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너무 간단했다.
한 손으로 셀 정도의 면담과 열 자리를 조금 못 채운 사인, 그리고 노트북 반납을 위한 본사 방문 한 차례. 역시라 해야 할까, 마무리는 생각보다 더 빠르고 간결했다. 과정에서 겪은 고민과 갈등이 무색해질 만큼 간단한 절차에 다소의 허무함도 밀려왔지만, 이로서 끝이라는 후련함이 더 컸다. 시원과 섭섭의 9:1 비율 그런 느낌적인 느낌.
이를 끝으로 드디어, 마침내 나는 백수가 되었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본사를 나서며, 나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오랜만의 자유에 마냥 설레었고, 두근거림이 돌아왔으며, 떨림에 온 몸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앞으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기에, 마치 지도 위 아무 곳 하나를 딱 찍어 여행 계획을 구상하듯, ‘그럼 이제부터 뭐할까?’란 생각을 느긋하게 음미했다.
물론 주위 수많은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호의만 감사하게 받기로 했다. 그만큼 강한 확신에 차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합리에 근거해 보통과 다른 선택지를 고르고, 실행까지 이어진 나 자신이 더없이 뿌듯했다.
와중에 그 일련의 감정들이 의아하기도 했다.
‘난 지금 왜 이렇게 날아갈 듯이 좋은 걸까. 이 후련함은 내 과거 어떤 경험에서 기인한 것인가?’.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내 퇴사의 이유는 흔히들 말하는 일의 힘듦이나 인간관계의 고충에 있지 않았다. 일은 힘든 만큼 인정과 보람이란 보상으로 돌아왔고, 인간관계는 되려 나로 인함인지, 그들로 인함인지(그냥 둘 다라고 하자) 두루 공적, 사적으로 우호적인 편이었다.
그래서 자문했다. 당췌 왜 이런 걸까?
사실 이미 답을 낸 질문이고, 이는 내가 퇴사한 이유에 닿아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퇴사 이후 오랜 시간을 두고 이를 습관처럼 되뇌었다.
마치 그때의 경험을 잊지 않으려 복기하듯이.
마치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그 교훈들을 붙잡아 앞으로의 주춧돌 삼으려는 듯이.
그 이야기로 시작해보려 한다.
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짧다고 하기엔 무언가 억울한 나의 첫 직장 생존기. 뜨겁고 습하던 그 말레이시아에서의 고군분투 이야기를.