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 어른일까.
그럼 아직 파릇한 느낌이 남은 20대는 미어른이고, 비로소 꺾인 느낌이 나는 30대는 되야 어른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기엔 주변에 30대 이상의 수많은 애어른이 있어 (물론 본인 포함) 쉽사리 수긍 되지 않는 말이다.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되는 사례들이 어딜 가나 깔려있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같은 문장이 그리 열렬한 지지를 받는 것이겠지.
홀로 생각한 어른의 기준이 있다.
가장 중요한 첫번째 조건은 경제적 독립이고,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두번째 조건은 단단한 자기로움이다. 스스로 일상을 영위할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고, 자기만의 성향, 주관, 기호를 바로 알아 자신의 윤곽이 선명한 사람. ‘최소한’ 이란 수식을 부여하기엔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기준이지만, 그래도 최소한 이 정도는 갖추어야 비로소 어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진심으로 생각한다.
어른이 되고 싶은 애어른으로서 나 또한 그 두 가지 조건을 위해 아등바등 노력 중이다. 그래도 한 10년 삽질을 하다 보니 나 하나 건사할 정도의 경제력은 갖추었고, 자기로움 탐색은 숨쉬듯이 하고 있으니 레벨이 꽤나 올랐다 생각한다.
그럼 이제는 나 제법 어른인건가? 모르겠지만 확실한 장단점은 있다. 장점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단점은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SNS를 보다 보니 직장 내 유니콘과 같은 동료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는 바가 있었다.
‘선배나 다른 동료들과의 관계에 그리 애쓰지 않고 마이웨이지만, 그렇다고 관계가 나쁘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감. 제 할 일은 또 곧잘 해 협업에도 크게 문제가 없는 어딘지 모를 따뜻한 도도함’
음 딱 나잖아? 라는 도전적 멘트는 누군가의 개거품을 유발 할 테지만 뭐 아무렴 어떠리.
다들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사실 이는 유니콘 같이 특별한 무엇은 아니다. 왜냐면 이는 그저 타인에 대한 기대치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발현되는 언행이라서 그렇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으니 실망할 일이 없고, 생각보다 잘한 일엔 순수한 놀라움을, 못한 일엔 덤덤한 후속 논의를 가능케 한다는 것.
언틋 보면 여유롭고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겁이 많아 방어적인 사람일 뿐이다.
나만해도 그렇다.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다짐이었다.
마음을 주니 기대를 하게 되고, 그 기대를 져버리는 엣지케이스를 몇 차례 겪다 보니 두려움에 그만 마음을 준다는 옵션을 삭제한 것이다. 그로 인해 마음이 상할 일은 많이 줄었지만, 일상도 따라 건조해지는 부작용이 따른다. 그리고 이는 40대를 앞둔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미국 작가 마리아 코니코바에 의하면 인간은 신뢰라는 본성을 지닌 동물이기에 가끔 속임수에 넘어 가리라는 사실을 그냥 인정하자고 한다. 그게 타인을 믿는다는 사치에 지불하는 조그마한 대가일 테니까.
그지 그거 사치 맞지.
그지 조그마한 그거 몇 번 더 감당하면 될 일이지.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