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리 (명사)
사전적 의미 :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굳이 사전적 정의를 꺼내지 않아도 ‘모지리’ 가 품고 있는 사회적 합의는 분명한 편이다. 바보라고 하기엔 없어 보이고, 멍청이라고 하기엔 또 장난치는 것 같으니, 적당히 둥글둥글한 워딩으로 막 던져도 딱히 튀는 감 없는 그런 무난한 표현감을 가진 비속어. 분명 비속어인데 이게 욕을 먹은 건지 친해지고 싶다는 어필인지 모를 그런 묘한 아리까리함을 지닌 단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비속어를 애칭으로 쓰는 사람이 있다? 넵 그게 바로 접니다.
사실 태초에 시작은 ‘찌끄래기’ 였다. 어쩌다 꽂힌건지 어느 순간부터 내 입엔 찌끄래기가 붙어 있었고, 한동안 내 사람을 칭하는 애칭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과의 대화에서 애정을 담뿍 담아 전달한 “찌끄래기야” 를 부모님이 자못 불편해 하시는 것을 보고 처음 깨달았다. “아, 이게 내 뜻과 다를 수 있겠구나”
그래서 모지리로 바꿨다. 쉽게 시련에 굴할 수는 없지. 찌끄래기는 된소리가 둘이나 들어가 있어 어감부터 거세니, 모지리와 같은 순딩체면 제법 적당한 타협이라 생각했나 보다. 아무튼 그렇게 유서 깊은 나의 모지리는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진다.
‘세상의 똘똘이들 사이에서 우짜든 제 몫을 해보려 아등바등하는, 나와 같이 모자란 이‘
나의 모지리들을 생각하면 무언가 안쓰러우면서도 애틋하다. 함께일 때는 누구 하나 부족함 없는 모지리들이건만, 각자의 위치에서는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자 열심히 어른인 척 하고 있을 나의 친애하는 애어른들. 이제 나이도 제법 먹어 아빠가 된 이도 있고, 교수님 소리 듣는 이도 있고, 대기업 부장을 목전에 둔 이도 있다. 이들의 화려한 겉보기 등급 안에 숨겨진 말캉한 모지리를 알기에 더욱 대견하다.
20대 때는 30대가 되면 뭐라도 달라질 줄 알았다. 적어도 30대 후반에는 인물사건배경이 제법 달라져 있겠지,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큰 착각. 30대도 똑같음을 깨달은 슬기로운 우리는 아마 40대, 50대에도 이러고 있을 것임을 안다. 그때에 겉보기 등급은 더욱 화려해 질테지만, 그대들은 여전한 나의 모지리일 것임을 서로가 안다.
그렇게 나는 모지리 같은 우리라서 좋다.
아, 물론 모지리를 애칭이 아닌 멸칭(蔑稱)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꼭 한숨으로 시작해 ㅅㄲ라는 어미로 종결하는 것이 제 맛. 대놓고 인칭 대명사로 쓰면 갈등 유발의 리스크가 있으니 꼭 상대가 안들리도록 중얼거리며 흘리는 스킬이 중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