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해방시켜준 그대, 깐머

by Min

그저 뜨겁기만 하던 20대에 비하여 30대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외양, 체력, 호기심, 직업, 잔고 등 무수하게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가장 주요한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트라우마로부터의 해방이 아닐까.


아는 이만 알겠지만 트라우마를 품은 일상은 제법 힘겹다. 곧게 뻗은 정도(正道)가 눈 앞에 보임에도 불구하고, 몸과 가슴이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여 굳이 굽이굽이 옆으로 뻗은 우회로를 택해야 하는 순간들은 꽤나 아프다. 그런 고충에 대한 누군가의 이해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그것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이라는 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아니까.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가두어 오랜 시간 나를 옥죄던 트라우마가 있었다.

‘아침에 눈 뜨기’ 라는 발동 조건으로 시작해 ‘저녁에 잠 들기’ 종료 조건을 가져 나의 일상 전반을 지배하던 그런 강력한 패시브 스킬. 어느 순간 습득하고 시나브로 레벨업을 거치더니 어느덧 이해, 납득, 극복과 같은 액티브 스킬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던 그런 불청객 되시겠다.


그 중 가장 강력했던 트라우마는 바로 ‘앞머리’ 다.

고등학교부터 이어진 곱슬머리에 대한 트라우마와 역시 유서 깊은 이마 주름에 대한 트라우마가 결합하여, 머리를 올려 이마를 깐다는 행위는 내 정신력을 한 방에 고갈시키는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볼륨 매직 스트레이트 펌으로 곧게 펴서 단정하게 이마를 가린 앞머리는 대외활동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머리를 감고 드라이로 곱게 단장하지 않으면 외출 자체가 불가했고, 바람 등 외력으로 앞머리가 헝클어지면 내 마음도 따라 심란해졌다.


그런 강박을 지닌 나는 매일이 시련이었다. 지금 앞머리 괜찮은가, 오늘 비가 오나 안 오나, 바람은 얼마나 부나, 행여나 운동 등으로 땀을 흘릴 일이 있나, 피치 못하게 머리를 감아야 한다면 앞머리 정비할 시간과 장비는 확보되어 있나.


“누구도 너한테 관심이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나도 안다고. 근데 그걸 내가 안다고. 내가 알고 신경이 쓰여서 몸과 마음이 윈드밀을 추고 있는거라고. 보기에 정신병 같겠지. 근데 나도 똑같이 생각한다는 게 답답하고 화딱지가 나는 거야.


그렇게 나의 20대는 앞머리 트라우마로 가득했다. 이는 30대가 되어서도 여전했지만, 해방의 순간은 어느 날 불쑥 찾아왔다. 이마를 까보는게 어떠냐는 디자이너분의 3번째 제안을 듣는 나는 제법 지쳐있었고, 반쯤 자포자기의 느낌으로 내지른 OK에 완성된 깐머가 의외로 괜찮았다. 디자이너분의 열띤 우쭈쭈로 정신무장 한 나는 고양감이 휘발되기 전에 여기저기 열심히 깐머를 내보였다.

역시 별게 아니었다. 이마를 까도 세상은 똑같이 돌아갔고, 나를 보는 그대들의 시선에 변화도 없었다. 아니 되려 머리 잘 바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게 뭐지, 어리둥절했다. 이마를 까도 더는 마음의 일렁임이 생기지 않음을 시간을 들여 확인하고는 조금 허탈했다. 강박에서 벗어난 일상이 너무도 후련했고 또 시원했다.

그렇게 어제까지 나를 괴롭히던 트라우마는 오늘 불현듯 사라졌다.


가장 강력한 트라우마를 걷어내고 나니 다른 트라우마도 따라 점차 옅어졌다. 일상을 넘어 삶을 무겁게 누르던 무게추들이 하나씩 덜어지는 해방감. 신기했다. 어쩌면 나의 현재 자기로움은 깐머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이제 와서 다른 트라우마가 또 생길까 싶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깐머를 떠올리도록 하겠다.

깐머 이펙트, 깐머 테라피, 깐머 매직.

내 일상을 지대하게 구원해준 해방자, 그대 이름 깐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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