇다.

‘최소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팀장을 비롯한 여러 선임들을 보며 다음과 같은 명제를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일은 못하지만 인성이 훌륭한 선임과, 일은 잘하지만 인성이 박살난 선임 중 누구 밑에 있는 것이 더 나은가?’

어려웠지만 이내 나름의 결론은 났다.

굳이 극단의 두 옵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경험상 나는 차라리 후자가 나았다.


회사는 친목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

직원들은 회사의 이익 추구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모여 있는 것이고, 노동력의 대가로 월급을 지급 받는다.

요즘같이 직장에서 삶의 질을 찾고 ‘워라벨’이 강조되는 시류에서는, 직장에 요구되는 필요충분조건이 추가 된다. 바로 사측에서는 구성원 개개인의 복지와 역량 개발에 신경써주고, 직원들은 상호존중과 화합의 분위기 속에서 회사와 함께 성장해 가는 것. 듣기만 해도 두근거리는 참된 직장이다.

하지만 몇몇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고, 현실에서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사측과 노측은 임금과 노동력을 협상하는 거래 파트너이고, 구성원들은 각자 자신의 이권을 위해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물론 옆에 있는 동료의 이권을 자신의 그것과 같이 존중하며 함께 증진하면 좋겠지만, 현실의 벽은 그리 호락하지 않다.

이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거나, 절박한 사정이 생긴 개인 앞에 더욱 뚜렷해진다. 당장 회사가 망하고 내가 죽게 생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의를 버릴 수 없다며 관계를 찾을 이가 얼마나 될까. 비관적이라 볼 수 있지만, 나는 이것이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회사는 나의 개별적 특성과 미래에 크게 관심이 없다. 다만 필요에 따라 나의 노동력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장을 마련해주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임금을 제공해줄 뿐이다. 나의 노동력이 효용을 잃을 때 사측은 고용 이유를 상실하며, 그에 따른 후폭풍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때문에 나는 사측에 맹목적 헌신을 하기보다 부단한 자기 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으로 배울 점이 없는 상사는 그 자체로 슬픈 일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하며 내 업무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진 상사가 무능하다면, 그리하여 내게 득은 되지 못할망정 되려 해만 된다면, 이는 너무나 큰 비극이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일 잘하지만 인성이 빡센 선임’을 택하겠다.


이런 생각도 한다. 어짜피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서로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크고 작은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나와 너무도 다른 이를 내 색깔에 맞춰 바꾸려 함은 욕심이다. 내가 그 사람에 맞춰 바뀌는 것이 어려운 만큼, 그 사람도 내게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와 대화를 통해 조율이 가능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각자가 달리 살아온 세월의 깊이만큼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타인이 바뀌길 바람은 그 자체로 욕심이고, 이를 마냥 기대하며 괴로워하기엔 내가 부담해야 하는 각종 리스크가 너무 가혹하다.

때문에 나와 너무도 맞지 않는 성향의 선임을 만났다면,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성적인 대화마저 통하지 않는다면, 결국 남는 선택지는 둘이다. 내가 바뀌거나, 아님 내가 떠나거나.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내가 그 위치에 갔을 때, 내가 그리던 참된 모습의 선임으로 후임들과 마주하기를 늘 스스로 경계하는 것. 이것이 내 힘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의 최선이라 생각한다.


‘다혈질 로지컬 몬스터’를 앞에 둔 나는 ‘내가 바뀌거나’ 가 크게 어렵지 않았고, 다행히 그는 배울 점 또한 많은 선임이었다. 팀장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가까이서 대하며 인간과 조직에 대한 이해가 더욱 넓어졌으니, 이는 감사하다 해야할까.

그렇게 우려했던 팀장 문제는 꽤나 원만한 형태로 원활하게 해결되었다.


그렇게 세가지 큰 문제가 매듭이 지어지고, 이제는 담당자로서 제 색깔을 찾아야 할 때였다.


현장 막내 담당자로서, 나의 업무 스타일은 ‘상대에 맞춰서’ 였다.

일을 받을 때면 선임이 귀찮아 하더라도 꼭 그 일의 목적과 방향을 물었고, 그렇게 최대한 자의적 해석을 배재하고 선임이 원하는 형태로 결과물을 만들어 리스크를 줄였다. 도중에 의문점이나 건의 사항이 있으면 반드시 선임에게 보고하고 확인을 받아, 추후 생길 수 있는 오해의 소지를 없앴다.

여기까지 했는데도 마찰이 생긴다면 그건 그 선임의 성향 문제이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 이는 논리가 아닌 나름의 요령으로 받아야 한다.


이를 조금 더 확장하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한 배려’ 가 되는데, 사실 이것만 있어도 관계의 어지간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로가 바쁨을 알기에 업무 이야기 전 ‘고생하십니다. 정신 없으시죠? 하핳 그럼에도 잠깐 실례해야 할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한마디 덧붙이는 것.

