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술을 예찬하겠다 선언하면 대중으로부터 예상되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것도 자랑이다”, 다른 하나는 “찾았다 내 동반자”
여기 기록하는 이 짧은 가락은 주변 곳곳에 꼭꼭 숨어있는, 나와 같은 후자들을 위한 담대한 웅변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후자는 일상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기호로서 술을 선택할 줄 아는, 만용의 기회비용과 절제의 미덕을 몸과 마음에 익힌 그런 슬기로운 이들에 한하겠다.
술에 대한 내 낭만의 시작은 어린 시절 즐겨보던 만화책이었다.
어느 작품이든 원픽으로 꼽은 캐릭터는 하나같이 술을 좋아했다. 호방하게 웃으며 동료들과 거하게 축제를 벌이는 현장이나, 홀로 고독하게 외로움을 감내하는 시린 쓸쓸함 옆에는 항상 술이 그려져 있었다. 이를 탐독한 어리고 순수한 마음은 “술은 좋은거구나…” 라는 생각을 품고 말았고, 그 생각은 대학 입학까지 시간에 비례하여 숙성되고 성장했다.
드디어 대학 새내기, 잠금 해제 된 낭만과 싱싱한 간의 조합은 집약적인 술독 라이프를 이루어 내었고, 나는 그만 깨닫고 말았다. 앞으로 생을 함께 할 지기지우(知己之友)를 만난 것이란 걸. 이후 몇 번의 이별과 다짐, 극적인 재회를 이루며 술과 나는 더욱 각별해졌다.
그렇게 30대 후반에 이른 지금, 우린 제법 건강한 거리감을 갖춘 안정기에 이르렀다.
술이 좋은 이유는 간단하다. 상황과 감정에 보다 솔직하게 해주니까.
그래서 술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이제 우리는 서로 이야기할 준비가 되었다’ 라는 그 장면이 좋다. 고된 하루 혹은 기나긴 평일의 끝, 홀로 맛난 안주와 함께 홀짝이며 마무리하는 장면도 아주 애정한다. 그런 장면들에 술이 빠지면 뭐랄까, 섭섭하고 허전하다.
특히 맥주와 와인을 좋아한다. 이들은 적적하게 혼자 마셔도 좋고 복작하게 함께 마셔도 좋다. 주로 하루를 닫는 역할을 맡은 맥주는 내게 일상의 술이고, 무언가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 싶거나 함께 기쁘고 싶은 날 마시는 와인은 내게 기념의 술이다.
소주는 딱히 선호하지 않아 혼자서는 마시지 않지만, 내게는 소주가 어울리는 시간사건배경이 있다. 특히 추운 겨울날 포장마차에서 서로 고민을 나누며 마시는 술. 그래, 소주는 내게 위로의 술이다.
단조로운 나의 일상을 제법 아름지게 채색해주는 벗, 그 이름하야 술.
나이가 들고 노회하여 건강을 위해 벗과 이별하는 상상을 하면 벌써부터 서운해진다. 술이 빠진 나의 일상은 무엇으로 기념하고 무엇으로 위로할까. 100세까지 이어질 나의 삶에 술과의 즐거움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다시 경각심이 차오른다.
오늘도 난 술을 더 오래 벗하기 위해 귀찮음을 무릅쓰고 운동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