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by Min

누군가 이야기 했다. 타인과 관계함은 그 사람이란 이름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고.


눈 앞에 나타난 새로운 커버의 책을 보면 호기심에 겨워 꼬리가 풍차 돌리기 하던 시절이 있었다. 관계가 일상의 전부이고 나와 함께하는 이들의 행복을 전력으로 바라던, 그렇게 순진무구했던 20대의 한 귀퉁이.


“저 사람은 어떤 장르의 어떤 스토리를 가진 사람일까?”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지고 내가 생각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던 그들을 관찰하는 것은 그 시절 최고의 오락이자 도파민이었다. 평생에 인맥 관리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그렇기에?) 관계하는 지인의 폭과 양이 최대치를 찍었고, 그게 나라는 인간을 나타내는 아이덴티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내가 변함을 느낀 건 30대 중반에 접어들던 무렵이다. 무엇이 트리거였을까? 그저 정신없이 일상을 살아내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나를 수식하는 MBTI의 앞자리가 커다란 I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I라고?” 처음엔 나의 아이덴티티를 부정당한 느낌이 들며 당혹스러웠지만 이내 납득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댕댕이 처럼 ‘사람좋아 인간’ 으로 보냈던 그 시간들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으니까. 하루 종일 밖에서 웃음을 흩뿌리고는 집에 돌아와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 수 많은 밤. 나는 변한 걸까, 돌아온 걸까?


우리는 누구나 각기 다른 환경에서 저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 이야기가 우연처럼 교차하며 너와 나의 관계가 이루어지지만, 이내 우리는 백만스물한가지의 사유로 인해 다시 갈라져 각자 갈 길을 나아간다. 한 때 나의 일상에 가득했던 누군가의 부재는 제법 큰 상실감이 되어 남는다. 이를 탓으로 돌릴 것인가 과정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이전의 나는 그 선택이 어려웠다. 새로운 상실감이 생길 때마다 그 혹은 나의 탓으로 돌렸고, 과정에서 부가된 심적 부침은 오롯이 나의 몫으로 남겼다.


그렇게 마음의 굳은살이 제법 생겼을 무렵, 어디선가 시절인연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다. 인연에다 시절이란 수식을 붙일 생각을 하다니. 가슴 한 구석의 무언가가 스르륵 녹아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상실감에 아파 훌쩍이던 아이가 그제야 비로소 지나간 인연을 그 시절의 반짝임으로 묻어 둘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안다. 한 명의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한 권의 책이라기 보단 끝없이 연재되는 소설이고, 한 편의 영화라기 보단 스핀오프가 쭉 이어지는 시리즈라는 것을. 그 연속성에 나라는 등장인물이 계속해서 캐스팅 된다면 이는 감사한 우연일 터. 그렇지 않더라도 함께 반짝이던 시절이 남았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인연이라 하겠다.


그래서 지금 옆에 남아있는 책들이 고맙고 귀하다.

그들과의 시절은 보다 길고 깊어지길. 그렇게 서로에게 오래 묻어있는 인연이길.

입가에 살짝 걸친 미소 곁들여 고대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친애하는 모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