업무 트러블이 생겼을 때 한번 정도는 상대의 이유를 물어볼 정도의 여유.

주전부리가 부족한 현장에서 업무 차 방문 시엔 청포도 사탕이라도 하나 두고 오는 것.

현장에서 스쳐 지나가며 ‘그래 너의 고된 맘과 정신없는 상황에 공감한다’ 를 담은 눈빛 교환 한번.

이는 현장의 퍽퍽함 속에서 유머와 관계를 충전할 참 사소하고 쉬운 일이지만, 직접 실행에 옮기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 또한 그런 사람이 좋았고, 그렇게 되려 노력했다.


동시에 나는 현장의 스마일맨으로 통했다.

이는 성격의 영향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힘듦이 티가 나 약해 보이는 것이 싫다. 또한 나의 힘든 감정을 타인에 전가해 상대의 기운이 꺽임을 보는 것도 싫다.

동시에 타고난 낙천성에서 비롯한 ‘이왕이면 긍정!’ 이 있어 나는 항상 웃으며 사람들을 대했고, 이는 관계에 있어 굉장한 효과를 가져왔다. 진부하지만 ‘웃는 얼굴엔 침 못 뱉는다’ 라지 않는가. 물론 간혹가다 뱉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자기 성깔 감당하기에도 소모가 심한, 긍휼히 여겨 동정해야 하는 사람이니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사실 팀장으로 인한 반사이익 효과도 지대했다.

‘다혈질 로지컬 몬스터’ 가 여기저기 부딧히고 다니면, 그 루트대로 따라 돌며 ‘그게 그 뜻이 아니라...’ 라며 해명하고 다니는 역이 나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팀장이 한판 하고 들어와서는 “한기사, 한번 가봐” 라며 공식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난 자연스럽게 조율과 화합의 역할을 맡게 되었고, 이것이 플러스 효과를 가져와 나의 담당자 생활에 효율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야 안 사실이 하나 있는데, 오히려 글로벌 스텝들이 한국인 스텝보다 정이 많고 순박하다는 것이다. 거친 건설 현장과 상대적 차별로 인한 마음의 굳은살을 조금 벗겨내니, 그 아래에는 따뜻하고 친근한 민낯이 숨어 있었다.

같은 배려와 호의에도 눈을 반짝이며 Thank you를 연발하고, 똑같이 힘듦에도 흥과 에너지가 넘쳐 대화에 활력이 있는 그들을 보며, 되려 내가 힐링을 받는 느낌도 들곤 했다. 그렇다 보니 업무 협조도 글로벌 스텝이 편했고, 현장에서 더위를 먹어 지칠 때면 자연스럽게 글로벌 스텝만으로 이루어진 현장자재팀(FMC, Field Material Control)에 가서 수다를 떨며 쉬고는 했다.


현장 워커들 또한 친분이 쌓였다.

영어가 가능한 현장 반장급 워커들과는 저 멀리 실루엣이 보일 때부터 손을 흔드며 인사하는 정도가 되었고, 눈짓 손짓 발짓으로 의미있는 대화를 함께 한 일반 워커들 역시 자꾸 부대끼다 보니 친해졌다.

그들이 특히 나를 반길 때가 있었는데, 그건 내가 음료수를 들고 올 때다. 나는 가끔 현장 사무실 곳곳에 비치된 음료수를 빼돌리거나, 현장 간이 매점에서 파는 음료수를 사서 현장 워커들에게 돌렸다.

땡볕 아래 고생하던 워커들에게 시원한 음료수는 그 효과가 굉장했다. 그때 그들의 그 환한 웃음이라니. 300원짜리 음료수 값으로는 차고 넘쳤다.


그렇게 현장 관계자들과의 관계를 다지고 담당자로서의 역량을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니, 주위에서 나를 대하는 눈빛이나 태도가 차츰 바뀌어 감을 느꼈다. 그들의 인정과 칭찬은 나를 더욱 춤추게 했고, 신이 난 나는 제 몫이라도 확실하게 해내는 담당자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뛰어다녔다.

일년도 채 되지 않은 새파란 신입임에도 불구하고 팀을 대표해 발주처 및 업체 미팅에 혼자 참석하기도 하고, Flare Stack이라는 기기 설치를 마리오도 없이 혼자 전담하기도 했다. 물론 상대적으로 임팩트가 적은 일들이기 때문에 신입에게 맡겼겠지만, 나는 그 기회들이 감사했다.

덕분에 규모가 큰 조직의 신입으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책임과 그에 따른 부담감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무에 내 목소리가 반영됨의 보람을 알게 되었고, 자신감이 붙었다.


돌아보면 과분한 평을 받았고, 또 감사하게도 여러 일을 경험하며 나의 현장 생활은 의미있는 시간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그때의 교훈들을 주춧돌 삼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나로 거듭날 수 있었다.

나는 첫 직장생활을 건설사 해외 근무로 보낸 것을 진심으로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나의 신입 외노자 생존기는 다행히도, 꽤나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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